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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박한 삶>
ⓒ 여성신문사
어린이 공원과 둔치에서 휴지와 쓰레기를 주운 지 두 달가량 지나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물론 전에도 알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은 '풍부한' 삶이라는 것이다. 남는 것이 아니라 흘러 넘치는 풍부한 삶을 종종 목격한다.

불경기라 아우성이다. 하지만 오늘 홈쇼핑 방송과 온라인 쇼핑몰을 접속하면 이런 문구가 난무한다. '대박 찬스'. '마지막 기회'. '선착순 판매', '사은품 증정'. '000점 돌파', '한정 판매'. '이곳보다 싸면 두 배로 보상'. 리모트컨트롤과 좌판의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네 인생의 손은 이미 꾹, 꾹, 꾹 누르고 있었다. 몸의 지체들이 벌써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풍부한 삶, 흘러넘치는 삶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조금 색다른 삶을 살아보고자 노력한다. 레기네 슈나이더의 <소박한 삶>도 풍부와 흘러넘침의 시대에 '소박함'이라는 주제로 사람이 살아가는 참 의미를 말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죽고 나면 쓰던 물건들은 대개 쓰레기장으로 직행한다. 왜냐하면 손자 손녀들은 이미 모든 걸 신식으로 갖추고 살았기 때문이다. 단, 할머니의 고물단지가 골동품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이다."(본문 23쪽 인용)

옛것의 가치보다는 새로운 것을 더 빨리빨리 추구하는 시대이다. 시대마다 사람의 가치는 외적인 것이 아님을 누구나 동의하지만 실천하는 이는 거의 없다. 치장하고, 채우고, 늘리고, 꾸미고, 작은 것보다, 큰 것, 소박한 것보다, 화려함을 추구한다. 물론 옛것이 '돈'이 된다면 그것은 가치있다. 왜냐하면 또 다른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 구매한 사치품이 자신의 가치를 높여주고, 삶을 풍부하게 해준다는 신념은 더욱 확고해지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삶의 질은 구매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높은 삶의 질을 위해서는 내적인 평온과 여유로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또 타인과의 관계를 가꿔나가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돈으로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주입받는다. 우리를 파괴할 수 있는 가난은 내적인 가난인데 말이다."(본문 64쪽 인용)

우리는 아이들에게 소비를 가르친다. 돈으로 아이를 키운다. 아기가 자라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돈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따뜻한 아침과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없기에 돈으로 인스턴트식품을 사먹게 한다. 아이들이 파괴되어 가는 이유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부모가 아니라 정신적, 심적으로 가난한 부모들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안다고 하면서 오늘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돈'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주입시키고 있다. 갈수록 세상이 파괴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풍부한 세상인데 사람들은 되풀이한다 '불경기'라고. 죽는 그날까지 '불경기'라는 말은 입에 달고 사는 인생살이다. 그럼 희망은 있는가? '마티아스 혹스'의 말을 빌려보자.

"갖고 있는 것은 계속 유지하라. 지금 있는 것으로 꾸려나가라. 경기침체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심오한 변화를 가져온다. 경기침체는 그것만의 장점들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불경기 문화는 생태적으로 바람직한 상황에 상대적으로 더 쉽게 연결할 수 있다. 둘째, 빈곤과 쪼들림, 그리고 결핍이 이제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1980년대에 변두리 지역으로 밀려났던 사람들이 이제 다시 고개를 들고 다니고 있다. 결승점에 함께 도달하기 어려웠던 그 거창한 경주는 끝났다. 쪼들림의 철학, 절약함의 미학에 다시 모두가 동참할 수 있다."(본문 93쪽 인용)

그렇다. 절약과 쪼들림이다. 풍부하면서도 쪼들리는 세상살이지만 소박하지만 풍부한 삶을 우리는 누릴 수 있다. 절약과 쪼들림이 답이다. <소박한 삶>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왜 부자들의 집 담장은 높고, 감시카메라가 있을까?' 부자들은 언제나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한다. 전전긍긍한다. 최신감시시스템을 자랑하는 최고급 아파트 광고 문구는 사실 이런 뜻이다. '많은 돈이 우리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너무 빨리 움직이지 말고, 너무 풍부하지 말고, 너무 일하지 말고, 조금 느리게, 조금 소박하고, 조금 일하면서 사는 인생이 필요한 때다. 아니 결단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풍부함 때문에 우리 인격은 파괴되고 만다.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풍부함을 거역하는 소박함의 위대한 길을 가야한다.

덧붙이는 글 | 레기네 슈나이더 저 | 조원규 역 ㅣ여성신문사 |


소박한 삶

레기네 슈나이더 지음, 조원규 옮김, 여성신문사(2002)


태그:#소박한삶, #레기네슈나이더, #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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