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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4일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열린 대담에서 문국현 대선 예비후보가 대통령선거에 나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나는 <대선 진맥> 연재를 시작하면서 '재미'와 '참여'를 얘기했다. 대선판이 워낙 냉소와 무관심으로 점철되었기에 최대치를 정치의 '술안주화'로 잡았었다. 그런데 재미보다 한발 나아간 참여의 원천, '감동' 코드가 발생했다. 예상치 못했던 '문국현 현상'이다. 발생지는 인터넷이다.

지난 23일 문국현(전 유한킴벌리 사장·58)이 대선 출사표를 던진 날에 맞춘 <오연호 리포트> '여론조사 1인자, 1%의 문국현에 올인... 김헌태의 도박' 기사에 이어진, 이튿날 '문국현과 이인영의 대담... 민주화 세력은 실패했나' 기사는 며칠이 지나서도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두 기사에만 독자의견(댓글)이 700개에 달한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두 시간 동안 생중계된 대담 중에는 22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기성 언론의 보도행태와 뚜렷이 대비되는 '현상'이다.

한 네티즌(닉네임 '영웅본색')은 이렇게 말한다.

"정치 지도자에게 환멸을 느끼며 대선 때 방구석에 처박혀 쐬주나 마실려고 작심한 나에게 어느 날 느닷없이 다가온 이름도 생소한 문국현!! …정말 우연히 그의 살아온 삶과 그의 현재의 모습, 그리고 그가 꿈꾸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듣는 순간,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소낙비를 맞는 듯, 오랜 정치적 선택에 방황하는 나를 한방에 보내버리는 전율 같은 것을 느꼈다."

한 386 의원은 '이번 대선에는 왜 감동이 없냐'는 지적에 이렇게 말했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다 올인 후보가 없다. 한나라당도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은 있지만 후보 충성도는 이회창에 비해 낮다. 특히 2002년 노무현 감동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감동이 없다. 여권이 대통합을 성사시킨다 해도 그 정도의 감동은 없을 것이다. 여러 명 중에 한 명이 경선을 통해 드라마를 형성해 나간다면 그 과정에서 탄력이 생겨날 수는 있다."

감동할 준비된 대중 vs 감동 외면한 정치인

정치권은 사실 이번 대선에서 '감동'을 접은 듯 보였다. 이겨야 한다는 '당위'와 대통합의 '명분', 민주개혁평화세력이라는 '구도' 찾기에 골몰했다. '마음'이 움직일 리 없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출범하고 경선레이스가 시작됐지만 별다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신당의 지지도는 10% 안팎. 143석의 원내 제1당이 9석의 민주노동당과 경쟁할 판이다. 범여권 후보들의 지지도는 계속 정체 상태인 반면, 이명박 후보의 지지도는 박근혜의 지지도까지 합세돼 60%대 상한가를 치고 있다.

그런 중에 '제3지대' 복병이 출현했다. 현실정치 공간에선 1%도 안 되는 지지도를 기록하던 사람이다. 문국현. 출마선언이 나올 즈음, 그의 이력과 비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면서 빠르게 인터넷 전파를 타고 있다. '바람'이란 표현은 유보하자. '나비효과'가 나타날 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문국현 현상'이라 이름할 분명한 이유는 있어 보인다. 왜 네티즌들은 열광할까. <오마이뉴스> 독자의견으로 표출된 '넷심'으로 문국현 '민심'을 살펴봤다.

"참으로 오랜만에 긴장과 흥분을 느끼고 있음을 알았다. 아직 나에게 미련이 남아서일까?"
"저도 외면하려 했습니다. 그래, 어디 더 당해봐라. 그런데 슬금슬금 마음이 동하네요."
"그간 황망하던 마음을 이제 추스리고… 다시 가슴이 더워진다."
"살맛을 찾았습니다. 다시 한번 일어섭시다. 우리 정치 푸르게 푸르게"
"기쁜 마음으로 이민갑니다. 어디로요!! 대한민국으로요!!"
"사람을 중심에 놓고 보면 보인다. 국민을 중심에 놓고 보면 보인다."
"가슴이 펑 뚫리는 느낌!"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문국현을 바라보는 넷심의 편린들이다. 부러 긍정적인 댓글을 고른 게 아니다. 거개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이라는 망설임, 긴장, 흥분, 복받침을 얘기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에서 독자의견란을 관리하는 박종근 기자는 "최근 어떤 정치인의 기사보다 절대적으로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이 없다"며 "문국현의 깨끗한 이미지가 댓글에서도 청정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단골 댓글러' 보다 처음으로 댓글을 쓴다는 사람, 오랜만에 댓글을 써본다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분위기다.

▲ 오마이뉴스의 문국현 후보-이인영 의원 대담 기사에 올라온 독자의견들.
"1인 미디어 환경... 보통 사람들의 자연스런 동맹"

밖으로 나가보자. 뉴미디어를 분석하는 최진순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는 인터넷에 드러난 문국현 현상에 대해 "1인 미디어가 참여형 여론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2002년'과 비교했다.

"2002년에는 '노사모'라는 특정한 정치세력이 정치적 의제를 가지고 인터넷에 뛰어들었다면 지금은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의견 교환 속에서 정치 흐름이나 이슈가 생성되고 있다. 정치그룹이나 이슈메이커가 주도하는 것이 아닌 보통의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런 동맹이 형성되고 있다. 다른 정치메커니즘이다. 주요하게 봐야 할 대목이다. 되레 정치인이 주도하면 역효과가 난다. 정치인은 메시지나 콘텐츠를 던지고 언론은 이들의 소통을 주의 깊게 정리하고 전달하는 새로운 역할이 부여된 게 아닌가 싶다."

2002년은 댓글이나 핸드폰 수준에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면 5년이 지난 지금은 보다 적극적인 수준인 블로그나 UCC 등 '1인 미디어'가 주도하는 환경이다. 실제 '문국현' 관련 기사가 블로그 전문 사이트에서도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문국현 현상은 이러한 미디어환경의 변화에 맞물려 정치현실이 작용한 결과다.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발언 기회가 없었던 것. 그런 차제에 때마침 문국현이 던진 메시지가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흩어진 말의 진지를 다시 구축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문국현 캠프의 자체 분석을 들어보자.

공보를 담당하고 있는 고원 박사(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386세대와 정치의식변화연구' 논문)는 "인터넷은 문국현의 정치적 자산이 가장 높은 공간"이라며 그동안에 보여진 냉소와 무관심에 대해 "좌절된 침묵 아닌 갈망을 분출할 시점과 계기를 고르고 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2002년 노무현 후보의 경선 승리와 월드컵, 정몽준 등으로 분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후 지금까지는 억압되거나 지연되어 왔다는 얘기다. 최근 한나라당의 경선도 '이명박 대 박근혜'라는 박빙의 승부가 있었고 사실상 본선이나 다름없는, 대통령을 뽑는 선거였다고 할 수 있음에도 대중적 흥행에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범여권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 사람들은 대선을 심심하게 그냥 놔두질 않는다. 한국인 특유의 역동성 때문이다. 눈물, 감동, 그런 오랜 에토스(집단적 성격)가 있다. 나라마다 에토스가 다른데, 가령 미국은 자유주의적 개방성, 북유럽은 바이킹의 후예라는 전사적 기풍, 섬나라 일본과 영국은 외부 팽창욕, 이슬람은 종교에 관한 역동성이 있다. 그런 에토스가 정치가 이륙하는 출발지인데 문국현이 그걸 끌어낸 것이다. 울고 싶은데 빰 때린 격이거나 눈물샘을 바늘로 콕 찌른 셈이다."

"좌절된 침묵 아닌 분출 기회를 기다렸다"

급속히 생성된 '문빠'(문국현 지지자)들은 발에 불이 나게 움직이고 있다. 문국현 캠프에서 공식 홈페이지가 개설되기도 전에 '세일러문' '문지기' '문함대' '문스머프' '창조한국' 등 자체 팬카페를 개설했다. 지난 주말(25일) 오픈한 공식 홈피(m2007.org)는 되레 욕(?)을 먹고 있다. "글 입력이 불편하다" "글씨가 작다" "메뉴 바가 너무 많다" 등등 "홈페이지의 활기는 멋진 디자인에서 오는 게 아니라, 역동성에서 온다"며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가 쇄도한다.

문 캠프는 아직 조직 구성이 완료되지 않았다. 정책은 완료되었지만 정무 인력이 부족하다. 이렇다할 사무실도 없이 "둥둥 떠다니다가" 28일께 입주식을 갖는다고 한다. 홈페이지도 내부사정으로 급하게 열었다며 '임시 개설'임을 강조했다. 최근 문 캠프에 합류한 김헌태 정무특보(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노무현은 감성 중심이었고 문국현은 콘텐츠 중심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직접 소통 면에선 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취약성을 네티즌들이 '커버'해주고 있다. 이들은 이미 본선에 뛰어들어 싸우는 전사 같다. 아이디어를 짜내 캠페인 구호를 만들고, 전략과 전술을 제안하며, 이명박과의 가상토론회 시나리오를 만들어 관전평을 내놓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결합 문제에 대해서도 "왜 꼭 범여권에서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하냐"며 "밖에서 치르는 검정고시를 보라"고 압박한다.

왜 이렇게 열광할까? 도올 김용옥은 "돌풍"이라고 표현했다. 좀더 정치적 요인을 따져보자.

우선 '프레임'이 다르다. 기존 정치권에선 친노, 비노, 반노만이 존재했다. '노무현 프레임'. 미래가 아닌 과거 프레임이다. 여권은 이 노무현 프레임을 벗어나고자 발버둥쳤지만 신뢰와 콘텐츠가 부족했다. 노무현을 극복할 인물과 리더십을 제시하지 못했다. 또한 보수 진영의 공격에 대해 노무현 정권은 방어 논리를 제공하지 못했다. 아니 빌미를 줬다. 대표적 '친노'라는 유시민 의원도 인정했다. 2002년 노무현을 찍었던 사람들에게 지치고 짜증나는 상황이 지속되어 왔던 것. 여기에 '문국현 프레임'이 제시된 것이다.

또한 올해가 '87항쟁' 20주년이라지만 민주화 세력은 "잃어버린 10년" "민주화 세력 무능론"에 상처받고 주눅 들었다. 문국현은 "지난 10년은 IMF 외환위기가 초래한 100만 대실업의 후유증을 초래하는 과정"이었고, "거대기업의 의사결정이 잘못돼서 중소기업, 벤처, 비정규직 등이 대가를 치른 것"이라며 "후유증을 열심히 치료한 의사나 병원을 탓하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라고 진단했다.

정치권의 누구보다 문국현의 말은 냉가슴을 앓았던 이들에게 후련한 무엇을 주었다. 고원 박사는 "같은 말을 하더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설득력이 달라진다"며 "문국현은 살아온 삶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한다. '온건한 진보'쯤에 있는 문국현이 과거 '노빠'였거나 민주노동당 주변을 어슬렁거린 이들에게 다시금 화제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 지난 25일 문을 연 문국현 후보의 공식 홈페이지(m2007.org).
'집단 우울증'에 갇혔던 개혁세력, 다시 문국현으로

마지막으로 문국현의 출발 시점은 절묘했다. 한나라당 후보로 이명박이 결정된 직후였다. 절묘한 대비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시점이었다. 이명박, 문국현은 둘 다 세일즈맨의 신화를 창조한 사람이다. 바닥에서 출발한 영웅이다. 하지만 과정과 가치는 전혀 달랐다.

"가짜경제 - 진짜경제"
"재벌경제 - 중소기업 경제"
"돈과 개발 - 인간과 환경"
"부자경제 - 서민경제"
"나라 동강내는 운하 & 시멘트 - 우리나라 푸르게 & 나무"
"해고 시키는 사장 - 평생교육 시켜 주는 사장"
"자식귀족학교 & 위장전입 - 두 딸은 비정규직"
"각종 땅 투기 의혹 - 월급의 절반 사회기부"


이 같은 극단적 대비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 글을 쓴 네티즌은 (닉네임 '이분법')은 "일부러 만들려 해도 만들 수 없는 기막힌 대비"라며 "눈사람과 눈사람을 녹여 버릴 따뜻한 햇볕과 같은 대비"라고 선을 그었다. 또한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의혹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이명박의 지지율을 보면서 '가치 전도'의 모욕감을 느낀 이들에게 문국현의 '인간중심, 가치경영'은 위로가 되었다.

혹자는 "개혁세력이 집단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말한다. "문국현을 계기로 벗어날 조짐을 보이는 것 아니냐"고 낙관한다.

정치권에서의 반응은 일단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아직 검증 단계를 거치지 않았고 과대 포장된 측면이 있다며 신중한 반응이다. 문국현과 정책 교류를 해온 천정배 의원쪽은 "문국현 바람"이라고 평가했다. 태풍이 되길 부채질하는 세력과 미풍에 그치길 폄하하는 세력이 공존하는 게 사실이다.

김헌태 정무특보는 "아무 것도 정치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한다. 대통합 민주신당의 경선후보 중 한 명이 될 수도, 나중에 후보 단일화 작업에 나설 수도, 국민의 지지 여하에 따라 그 어떤 선택지도 열려있다는 얘기다. 문국현이 신당을 먹을지, 신당에 먹힐지는 순전히 지지율에 달렸다. '현상'이 아니라 '수치'로 말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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