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장'. 27일 오전 서울 광화문로의 모습이었다. 한·미연합 을지포커스렌즈(UFL)연습(8.20∼31)을 반대하는 기습시위 때문이었다. 사건은 교보빌딩-세종문화회관,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이순신 동상 주변에서 18분 동안 벌어졌다.
기자가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9시 45분께. 경찰 두 명이 교보빌딩 앞에서 때 아닌 차량 검문·검색을 하고 있었다. 신분이 알려지지 않은 기습시위의 주인공들을 찾아내 사건을 미연에 막아보자는 의도인 듯했다. 기습시위 소식을 접한 것은 기자들만이 아니었다.
적막감이 흐르던 10시 1분께. 교보빌딩 맞은 편 세종문화회관 쪽에서 수 명의 학생들이 불쑥 도로로 뛰어들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들은 투박한 글씨가 쓰인 얇은 천을 펼쳐들고 이순신 동상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교보빌딩 쪽 경찰·기자들 또한 동상을 향해 도로를 가로질렀다. 신호등은 무의미했다. 동상 주변 도로는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서로 마주보며 달리던 학생, 그리고 경찰·기자들은 눈 깜짝할 사이 동상 앞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만나기가 무섭게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미국 성조기를 불태우고 찢어대기 시작했다. 경찰 측은 이들을 뜯어 말렸으며, 기자들은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수 개의 성조기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학생들은 이어 '주한미군 철수 한반도 평화', '대북 전쟁훈련,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이 쓰인 천을 펼쳐들고 연신 "주한미군 철수하라, 전쟁학살 중단하라"를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이순신 동상 앞 '주한미군 철수' 기습시위...광화문로 아수라장
10시 5분께. 전·의경 20여명이 동상 앞으로 투입돼 '상황이 정리되는가' 싶을 때였다. 순간 또다시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3명의 남학생들이 경찰의 감시를 뚫고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이어 1명의 남학생은 "주한미군 철수하라"고 외치면서 교보빌딩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동상 일대는 또 한 차례 아수라장이 됐다.
교보빌딩을 향해 뛰던 남학생은 도로 한 가운데에서 경찰에 붙들리고 말았다. 세종문화회관으로 질주한 3명의 학생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나머지 두 명의 학생(남·여 각각 1명)은 기습시위 초반 이미 경찰에 붙들려 동상 앞에서 꼼짝할 수 없는 처지였다.
10시 12분께. 경찰에 붙들린 한 명 학생이 교보빌딩 앞에서 전·의경 40여명에 둘러쌓인 채 연신 "시민여러분, 한반도 평화를 실현합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동상 앞에 붙잡혀 있던 두 명의 학생도 전·의경이 겹겹이 만든 숲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10시 16분께. 한 경찰이 다가와 이들에게 '미란다 원칙'을 알렸다. "여러분은 집시법 위반 여부 등을 조사받기 위해 경찰서로 연행될 것입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면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10시 19분께. 3명의 학생들이 경찰차에 밀어넣어지며 상황이 종료됐다. 줄곧 '주한미군 철수'를 부르짖었던 한 학생은 경찰차에 오를 때까지도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전쟁학살 중단하라."
이들은 한총련 소속 대학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학생은 "경찰 조사가 끝난 뒤 우리의 신분 및 시위 의도를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현장에 나와 있던 경찰 관계자는 "종로경찰서 지능2팀이 이들에 대한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여부 등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