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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인들이 애용한다는 고가의 비만관리 체인점
ⓒ 김혜원
30 중반이 넘도록 변변한 돈벌이라고는 해 본 적 없이 그저 남편이 벌어다 주는 월급으로 살아온 나. 그런 나에게도 지난 1998년 화려한 경영자 시절이 '잠시'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코웃음이 나오는 '비만관리실' 경영이 그것이다.

내가 경영했던 '비만관리실'은 살을 빼준다는 큰 의미에서는 병원에나 있을 법한 비만클리닉 개념과 유사하지만 개설이 용이하다는 데서 큰 차이가 있다.

의사 면허 없이 병원을 내고 비만클리닉을 운영한다면 의료법 위반 등의 엄청난 처벌을 받겠지만 비만관리실은 다르다. 특별한 자격증이나 규정이 필요 없는, 누구나 기계 몇 가지와 관리사 몇 명만을 갖추면 영업이 가능한 미용업의 한 업종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당시까지(그때만 해도 난 55사이즈였다) 비만이 무엇인지 다이어트가 무엇인지 공부는커녕 고민조차 해보지 않은 나 같은 문외한도 오너가 될 수 있었다.

2500만원 투자해 '원장님' 되다

1998년 봄 어느 날, 심심풀이로 놀러 갔던 친구의 피부관리실에서 귀가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자기는 지금 운영하고 있는 피부관리실 때문에 더 투자할 수 없지만 여자들이 심심풀이 삼아 운영하기 좋고 돈도 적지 않게 벌 수 있는 일이 있는데 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는 말처럼 개업은 단숨에 이루어졌다.

친구의 피부관리실 옆 건물 2층에 열 평 남짓한 가게를 얻고 개인용 사우나와 침대형 사우나, 제트슬림과 토닝시스템, 초음파 관리기 등 살빼기에 효과가 있다는 기계 몇 가지를 들여놓으니 누가 봐도 그럴싸한 관리실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보증금을 포함한 총 창업비용 2500만원.

친구의 소개로 스무 살 남짓 된 관리사 두 명을 고용하니 아줌마였던 내 호칭은 자연스레 '원장님' 혹은 '사장님'으로 바뀌었다. 그 호칭의 어색함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은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개업식 날부터 심심치 않게 손님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대부분 친구의 피부관리실을 찾았다가 소개를 받고 오거나 지나던 길에 생소한 '비만관리실' 간판을 보고 호기심에 들어와 본 경우지만 하루 상담받는 고객이 열 명이라면 그중 한두 명 정도는 등록까지 이어져 개업자금을 까먹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개업 후 몇 달이 흐르니 나름대로 자리가 잡혀 직원관리도 잘되고 통장에 목돈도 쌓여가는 등 돈 버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마음 한구석에 알 수 없는 불편함은 점점 커져만 갔다.

"사업 잘되는데 뭐가 걱정이래? 다 그런 거지. 누군 뱃속부터 배우고 나온다니? 원래 피부나 비만, 미용관련 일들이 다 그래. 전문의가 아니고는 피부나 비만에 전문가가 어디 있어? 하다 보면 전문가가 되는 거지. 나도 피부 관리 하나도 몰랐지만 10년쯤 되니 이 바닥에서는 전문가로 불리잖니. 피부관리나 비만관리나 여자들의 허영을 먹고 사는 직업인데 조금 부풀린다고 해서 그게 뭐 그리 대수야. 알고 보면 어느 장사든 다 그런 거 아니겠니?"

▲ 피부관리와 비만관리는 미용업의 일종으로 어떤 자격도 필요치 않다.
ⓒ 김혜원

이들이 바라는 것은 55나 66사이즈에 맞는 체형

비만으로 병원이 아닌 비만관리실을 찾는 손님은 대부분 자신이 병적인 비만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건강하고 균형 잡힌 몸이 아니라 기성복 55나 66사이즈에 맞는 체형이다. 미용관련업종이 여성들의 '환상'을 먹고산다고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데 있다.

비만관리실에서는 살을 빼지 않아도 될만한 손님이란 없다. 키 165㎝에 몸무게 48㎏, 160㎝의 키에 몸무게 45㎏… 남들이 보기엔 말라 보이기까지 하는 아가씨들이 와서 상담을 해도 당연하게 살빼기를 권한다. 권하는 이유는 하나다. 그녀들이 바라고 꿈꾸는 균형 잡힌 몸매 즉, 8등신의 서양인형, 마론 인형의 몸매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키 158㎝에 몸무게가 95kg이었던 아기엄마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정상체중의 범위에서 3~5㎏ 정도 초과한 사람들로 운동과 식이 조절 외에 고가의 비만관리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만관리실 원장 처지에서 살을 빼겠다며 스스로 찾아온 고객을 그냥 돌려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개업 후 몇 달 만에 습득한 비만과 다이어트 지식을 이용해 살을 빼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 것처럼 협박하거나, 반대로 살을 빼면 금방 신데렐라가 되어 인생이 바뀌게 될 것이라는 최면을 거는 것이다.

비만관리실 문을 열기 전에 수없이 고민했을 고객들은 아주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온다. '나는 살을 빼야 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힘들이지 않고 별다른 고통 없이 짧은 기간에 감량하거나 균형잡힌 몸매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유혹은 그야말로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이다.

결국 그녀들은 한 달 혹은 두 달 뒤 아름다워져 있는 자신의 몸에 대한 환상을 구입하는데 고가의 비용을 지불한다.

당시에도 비만관리는 1회 3만원이 최저 가격이었다. 보통 10회 이상 시술을 받게 되는데 기본 비만관리, 살이 빠져 피부가 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탄력관리, 빠진 체형을 유지하기 위한 보정 속옷 구입까지 포함하면 일이백만 원쯤은 우습게 들어가게 된다. 물론 내가 경영했던 아주 작은 규모의 비만관리실에서 할 수 있는 최소비용이다.

▲ 광고대로라면 세상에 살찐 사람은 없을 듯하다.
ⓒ 김혜원
최근 유명연예인들이 시술받는다는 1천만 원 이상의 고가 비만 관리에 비하면 그나마도 저렴하다지만 월급쟁이 남편을 둔 가정주부나 쥐꼬리 만한 월급을 받는 직장인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몇 달 만에 비만관리실 접은 까닭

그러다 보니 남편이나 부모 몰래 카드로 결제하고는 카드 값을 갚아나가느라 전전긍긍하는 손님들의 푸념도 적지 않게 들었다. 이들의 푸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만 졌고 결국 몇 달 못 가 관리실을 넘기고 다시 나의 천직인 주부로 돌아왔다. 양심을 속이며 돈을 버는 것보다는 마음 편히 월급쟁이 남편만 믿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비만관리실을 운영해 본 나에게 고가의 비용을 지불할 만큼의 효과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고객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당연히 그렇지않다고 고개를 저을 것이다. 비만관리실을 접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효과없는 비만관리라는 상품을 고객들에게 팔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 되지 않는 비만관리실 운영에서 얻은 결론은 하나다. 토닝시스템, 비만크림, 장청소, 원적외선 사우나, 저주파치료, 제트슬림, 저온치료, 냉동치료 등등 수도 없이 많은 비만관리 방법이 있지만 가장 효과 있고 지속적인 관리방법은 고가의 시술이 아니라 식사를 조절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하루 한 시간씩이라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꾸준한 운동이라는 것이다.

고가의 기계나 시술을 통한 비만관리는 단시간 내에 목적한 감량이나 체형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 몸을 그대로 유지하게 하지는 못한다. 한두 달 만에 요요현상이 오고 요요현상 후엔 원래 체중보다 오히려 늘어나는 낭패를 보게 마련이다.

신문 사이에 끼어 들어온 비만관리실 광고지와 아침부터 앵무새처럼 외워대는 TV스타들의 다이어트 성공기, 골목마다 거리마다 들어차 있는 비만관리실과 비만클리닉 간판에 현혹되어 마음이 흔들리지 마시라.

비만관리, 그것은 결코 남이 해줄 수 없는 것이니 오직 당신의 살은 당신의 책임이다. 오늘부터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화 신고 밖으로 나서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나조차도 그리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비만=질병? 공모 응모작


#비만관리실#다이어트#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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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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