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물러가면 사막이 되고
다시 사막을 채우는
푸른 물빛으로
서쪽 바다가 되는
내 사랑보다 붉은 일출과
그리움 닮은 노을 보다
혼자된 적막이 더 아름다워
메말랐던 숨을 멈추게 하는
그 바다를 보았는가
썰물에 떠난 너를 그리워하는
못난 여자가 숨어버린
검은 사막을 보았는가
- 자작시 '동검도'
마지막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이고 바닷가를 거닐다 산자락에 가려있다 얼핏 숲 그늘 사이로 드러난 지붕에 이끌려 발길을 옮기면 집이 너무 예뻐 주인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갤러리가 있다.
강화도 남단 작은 꼭지섬 동검도, 바다를 마주한 그 끝자락에 있는 동화 같은 집 'SEA &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화가 김선자.
수만 마리 작은 게들이 온통 벌집처럼 구멍을 내며 뒤집어 놓은 갯벌을 따라 작은 언덕길을 오르면 'SEA & 갤러리'가 눈에 들어온다.
김선자씨는 지난해 4월 이곳 동검도로 들어와 동화 속 궁전 같은 하얀 집을 짓고 갤러리와 펜션으로 운영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들을 도자기에 옮기고 있다.
머뭇머뭇 낯선 구경꾼으로 들어선 잔디 정원에 잘 정돈된 화분이랑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있다. 널찍한 자연석 두어 개와 벤치, 그리고 몇 그루 휘어진 소나무가 바다를 향해 손을 흔드는 풍경 속에서 잠시 꿈꾸는 소년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국화, 특히 채색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작가의 갤러리에는 그림보다 도자기가 많다. 이곳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들을 좀 더 쉽게 세상에 전달할 수 있는 매체로 도자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를 원하는 기자에게 손님을 핑계로 대답 대신 건네준 도록 한 권을 쥐고 나무 계단을 사이로 일층과 이층으로 구분된 그녀의 갤러리를 돌아본다. 누군가 말했던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크고 작은 온갖 종류의 도자기들이 화려하면서도 튀지 않는 한국적 색감에 담겨 멋진 쇼룸을 꾸미고 있다.
여백과 공간을 색으로 채우는 채색화, 긴 밤 한 땀, 한 땀 조각보를 이어가는 바느질처럼 장지에 분채와 석채로 우리네 여인의 한과 그리움을 채우는 예술이다.
밖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한국여인의 은밀한 색감, 분꽃 같은 사랑 그렇지만 언제나 아늑한 어머니를 닮은 보(?). 그렇게 우리 민족 여인네의 정감을 닮은 색채들을 장지나 캔버스에 그림으로 옮겨온 작가는 이제 그 향기들을 조금 더 가까이 두고자 술잔에, 찻잔에, 접시에다 옮겨놓아 우리에게 촉감으로도 느끼며 재해석하게 한다.
달빛이 머물 때 입술에 닿는 뜨거운 술잔, 바람이 기울 때 진한 그리움으로 넘기는 찻잔 속에 화려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그림들로 끊임없이 채우고 담아내는 것을 보면 그녀 안에는 아직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무척 많은 것 같다.
주로 도형과 문방사우, 혹은 꽃이나 민화에서 인식한 한국적 아름다움을 소재로 작업한 일단의 한국화, 채색화와 같은 평면적 그림들에서 도자기라는 생활용품에 예술의 가치를 불어넣는 입체적 공간적 작업으로 그 진부한 동일성을 과감히 벗어버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바다가 아름다운 곳, 작가의 말처럼 "바다, 하늘, 산, 나무 등 자연의 모든 것이 한자리에 있다"는 동검도 끝자락에 아름다운 집을 짓고 작은 갤러리를 운영하는 예술인으로서 또는, 우리에게 잊지 못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갈무리해주는 펜션을 운영하는 경영자로서의 일상이 예술과 생활과의 소통을 이루어낸 결과는 아닐까.
작가의 그림이나 작품들은 작가가 건네준 도록에 장식된 어려운 글보다 눈에 보이는 곳에서, 손에 잡히는 그대로 먼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것은 여기저기 예쁘게 진열된 자리나, 바다를 기대고 앉아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는 탁자 위에서 존재하는 일상의 자잘한 아름다움이나 그리움이 우리에게 더 가까운 이유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작가 김선자는 홍익대학교 동양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5회에 걸친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 및 초대전에 참여 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금천미술협회 등 많은 활동 중이다.
'SEA & 갤러리' : www.sngpens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