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애니메이션 공동제작의 필요성과 가능성 충분하다'
'개성공단 내 애니메이션 공동제작센터를 세우고 점진적 대화로 접근해야 한다'
'북한을 하청이나 단순 임가공 대상이 아닌, 대등한 교역대상이자 파트너로 봐야 한다'
애니메이션 분야 남북경협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24일 국회 도서관 지하대강당에서 열렸다.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인 강혜숙 의원과 우상호 의원이 주최하고,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 주관한 이날 토론회의 주제는 '남북경협을 통한 애니메이션 새로운 활로 모색'.
국내외 애니메이션산업의 현황에 대해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김진규 산업진흥본부장은 "'미키마우스', '아기곰 푸우' 등으로 대변되는 세계적인 성공사례들과 월트디즈니, 드림웍스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선전, 또 중국 정부가 행하고 있는 강력한 자국 애니메이션산업진흥정책에서 알 수 있듯 애니메이션산업은 고부가가치를 발생시키는 주요 문화콘텐츠산업"이라 전제한 후 "OEM에서 창작애니메이션 수출로 전환하고 있는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이 전세계적 애니메이션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해외 공동제작 및 남북경협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최초의 남북합작 장편 애니메이션인 <왕후 심청>의 주인공 넬슨 신 에이콤 프로덕션 회장 역시 이에 힘을 더했다. 정부의 지원이나 개입 없이 스스로 남북 협력 애니메이션의 물꼬를 튼 그는 7년여의 노력 끝에 만들어낸 <왕후 심청>을 남북한 공동개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넬슨 신 회장은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SEK)의 평균 나이는 25세로 창작가들은 모두 젊은이들이다. 그들의 일하는 태도는 매우 열정적이며 집단적이다. 애니메이션에 있어 우선 연출을 이해한다"고 칭찬했다.
그는 "1967년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을 시작으로 OEM을 제외한 순수 국내 창작 작품으로 완성된 방송용 시리즈와 스페셜 그리고 극장용 장편을 모두 포함해 364편을 제작했다. 작품의 편수를 대비해 보더라도 북한에 비해 남한의 제작활동이 겨우 55%에 불과한 것"이라 지적하면서, "남북이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서로 우월한 것도 낙후된 것도 없다. 누가 좀 더 해외 트렌드와 테크닉에 대한 접근이 빠르고 용이한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북한의 제작규모에서 보이듯 그들의 제작능력을 최대한 가동하고 있다. 마치 한국 애니메이션계가 80년대를 넘어 90년대 부흥기를 맞기 시작했던 것과 흡사하다. 또 메인프로덕션은 물론 포스트프로덕션까지 북한 애니메이션의 제작실력은 충분하다. 대등한 교역상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넬슨 신 회장은 "한국 내 자체 애니메이션 제작 기반이 약화하고, 상실돼 가는 이때, 문화경제교류의 참의미와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면서 "일거리만 던져주는 것으로는 남북 문화 교류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과의 교류에 있어 교류 주체의 정당성과 상호 신뢰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스튜디오들과의 거래보다도 명확해야 하며 얕은 흥정 또는 양면성을 가진 단발적 거래가 아닌 보다 거시적인 안목의 교류 목적과 미래를 함께하고자 하는 올바른 상호 교류 목적만이 서로의 역할에 대한 기틀을 다지고,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면서 "점진적 대화를 통한 민간기구, 경제인, 정부의 전문가가 모여 진지한 정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넬슨 신의 주장처럼 북한의 제작실력은 세계에서도 충분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월트디즈니의 <포카혼타스>와 <헤라클레스> 등의 메인 작업도 북한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소속인 전영선 교수는 △풍부한 제작경험과 △남북애니메이션 공동제작 경험(<게으른 고양이 딩가>, <뽀롱뽀롱 뽀로로> 등) △문화콘텐츠산업의 창작소재로 활용될 수 있는 북한의 풍부한 문화유산 △적은 기술격차와 남북교류의 시너지 효과 등을 언급, 이것들이 남북 애니메이션 공동사업의 주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 평가했다.
한상정 프랑스 파리1대학 미학조형예술학 박사는 "북한은 남한, 유럽, 미국 등지의 약 70여 개의 애니메이션 회사들로부터 극장용 장·단편에서 텔레비전 시리즈까지, 2D에서 3D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수주 받아왔고, 작업 내용의 질에 대해서도 유럽사회의 인지는 이미 확실하다"고 말했다.
기업 차원에서 남북 애니메이션 공동 제작 작업을 경험했던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의 김종세 이사는 남북 교류의 사업 성과를 두루 언급, 남북교류를 통한 실리 생산 주장에 힘을 실었다. △실질적 사업 성과 제시로 북한 사업자의 자긍심 제고 △국내외로부터 삼천리측으로의 공동사업 제의 △남북 공동사업의 의미에 실질적 부가가치 창출로 대북사업의 모범 사례 구축 △북한 내 인적·물적 기반 확보로 장기적 관점에서의 사업 거점 확보 등 다수의 이유가 이를 뒷받침했다.
그는 이외에도 △잦은 교류를 통한 사업 참여 구성원간 문화적 이질감 해소 △애니메이션 OSMU 사업 성과에 대한 소개 △최신 기술 교육을 통한 상대 사업적 자체의 자생력 강화 △남북 애니메이션 공동 제작 이슈로 마케팅 효과 제고 등의 간접적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통일부 개성공단사업지원단 총괄지원팀의 이하나씨는 "'문화적 동질성 회복', '국내 애니메이션 국제적 협력 강화', '남북의 공동 번영' 등의 다양한 이유에서 남북교류가 필요하고, 이룰 위한 업계, 정부, 단체의 지속적 의사소통이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남북 교류의 근거지 설정'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최용환 경기개발연구원 통일문제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개성지역 활용성에 대해 주제를 던졌는데, 나선, 신의주, 개성, 금강산 등의 지역에서도 특히 개성 지역에서의 성공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그는 개성공단 입지의 또 다른 강점과 기회요인으로 '지정학적 강점'과 '경의선 도로/철도 연결' 등을 들기도 했다.
최 책임연구원은 다만 개성공단의 해결과제로 △노무관리 △통행/통신/통관 절차 개선 △출퇴근 문제 등을 언급했는데, 이는 다른 발표자들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렇듯 충분한 제작 능력과 함께 직간접적 효과를 가진 남북 애니메이션 제작 교류를 위해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참석자들은 교류 활성화를 위해 △공식적 차원의 남북 공동 협의 기구 구성 △북한의 애니메이션 유관산업이나 현황에 대한 실태 조사 △기술·인력·학술 교류협력을 통한 기반 확대 △공동 제작 추진 △남북 문화콘텐츠 제작센터 조성 등의 의견을 공통으로 내놓았다.
남북한 교류에 있어 통신·통관·통행을 개선할 단계적 기관이 없다는 것은 가장 큰 실질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참석자들은 △개성 공단 내 애니메이션 공동제작센터를 설치·운영하는 한편 △정부의 남북 합작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지원 △남북간 중립적 상사 분쟁 중재기관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종세 이사는 "△철저한 사전 준비와 예상 문제에 대한 대책 강구 △국내에서의 백업 체제 유지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장기적 성과를 위한 과제 도출 △단순 하청 방식에서 벗어나 공동 기획 참여방식으로의 발전 모색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에서 최근 분양이 완료된 개성공단이 실제 '사업 가능 지역'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이하나씨는 "현재 개성공단의 1차 분양이 마무리된 상태로, 향후 2차 분양시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문화콘텐츠산업의 입주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장기적인 안목에서 굳이 기업체가 아니더라도 개성 내 애니메이션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설치하는 것도 방안이 될 것"이라 말했다.
최용환 책임연구원은 "개성공단이 단순 임가공단지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문화콘텐츠가 쥐고 있다"면서 "북의 '저렴한 인건비 및 토지', '높은 수준의 인력', 'IT에 대한 높은 관심'이 남측의 '자본과 기술', '풍부한 콘텐츠', '시장 적응 노하우'와 만나 개성공단에서 꽃피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세 이사는 "직접적 현금 지원보다 기술력과 프로젝트 결과가 나오는 이러한 방식의 지원이 의미가 있다. 당장의 수익을 바라기보다는 한민족이라는 큰 기틀 아래 더불어 같이 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문화관광부 최보근 콘텐츠진흥팀장은 △남북합작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 △북측 애니메이터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실시 △남북 애니메이션 투자 펀드 조성 △한국 애니메이션 발전 정책 협의체 구성 △제도적 지원 방안 등의 실질적이고 정책적인 지원 방안을 언급했다.
한상정 박사는 "남북 공동기관의 설립, 통신·통관·통행의 간소화, 개성단지의 활용 등의 제도적 장치의 마련은 교류를 앞두고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일 뿐 아니라 향후 남북한의 공동제작을 넘어 제3국과의 공동작업을 하는 데도 적극적인 흡수요인이 될 것"이라며 "남북 애니메이션 교류에 대한 정책 입안은 남한의 애니메이션 진흥책과 함께 고려돼야 한다. 북한과의 합작이 마치 남한 인력을 대신하는 저가인력의 확보로 비쳐지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있어 마이너스 효과이며, 특히 국내에서도 반대의견을 야기할 수 있다. 남한의 수요확보와 생산량 증대 방안을 모색하여 정책을 입안하면서 그 주요 축의 하나로 북한과의 교류를 진행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 | 전영선 교수 "북한 애니메이션에는 폭력성이 없다" | | | | 전영선 교수는 '북한의 아동영화 관련 제도와 정책 분석'을 통해 북한 애니메이션을 주제별, 내용별로 구분하는 한편 북한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북한에서 애니메이션은 '아동영화', '만화영화', '그림영화', '련속그림' 등으로 불리는데, 인물이나 사물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생략과 함축, 축소와 확대, 과장과 같은 수법들을 널리 이용, 의인화한 수법과 환상의 수법이 널리 쓰이는 것.
또한 내용에 따라서는 '지식과 교양을 내용으로 하는 영화', '계급교양, 사회주의 애국교양, 공산주의 도덕 교양을 내용으로 하는 영화' '과학환상 영화' 등으로 구분된다.
주인공이 모범적인 인간상을 보여줘야 하며, 만화·인형·지형 영화와 같은 아동영화는 철저하게 환상적 심리에 기초해 제작돼야 한다. 또, 만화·인형 등 소재의 특성상, 그리고 아동들의 사고 구조의 단순성을 고려, 간결하고 선명한 구성이 요구된다. 이 모든 것들이 북한 애니메이션의 특징이다.
또 한 가지, 북한 애니메이션에 '있는 것'과 '없는 것'. 북한 애니메이션에는 로봇이 등장하지 않는다. 또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또 정치적 선전성이 약하고 전쟁영화와 같이 폭력성이 드러나는 작품이 없다. 물론 폭력성과 더불어 선정성도 찾기 어렵다. 반면 '과학적인 원리', '생활도덕', '삶의 지혜', '생활상식' 등을 추구하고 있다. | | | | |
| | 프랑스 사례에서 배우는 남북한 애니메이션 교류의 다양한 지원 방식 | | | 한상정 박사 제안 | | | | 유럽연합의 '메디아'는 유럽의 모든 시청각 산업-영화,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등을 부흥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다. 그 중 '카툰'은 1988년부터 시작된 애니메이션 분야 유럽 국가 상호간의 교류와 합력, 공동생산을 진흥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카툰 포럼', '카툰 무비', '카툰 마스터', '카툰 도르' 등의 4가지 프로그램으로 나뉘어 있다. 이 가운데 '카툰 포럼'은 1997년부터 시작한, 텔레비전 시리즈를 우한 애니메이션 공동 프로젝트를 위한 모임인데 매해 약 750여 개의 제작사들이 참석한다.
향후 남북 공동기관이 설립되면, 이 기관의 역할을 '카툰'처럼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관점으로 본다면 '메디아'처럼 모든 시청각 산업을 총괄하는 더 큰 공동기관의 설립과 그 하부 애니메이션 영역을 담당하는 기구를 둘 수도 있을 것이다. 구성 국가들 내의 산업(문화)의 진흥과 신진교육 그리고 프로모션이라는 삼자의 결합은 그 기관의 가장 기본적 역할이 될 수 있다.
또, 프랑스 문화부와 외무부가 함께 출자한 '펀드 쉬드'라는 게 있다.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한국, 일본 중국 제외), 중동, 동유럽과 중앙유럽의 국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필름당 약 1억 5천만 원에서 2억 원 가량까지 지원해주는 제도다. 이를 통해 우리의 경우, 남한의 스튜디오 제작사와 북한과의 공동제작을 지원정책의 한 형태로 설정하는 제도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1985년 프랑스와 캐나다 사이에 실현된 조약에서도 이러한 사례는 찾아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캐나다는 프랑스의 애니메이션 영역에 있어 예외적인 파트너가 됐다. 프랑스는 45만 유로를 그리고 캐나다는 60만 달러를 애니메이션 공동제작을 위해 투자하고 있고, 이 제작비용의 25% 이하만이 캐나다나 프랑스가 아닌 곳에서 쓰일 수 있다. 이러한 선투자를 통해 1992년부터 2001년까지 10년간 107개의 애니메이션 합작물과, 2323개의 합작 에피소드들이 생산됐다. | | | |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문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