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폐교 위기에 몰린 공업고등학교가 있다. 깊은 산골 오지에 있는 학교가 아니다. 서울 한복판 성동구 옥수동에 있다. 학생이 없는 것도 아니다. 현재 이 학교에는 21개 학급 650여 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문제가 된 학교는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 지역주민들은 무려 7년동안 이 학교 학생들에게 떠나라고 요구해 왔다. 그래서 학교 측은 이전을 결정했다. 그런데 이번엔 이전 예정지에서 오지 말라며 막아섰다. 결국 서울시교육청은 폐교를 행정예고했다. 그렇다면 폐교의 진짜 원인은?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의 말속에 답이 있다. "요즘 공고는 거의 혐오시설이 됐어요. 주민들이 특목고나 인문계 고등학교 좋아하지, 공고를 학교로 치기나 하나요? 주변에 공고 있으면 집값 떨어진다고 아주 싫어해요." 초등학교가 없는 '비싼 동네'... "공고 자리 탐나네" 동호정보고는 성동구와 중구의 경계에 있다. 학교 후문 바로 앞에는 중구 남산타운아파트가 있다. 42개 동 5150 세대의 남산타운아파트는 중구에서 부유층이 모여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서울 도심과 강남으로의 접근이 쉬워 평당 분양가는 2000만원이 넘는다. 그러나 2000년에 들어선 '비싼' 남산타운아파트에는 없는 게 있다. 바로 초등학교다.원래 2000~3000세대의 주거공간이 새로 들어서면 초등학교를 지어야 한다. 그런데 5150세대가 넘는 남산타운아파트에는 왜 초등학교가 없을까. 재개발 조합은 당시 조금이라도 더 이윤을 남기기 위해 5150세대 아파트 단지를 약 1700세대씩 세 구역으로 나누어 지었다. 따라서 조합원들은 학교용지 분담금을 내지 않았고, 초등학교를 짓지 않았다. 결국 법을 피해 초등학교 대신 아파트를 더 지을 수 있었지만 현재 남산타운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도보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인근 장충초등학교 등으로 통학하는 번거로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남산타운아파트 주민들에게 초등학교 부지 확보는 입주할 때부터 염원이었다.불똥은 동호정보공고와 학생들에게 튀었다. 특목고도, 인문계도 아닌 동호정보공고는 주민들에게 눈엣가시였다.주민들은 "동호정보공고를 내보내고 초등학교를 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이 목소리는 선거 때마다 중구의 최대 유권자인 남산타운아파트 주민들의 강력한 요구사항으로 등장했다. 결국 서울시교육청은 2004년 10월 동호정보공고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아파트 주변 부동산업자들은 "공고가 이전하고 초등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은 현재보다 10% 이상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 남산타운아파트 곳곳에는 이런 현수막이 걸렸다. "축 동호정보공고 이전" 동호정보공고 학생들은 이런 현수막을 보며 학교에 다녀야 했다. 서로 떠넘기는 주민들... 공고는 혐오시설?
막상 학교 옮기려니 그것도 쉽지 않았다. 2005년 용산구, 그리고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발산지구로의 이전을 검토했으나 모두 해당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공고 불가"가 이유였다. 올해 교육청은 마포구의 아현산업학교와 동호정보공고의 통폐합을 추진했다. 두 학교를 합쳐 마포구 아현동에 방송특성화고를 만들자는 계획이다. 그런데 이번엔 마포구 주민들이 반발했다. 역시 이유는 "공고 불가"였다. 교육청 홈페이지 '업무마당'에는 남산타운아파트 주민들과 마포구 주민들의 낯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자신을 마포구 주민이라고 밝힌 두 네티즌의 글을 보자. "설령 동호정보공고와 방송특화고가 별개라 치더라도 우리 주민들은 방송특화고의 신설을 적극 반대합니다. 우리 마포구 주민의 절실한 바람은 아현산업정보학교 자리에 특목고나 자사고를 유치하는 것입니다." "인문계 고교가 부족한 마포구, 특히 대형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아현동 인근 아현직업학교를 인문계 고등학교로 변경시켜주시기를 강력히 건의합니다. 주민들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인근에 실업계 고교만 두개라니, 도대체 학교의 분포는 어떠한 기준으로 만드는 것인지요. 이러한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즉각 중지하고 인문계 고등학교 내지는 특목고로의 변경을 다시 한번 요청합니다." 마포구청의 한 관계자는 "실업계 고등학교가 들어서는 것 자체를 주민들이 싫어한다"며 "게다가 남산타운아파트 주민들이 쫓아낸 학교를 마포구에서 받아들이는 것도 용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산타운아파트 주민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그 곳에서 살고 있다며 교육청 홈페이지에 글을 남긴 한 네티즌은 "동호정보공고 자리에 초등학교를 설립한다는 교육청 결정을 쌍수들어 환영하고 칭송한다"며 "그간의 사정들이야 어떻든 간에 어려운 결정을 해준 교육청에게 학부모로서, 주민으로서, 또한 구민으로서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 밝혔다. 남산타운아파트에서 만난 한 주민도 "공고야 꼭 이곳이 아니어도 어디에 있든 상관없지 않느냐"며 "폐교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초등학교"라고 말했다. "바보 소리 듣던 우리도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사라진다니" 자신들 학교의 존폐를 둘러싸고 벌이는 양쪽 주민들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가슴엔 큰 상처가 생겼다. 동호정보공고에 다니는 한 학생은 교육청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 "집값과 아파트 이미지에 신경쓰기 급급한 주민들의 모습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초등학생 자녀를 가진 분들의 호소는 그저 겉포장에 불과한 거였습니까? 그리고 사람들의 의견을 보니, 몇천 세대의 아파트를 지을 동안 초등학교 부지를 마련하지 못한 건 건설업체와 입주민들 때문인가요. 아니면 애초에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를 넘보고 돈에 눈이 멀어 욕심을 낸 건가요?" 다른 학생도 글을 남겼다. 이 학생은 "제발 폐교만은 하지 말아달라"며 애원하고 있다.
"동호정보공고는 그런 학교입니다. 공부 못하고 '바보' 소리 듣던 아이들도 가슴을 펴고 당당해지고 눈을 뜨고 꿈을 꿀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 학교를 폐교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에게 설령 100명도 안 되는 학생이라도, 10명이 안 되는 학생이라도 당당하게 가슴을 펼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제발 폐교만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동호정보공고의 교사들과 학생들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6000여 평에 이르는 학교 규모를 줄이고 초등학교를 짓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폐교를 막고 이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태선 동호정보공고 교장은 "방송특성화 고교로 가겠다고 학생도 뽑고 중3 학생들을 상대로 홍보도 했는데, 폐지를 목전에 두고 있다"며 "교사로서 학교를 지켜주는 게 학생들을 위한 것 아니냐"며 한숨을 쉬었다. 오성훈 교사도 "동호정보공고가 폐교되면 서울에서 공고는 차례로 사라질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모진 상처를 주는 이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되려는지 모르겠다"며 가슴을 쳤다. 서울에는 79개의 실업계 고등학교가 있다. 여기에는 총 6만7480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동호정보공고에서 만난 한 학생은 화난 목소리로 "우리가 핵폐기장이나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이냐"고 내뱉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9월 7일까지 동호정보고 폐교에 관한 의견을 듣는다. 그 후 교육위원회에서 폐교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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