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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에 좋다는 한약과 환약
다이어트에 좋다는 한약과 환약 ⓒ 김혜원
"어허~ 보기보다 비만인데요. 7kg은 빼야 되겠어요."

다이어트 약을 잘 지어준다고 소문난 한의원. 이런 저런 기계를 통해 나의 체지방을 측정한 한의사는 심각한 목소리로 비만임을 알려준다.

"이 약 먹으면 빠질까요? 제가 워낙 안 해본 게 없거든요. 할 때마다 부작용도 심했구요."
"우리 약은 다릅니다. 저도 먹는 걸요. 몸에 좋은 국산 한약제만을 선별해서 체질에 맞추어 지어드리니 아무 걱정 말고 드세요. 몸속에 어혈도 쌓이고, 화도 많고,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래요. 마음 쓰는 일이 많으신가 봐요. 두세 달 드시면 분명히 효과 보십니다. 마음도 많이 편해질 거구요. 환약까지 함께 드시면 효과가 빠르니 그렇게 드세요."

한의사라더니 '스트레스나 홧병이 원인'이라면서 신경정신과 의사 같은 말을 한다. 하긴 내가 신경 쓰는 일이 많긴 많다. 부모님 모시랴, 애들 신경 쓰랴, 살림하랴, <오마이뉴스>에 기사 쓰랴…. 하지만 이 정도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비만이 된다면 날씬한 아줌마들은 모두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동물이란 말인가?

스트레스 때문에 거식증과 폭식증 오가

지난해 다이어트 약 처방을 받기 위해 찾았던 신경정신과에서도 같은 진단을 받았다. 주부 우울증에서 비롯된 비만이라는 것이다. 폭식 혹은 거식은 우울증의 상징적인 한 증상이다. 내 경우 아주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거식증이, 조금 심한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식증이 나타난다.

폭식의 주 메뉴는 케이크나 아이스크림처럼 단 음식과 갈비나 삼겹살 같은 기름진 음식이다. 속이 느글느글할 정도로 고기를 먹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을 한 후 생크림과 시럽이 듬뿍 들어간 '카라멜 마키아토'까지 한잔 하고 나면 좀 전까지 무슨 걱정거리가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부른 배를 끌어안고 자는 포근한 낮잠. 생각만 해도 행복감이 밀려온다.

고민이 많아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행복한 돼지가 되고픈 나. 그러다 보니 한해 한해 몸무게는 늘어갔고, 늘어가는 몸무게만큼의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다 보니 늘어나는 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또다시 먹는 것에 집착하고….

"아이구 우리 꽃돼지. 이거 다 당신 살이지? 아주 똥똥하니 볼만 하네."
"앞으로 봐도 둥글 뒤로 봐도 둥글. 조금 있으면 굴러다니겠다. 양심 있으면 살 좀 빼라. 돼지가 친구하자고 하겠다."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은 나를 '꽃돼지'라 불렀다. 아이들도 엄마의 통통한 아랫배에 '임신 5개월?'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나는 어느새 '임신 5개월'의 '꽃돼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담 사이즈나 빅 사이즈 매장을 가보시는 게..."

남편의 핀잔이나 아이들의 놀림에도 66사이즈 옷을 간신히 입을 만했던 6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병적(?)으로 다이어트에 집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카 녀석이 태어나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나마 꾸준히 하던 운동마저 접고 육아에만 전념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구석 살들이 늘어 기성복조차 맞지 않는 기형의 몸매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저 손님 저희 가게엔 손님 사이즈가 없는데요. 저희 가게엔 66이 가장 큰 사이즈거든요."
"마담 사이즈나 빅 사이즈 매장에 가보시면 맞는 옷이 있을 거예요."

바지는 허벅지에서 더 이상 올라오지 않고 블라우스는 굵은 팔뚝에 걸려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어쩌다 간신히 끼워 넣어도 숨 한번 크게 쉬면 단추가 떨어져 나가니 옷가게 점원인들 이런 내가 옷을 입어보는 것이 좋을 리 있겠는가.

옷가게를 돌아 나올 때의 그 처참함이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른다.

한때 비만관리실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나는 비만치료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비만관리실을 하면서 자신의 의지만이 비만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걸 오히려 더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 그놈의 '의지'가 문제였다.

다른 것에는 몰라도 음식과 운동 앞에서 나는 늘 '의지박약'이 된다. 그만 먹어야지 하면서도 수저가 놓이지 않고, 오늘부터는 줄넘기라도 해야지 하지만 줄넘기 잡기가 밥 굶기보다 더 힘들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다이어트 치료제
병원에서 처방받은 다이어트 치료제 ⓒ 김혜원
도저히 본인의 의지로는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전문가를 찾게 된다. '그래, 전문가는 뭔가 다르겠지. 내 고민을 해결해 줄 거야…'하며 5년 전 처음으로 찾은 곳은 집에서도 엄청 먼 거리인 양천구에 있는 한의원이었다.

비전문가로 비만관리실을 경영했던 나는 한의원에 들어서자마자 의사 면허부터 확인했다. 세상은 딱 자기 수준만큼만 보인다고, 내가 그래 보았으니 남들도 그러지 않을까 의심이 생겼던 것이다.

당연히 한의사는 유명 한의대를 졸업한 명망 있는 사람이었다. 키와 몸무게, 체지방 측정을 하고, 맥까지 짚어 본 후 한의사는 내게 말했다.

"체질상 지방분해가 잘 안 되는 체질이구요.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누구나 기초 대사량이 떨어져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대사량을 높여주면 많이 효과를 봅니다. 우선 한약을 한 달만 드셔 보시구요. 한 달 뒤 다시 오세요."

전문가다운 그럴 듯한 설명에 홀딱 넘어간 나는 앞뒤 볼 것도 없이 15만원을 들여 한 달치 약을 지어왔다.

그런데 먹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닌 것이다. 원래도 한약냄새라면 헛구역질부터 하는 내가 어디 아픈 것도 아니고 살을 빼기 위해 쓴 한약을 지어다 먹는다고 하니 당장 남편부터 놀려대기 시작이다.

"돈 들여 먹을 땐 언제고 이젠 돈 들여 빼는 거야? 참 미련하기도 하다."
"당신이 뚱땡이라고 놀렸잖아."

아무튼 한약의 효과는 일주일 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입맛이 딱 떨어져 버린 것이다. 단것을 먹어도 단맛을 느끼지 못하고 커피를 마시면 소태처럼 쓰고 밥 역시 입안에서 깔깔하게 맴도는 것이 마치 모래를 씹는 것 같으니 어찌 살이 빠지지 않으리….

"못 먹겠어."
"이 사람 그래도 먹어봐. 이러다 쓰러진다. 큰일 나. 저놈의 한약 봉지 다 갖다 버려. 생병나잖아."
"안돼. 다 먹고 한 달만 더 먹으면 몰라보게 날씬해질 거야. 힘들면 누워 지내면 되지."
"당신이 환자니?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해야지. 집안 꼴 좀 봐라."

한약 한 달 먹고 '요요', 이번엔 우울증치료제

결국 한 달밖에 먹지 못했지만 5kg이 넘는 감량에 성공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입 안에 넣으면 소태처럼 쓰고 모래알처럼 깔깔한데 살이 빠지지 않을 리 있겠는가?

눈도 퀭하고, 피부도 까칠했지만 저울에 올라설 때마다 줄어드는 몸무게 때문에 즐거워했던 한 달. 하지만 한약을 끊고 일주일쯤 지나니 무서운 식욕이 솟아났다. 결국 두 달 만에 감량했던 5kg을 초과해 오히려 7kg이 쪄버리는 '요요'가 와 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우리에겐 발전된 현대의학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주부 우울증으로 인한 비만을 잘 고친다는 신경정신과였다.

"원래는 우울증 치료체로 사용해왔던 약인데 사용하다 보니 체중 감량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지요. 최근 세계에서 사용되는 다이어트 약 중에서는 가장 부작용이 적은 약이니 안심하시고 드셔도 됩니다."

그래서 처방받은 것이 '제○○'과 '리○○'.

'제○○'은 체내 지방축적을 방해하고 지방의 배설을 돕는 약이라 기름진 식사 전후 30분 이내에 먹는 약이며 리○○은 하루에 한번 한 알 복용으로 식욕을 억제에 도움을 주는 약이다.

3개월 동안 꾸준히 들어간 약값만도 적지 않다. 두 약은 보험이 제외된 약이라 한 달치 병원비와 약값으로 20만원이 넘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워낙 독한 한약을 먹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약을 복용한 후 큰 감량효과는 없었다. 3kg 정도 감량이 전부였다.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이어트에 좋다는 녹차를 하루 종일 달고 산다
다이어트에 좋다는 녹차를 하루 종일 달고 산다 ⓒ 김혜원
두 약을 더는 복용하지 않고 있을 무렵 아줌마들 사이에 또 다른 바람이 불었다. '메○○○○'라고 불리는 비만치료용 주사가 있다는 것이다.

이 주사는 특히 뱃살이나 허벅지살, 팔뚝살과 같은 부분 비만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지방층이 자리 잡은 곳에 바로 주사를 해서 지방을 배출되기 쉬운 상태로 녹여 내거나 분해한다는 방법인데 몇몇 아줌마들이 주사를 맞고 효과를 보았다는 소문이 솔솔 들려왔던 것이다.

비만탈출을 마음먹은 상태에서 두려울 것은 없었다. '구역질 나는 한약을 먹느니 차라리 주사 한방 맞는 것이 편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병원을 찾았다. 한번 시술에 3만원. 임신 5개월이라 불리는 아랫배에 주사를 맞았다. 다른 주사처럼 수직으로 깊숙이 찌르는 것이 아니라 피하지방층을 따라 마치 산적을 꿰듯 수평으로 놓는데 한 번에 세 방은 기본이었다.

뱃살을 빼자고 침대에 누워 주삿바늘로 산적을 꿰고 있는 자신을 상상해보라. 참으로 처참한 기분이다. 나에게 맞지 않았는지 다이어트 시술에 내성이 생겼는지 한 달 여 주사를 맞으러 다녔지만 2kg 감량이 고작이었다. 어떤 방법이든 끝나고 한 달 후면 요요가 왔고. 요요는 늘 저울 눈금 하나씩을 더 올려주었다.

기사를 쓰느라 지난 5년간 나의 다이어트 이력을 돌아보니 물심양면의 노력에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다. 그러나 경락도 받아보았고, 비만 침도 맞아보았고, 변비약에 건강식품에 건강보조기구까지 좋다는 건 다 해보았지만 내 살은 여전히 그대로니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아! 얄밉도록 주인을 사랑하는 살, 살, 내 살들….

이쯤 되면 지쳐서 비만과의 전쟁을 포기할 만도 하지만 이상한 것은 하면 할수록 이상한 집착이 생긴다는 것이다. '다이어트 집착증'이라는 새로운 병이 생긴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비만이 질병이라는 것에 깊이 공감한다.

여름이 되기 전 또다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한의원을 찾았다가 이번엔 기초 대사량을 늘려준다는 환약까지 함께 지어왔다. 비만에 좋다는 녹차도 장복하고 있으며 매주 한 번씩 찜질방에 가서 땀 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억울하다. 분하다. 이처럼 다이어트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왜 저울은 내 노력에 늘 배신하는지…. 그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비만=질병 응모작


#다이어트#비만#우울증#폭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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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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