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고. 안 할 란다. 내가 이제사 이런 거 해각꼬 뭐 할락꼬. 걸어 댕기게 해 준다카믄 모륵까." 나는 어머니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기도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그라믄 절에 가믄 옷에 오줌도 안 싸게 될까?" "그럼요. 기도하면 부처님이 다 해 주지요." "에라이. 그렁기 어딕노! 그란닥카믄 절에 안 가는 사람이 어딧겠노. 침재이 한테 가서 침을 맞든지 해야지. 이 다리는 인자 안 돼. 너무 오래 돼서 침 맞아도 안 돼." 오랜 동안 공을 들였건만 부처님오신 날 아침에 어머니는 절에 안 간다고 뻗대었다. "나는 꼼짝 안 하고 누버있능기 제일 편하다. 나 같은 병신 덱꼬 댕길락카믄 너만 고생이다." 이럴 때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함께 살면서 책으로 공부하고 전문가와 상담하면서 내 나름대로 익힌 방법이다. 그 방법을 쓰자 결국 어머니는 나랑 절에 가기로 했다. 그 방법이란 별게 아니다. 어머니의 생각이나 주장을 즉석에서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어떤 경우에도 "그거 아니다"고 하면 안 된다. "좀 가만히 있으라" 든가 "이제 그만해요" 등등의 말을 나는 어머니에게 절대 쓰지 않는다. 자기 존재성에 대해 자신감을 잃고 있는 노인네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똥 누는 사람 주저앉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그럼요! 그렇지요!"라고 일단 동의를 해 준다. 동의 해 줄 수 없는 경우에는 어머님 말씀을 그대로 반복해 준다. 가령 이렇다. "가만히 누워 계시는 게 편 하시다구요? 저랑 같이 다니면 제가 고생 일 거라고요?"라고. 이 단계가 충분하다 싶으면 얼른 화제를 전혀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것도 어머니가 아주 좋아하는 화제로. 그래서 마음을 바꾸기 전에 기분부터 바뀌게 하는 것이다. 이날 아침에 나는 "어무이 오늘 아침은 콩죽 한번 해 묵어 볼까요?"라고 하여 기분을 바꿔 드렸던 것이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고소한 콩죽을 두 그릇이나 비웠을 때 나는 "음식은 절 음식이 최곤기라. 오늘 절에 가믄 맛있는 게 엄청 많을텐데..."라고 했더니 어머니 반응이 달라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데 빈손으로 어찌 가노? 갈라믄 뭘 들고 가야지. 오늘이 부처한테는 생일날인긴데"라고 하셨다. 이쯤 되면 이미 마음이 기울고 있기 때문에 서둘 필요는 없다. 같이 가실 거냐면서 괜히 딱 부러지는 답변을 요구하면서 어머니의 변심을 확인하는 것은 어머니 자존심을 다치게 할 수 있다. "그러게요. 진짜 그렇네? 뭘 가져 각꼬요?" "너 고사리 꺾어 논 거 있나?" "예. 조금 있는데요." "치 나물도 그때 봉께 많이 말리드만?" "고사리랑 치 나물 가져 각까요?" "그라믄 안 되겠나. 절에 산나물 가져가믄 조탁카지." 이렇게 해서 어머니가 역사적인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우리집 올 때의 단순 이동과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순수한 나들이였다. 늙어가는 자식이 다 늙은 엄마 손 잡고 꽃피는 봄날에 놀러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장군처럼 트럭에 올라탔다. (20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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