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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의 산등성이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해수면과 같은 높이라는 안내판과 표지석
ⓒ 이승철
예루살렘에서 사해로 가는 길은 처음부터 내리막길이었다. 예루살렘이 해발 800미터나 되는 고지대였기 때문이었다. 도시의 중심부를 벗어나자 외곽지역엔 황량한 산자락에 드문드문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주택의 지붕 위에 있는 물탱크들의 색이었다. 어느 마을은 대부분 파란색인가 하면 어느 마을은 대부분 하얀색이었다. 물론 하얀색과 파란색이 섞여있는 마을도 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두 가지 색 외에 다른 색은 없었다.

"이 나라에서는 유대인이 사는 집과 아랍인이 사는 집을 저 지붕 위의 물통 색깔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모두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지붕 위에 있는 물통들이야 건축법에 따른 규격만 맞추면 색상은 집주인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나라에선 그게 아니었다.

"가령 유대인의 집 지붕 위에 있는 물통은 하얀색만 사용하게 하고 아랍인의 집은 파란색만 사용하게 한 것입니다. 전쟁이나 유사시에 정부군이나 비행기에서 쉽게 식별하기 위해서지요."

그러고 보니 지붕 위의 물통 색이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인종을 구별하여 유사시에 대비했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참, 무서운 일이네, 만약에 양측의 충돌로 전쟁이 나면 저 지붕 위의 물통 색깔에 따라 폭격을 당하는 마을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

역시 인종 간에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 나라의 특수한 환경이 만들어 놓은 또 하나의 섬뜩한 진풍경이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여전히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었다. 포장이 잘 된 도로는 도시 변두리지대를 구불구불 휘감아 돌며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것도 잠깐, 곧 황량한 사막지대가 나타났다. 높고 낮은 산들이 이어진 사막은 그래도 골짜기에 물이 흐른 자국들이 보인다. 이 지역에는 겨울철에 약간의 비가 내리기 때문인 것이다.

"어머! 저기 좀 보세요? 저런 집 참 오랜만에 다시 보네요."

조금 더 내려가자 역시 사막의 산골짜기에 움막 같은 집들이 나타났다. 사막을 떠돌며 살아가는 베드윈족들의 마을이었다. 여성일행들은 이집트의 시나이반도와 요르단 사막지대에서 보았던 베드윈족들의 거주지가 기억이 새로운지 특이한 마을풍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 예루살렘 변두리지역 마을 풍경
ⓒ 이승철
▲ 산악지역 사막풍경
ⓒ 이승철
그들의 거주지 부근에서는 어김없이 염소나 양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집트나 요르단의 아주 메마른 사막기대와는 달리 이곳 사막지대에는 파릇파릇한 작은 풀들이 자라고 있는 산들이 더러 있었다. 마침 계절이 비가 내리는 겨울철이어서 풀이 조금씩 자라는 모양이었다.

"자! 저 앞에서 잠깐 내려 구경하고 가겠습니다."

가이드 서 선생이 갑자기 쉬어가겠다고 말했다. 버스는 여전히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사막의 산악지대를 달리고 있었다. 모두 영문을 몰라 밖에 뭐가 있나 하고 살펴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여전히 황량한 사막뿐이었다.

그런데 도로 옆의 약간 넓은 공터에 버스가 정차하자 가이드가 이곳이 바로 바닷물의 표면과 같은 높이인 해발 제로지대라고 설명을 해주는 것이었다.

"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 산등성이가 바닷물과 같은 높이라고?"

누군가 선뜻 이해가 되자 않는다는 듯이 반문한다.

"우리들이 지금 가고 있는 사해라는 곳은 사막 가운데 내륙 속에 있는 바다입니다, 그런데 이 사해의 표면은 다른 바다의 표면보다도 무려 398미터나 낮은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지금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계속 내려가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들이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바로 바다표면과 높이가 같은 해발 0m 지역인 것입니다."

가이드의 긴 설명을 듣고서야 모두들 만족스럽게 이해하는 눈치다. 사해라는 바다가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는 정도는 모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높아 보이는 사막의 산줄기가 바다표면과 같은 높이라는 것은 미처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만약에 지중해에서 수로를 파서 이곳까지 연결하면 저기 보이는 저 앞 산등성이와 골짜기는 모두 바다가 되고 말겠네요?"

산줄기와 골짜기가 바다보다 낮다는 것이 아무래도 실감이 나지 않는지 다른 사람이 또 질문을 한다.

"그렇지요, 만약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지금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저 앞 산줄기와 골짜기는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깊은 바다가 되고 말 것입니다."

모두 주변을 둘러본다. 주변은 온통 메마른 산과 골짜기들이다. 그런데 이 산줄기와 골짜기가 바다보다 낮다니 아무래도 믿기지 않고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 베드윈족 마을 풍경
ⓒ 이승철
▲ 비가 내리는 겨울철이어서 작은 풀이 자라는 사막의 산
ⓒ 이승철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옆으로 낙타를 끈 아랍인이 나타났다. 우리가 버스를 세우고 내렸는데 자신이 서 있는 곳으로 오지 않고 우리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스스로 찾아온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이방인들을 상대로 낙타 태워주기 영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대개 이방인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잠깐 내렸다가 가는 것이 상례화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낙타를 끌고 온 아랍인은 우리에게 낙타를 타보라고 권한다. 한 번 타는데 5달러씩을 내라고 한다. 몇 사람이 낙타를 탔다. 낙타를 탄 사람들은 근처를 한 바퀴 돌아왔다,

그 사이 다른 사람들은 해발 0지대(SEA LEVEL)라고 쓰여 있는 도로변의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표지석 옆을 달리는 도로는 교통량이 상당히 많았다. 이 도로가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여리고와 사해를 거쳐 이집트로 연결되는 도로이기 때문이다.

몇 사람은 멀리 바라보이는 골짜기의 베드윈족 마을을 찾아보고 싶어했지만 그쪽까지 다녀오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 포기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 어딘지 아세요?"
"그야 당연히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겠지요."

누구나 쉽게 아는 문제다. 가장 높다는 말은 바로 바다표면에서 위로 솟아 있는 높이를 말한다. 그럼 바다표면의 높이는 과연 어떤 기준을 갖고 있을까.

지구는 둥글다, 그리고 바닷물의 높이도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다. 밀물과 썰물 때의 높이가 다르고 잔잔한 바다와 파도가 출렁일 때의 바다가 또 다르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라마다 해수면의 수준점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물론 그 수준점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그 수준점에 의하여 백두산의 높이를 해발 2744미터라고 한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이 수준점이 우리 남한과 달라서 같은 높이의 백두산을 2750미터로 측정하는 것이다.

▲ 낙타를 끌고 다가온 아랍인
ⓒ 이승철
▲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베드윈 마을
ⓒ 이승철
이렇게 같은 산을 놓고도 수준점이 다르기 때문에 측정되는 높이도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그래서 현재 국제적으로 지피에스(GPS)를 사용한 높이 측정이 공인받고 있다. 지피에스(GPS)는 글로벌 포지셔닝 시스템(Global Positioning System)의 약자인데 전 지구(全地球) 위치 확인 시스템을 말하는 것으로 지오이드(geoid)를 기준으로 높이를 측정하는 것이다.

둥글지만 높낮이가 심한 지구의 모양을 나타내는 데는 지표면을 그대로 나타내는 방법과 지구를 단순히 회전타원체로 나타내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지표면을 실제로 나타내기는 매우 어렵고, 지구타원체를 이용하는 방법은 지표면의 요철(凹凸)을 전혀 나타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지표면보다는 단순하면서 회전타원체보다는 실제에 가깝게 지구의 모양을 나타낸 것이 지오이드(geoid)이다. 지오이드는 지표면의 70%를 차지하는 해수면의 평균을 잡아서 육지까지 연장한 것이다. 어디에서나 중력방향에서 수직이며 바다에서는 평균해수면과 일치하고 육지에서는 땅속을 통과하게 된다.

지오이드는 지구상에서 중력의 힘이 같은 지점을 연결한 선이다. 이때의 지오이드는 바다에서는 평균해수면을 가리키고 대륙은 땅 밑에 가상의 터널을 뚫었을 경우 해수면의 높이로 정의하여 이 선을 해발 0m로 잡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이 바닷물의 표면높이와 같은 0m라는 측정치가 국제공인 지피에스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이스라엘 자체의 수준점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것참, 산과 육지의 높이를 측정하는 방법도 엄청 복잡하네요. 그런데 이곳이 그렇게 복잡하게 측정한 것이라면 틀림없을 텐데, 그래도 이곳이 바닷물의 높이와 같은 지점이라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네,"

"그러게 말예요, 이 산들과 바다가 같은 높이라니,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고."

무리도 아니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일단 바다는 상상이 되지 않는 황량한 사막의 산악지대였기 때문이다.

▲ 표지석 옆 도로를 달리는 차량행렬
ⓒ 이승철
"세상 참, 신기하구먼,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눈으로 보기에는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산악지역이면서 바닷물의 높이와 같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현장을 보는 것은 정말 놀랍고 신기한 일임이 틀림없었다. 잠시 후 일행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더욱 신비한 자연의 세계를 찾아 사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사해, #사막, #해수면, #예루살렘, #베드윈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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