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한 번씩 고향에 풀 베러 간다. 얼굴도 모르는 고조, 증조 어른들이지만, 이제는 화장 모시고 벌초할 묘도 몇 없어, 사촌들이 예초기로 전날 말끔히 풀 베어 놓은 묘에 빈 얼굴 들고 건성으로 모인다.
왜 그리 이맘때만 되면 공연히 바빠지는지, 마지못해 가는 고향길이다. 길을 메우며 고향을 찾는 이 차들도 오래지 않아 한산해질 것이다. 아침 안개에 싸인 남한강의 강마을이 고향집처럼 아스름하다.
고향은 언제나 흑백으로 남는다. 마편초 곱게 피고, 담장에 노란 호박꽃이 활짝 피었건만 눈 감고 그려보는 고향은 언제나 흑백사진이다.
곱게 마루에 앉던 새집 할머니는 흙이 된 지 오래고, 새 주인이 된 이가 대신 가꾼 꽃밭이 어여쁘다. 고향에서는 곱고 예쁜 것도 슬프다. 등 돌리고 떠날 때 차마 두고 가기 가슴 아플까? 너무 곱고 예쁜 것도 슬프게 보인다.
어른들 몰래 담배를 배우던 때, 수북이 자라던 담배 밭이 있고, 건조실이 있던 밭에는 요새 금 좋다는 배추가 심겨지고, 원두막도 아니고, 비료 부대나 담아 두는 농막 뒤로 새로 지은 아파트가 낯설기만 하다.
추녀에 매단 갈퀴며, 쇠스랑이며 여름마다 강으로 나가 번쩍거리는 고기들을 건져 올리던 그물이며, 중풍으로 쓰러진 숙부를 뵈면 더욱 서글퍼지는데 사촌이 부지런히 쌓아놓은 나뭇단들이 조금은 따스하다.
이제 제비도 오지 않는 추녀 밑에는 빈 제비집만 덩그러니 매달려 있고, 오랜 산자(散子) 흙이 지나는 바람도 없이 세월처럼 흘러내린다.
모처럼 모인 어른들이 내 눈에도 아직 선한 할아버지를 면례(緬禮)할 이야기를 나누는 걸
어린아이처럼 조용히 듣는다. 물이 나는 묘라서 화장 모신다는데, 친척들 꿈속에서 말없이 나타난다는 우리 할아버지 묘마저 없어져 바람에 삭은 재 둔덕에 뿌리고 나면 고추밭이 되고, 마늘밭 되겠지.
더 이상 벌초 날이 되어도 나는 이제는 공연히 바쁜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마지못해 고향을 찾지도 않겠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추후 '남양주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