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을 본 배군관이 무슨 일인가 싶어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섰다. 그 바람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며 김억만의 얘기가 뚝 끊기고 말았다. “거 무슨 얘기를 하다가 내가 가니 안 하는 건가? 역적모의라도 했나?” 나름대로 배군관은 농담을 한 것이었지만 매사 엄격했던 배군관이었기에 사람들에게 이 말이 전혀 농담 같지가 않았다. 급기야는 슬며시 자리를 피하려는 사람까지 나오자 김억만은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배군관님! 내 호랑이 잡은 얘기를 하고 있었소! 호랑이를 잡은 뒤에 이상한 일이 있었는데 들어보지 않으려우?” “그래 어디 한번 해보려무나.” 배군관이 김억만의 장단을 맞춰주자 그제야 사람들이 조금 긴장을 풀고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앉았다. “호랑이 가죽을 벗겨서 뜨끈한 아랫목에 펼치고 누워 끔뻑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우리 집 지붕 위에 호랑이를 타고 나타나지 않겠슴매? 그리고 이렇게 말합디다.” ‘네가 감히 내 호랑이 벼락이를 죽였으니 그 죄를 갚을지어다!’ 김억만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손을 크게 펼쳐 부르르 떨었다. “꿈속이지만 기가 막히지 않았겠수? ‘호랑이가 나타나 날 물어갈지도 몰라서 총을 쏜 것인데 난 앉아서 죽으란 말이오?’ 이랬더니 그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더이다. ‘어찌 호랑이 뿐이랴! 네놈이 쌓은 업이 바로 짐승을 살생하는 것이니라! 멀고 먼 북쪽으로 가면 바다와 같은 호수가 있다. 그 호수에 호랑이 꼬리를 던져 네 죄를 갚아라. 그렇지 않으면 그 업을 어찌 다 갚을꼬!’ 이러고서는 지붕위에서 내려와 날 잡아 태우고 마구 달리지 않겠소! 그 와중에 난 잠에서 깼지 뭐요!”
“어허!” 사람들이 탄식했건만 막상 김억만은 태연자약하게 바지춤을 풀러 무엇인가를 꺼내었다. 그것은 호랑이 꼬리였다. “그 꿈을 꾼 뒤 내 행여 몰라 호랑이 꼬리를 지니고 있었소. 그런데 이번에 북쪽으로 가게 되니 그곳에 바다와도 같은 호수가 있다면 이걸 던질 참이외다.” “그런데 호피는 어떻게 했나?” 배군관이 묻자 김억만은 살쩍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런 물건을 지니고 있겠소? 당연히 감영에 팔았지만 꼬리가 없어 제 값도 못 받았꼬마.” 사람들은 그 말에 배를 잡고 웃어대었다. “아니 이 사람아 그런 꿈 하나 꾸었다고 애써 잡아 벗긴 호랑이 가죽을 스스로 망쳐버렸나? 하하하.” 모두가 웃는 와중에 웃지 않는 이는 배군관 뿐이었다. 김억만은 이를 무시하지 않고 배군관을 바로 쳐다보며 당돌하게 물었다. “군관님은 내 얘기가 재미없으시오?” 배군관은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내가 이래 뵈도 꿈 풀이를 조금 할줄 아는데 그게 좋은 꿈이 아니라서 이러는 걸세.” “그럼 꿈 풀이 한번 요청해도 되겠소매?” 배군관은 어색하게 웃으며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일단 호랑이가 지붕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권세 있는 자가 자네를 업수이 여기고 노린다는 뜻이네. 거기에 호랑이 등에다가 탔으니 이는 기호지세(騎虎之勢)를 뜻함이네. 이미 이 일은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네.” 그 말에 김억만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머리를 긁적였다. “기호…? 그게 뭡니까?” “하여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뜻하네. 내 말을 너무 염두에 두지 말게. 그저 나도 주워들은 풍월일 뿐이니.” 배군관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주위 사람들에게 외쳤다. “자, 적당이들 하고 모두들 푹 쉬게나. 내일도 새벽에 출발해야 영고탑까지 약조된 기일까지 도달할 수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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