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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도둑질한 적 있어요."
괜찮아.


"저, 원조교제했어요."
괜찮아.


"저, 친구 왕따 시키고 괴롭힌 적 있어요."
괜찮아.


"저, 폭주족이었어요."
괜찮아.


"저, 죽으려고 했어요."
괜찮아.


"저, 공갈한 적 있어요."
괜찮아.


"저 학교에도 안 가고 집에만 처박혀 있었어요."
괜찮아.


"죽어 버리고 싶어요."
하지만 얘들아, 그것만은 절대 안 돼.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 미즈타니 오사무 지음 / 김현희 옮김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 미즈타니 오사무 지음 / 김현희 옮김
ⓒ 에이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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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읽고 또 읽은 구절이다. 그는 무엇이고 괜찮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상식으론 전혀 괜찮지 않은 것들을 그는 괜찮다고 말한다. 다만 한 가지, 죽어버리고 싶다는 말에는 절대 안 된다며 강하게 거부한다.

왜일까? 그에게 어제까지 일은 흘러간 과거이니까 전부 괜찮지만 죽는 건 안 된다고 한다. 죽음은 끝이지만 살아 있음은 희망의 만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건 아님 혼자 힘으로건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조건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절망의 시궁창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살아주기만 해도 좋다고 한다. 고맙다고 한다. 난 그의 이런 말에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진정성이 읽는 이를 부끄럽게 했기 때문이다.

미즈타니 오사무. 그는 일본의 한 야간고등학교 교사이다. '밤의 선생'. 밤거리의 아이들과 폭력조직은 그를 그렇게 부른다. 그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밤 11시부터 화려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번화가를 돈다. 거리에 나부끼는 야한 전단지와 즐비하게 늘어선 유흥업소의 간판들을 치운다.

그가 밤거리를 도는 것은 단순히 그런 것들을 치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밤거리를 돌며 본드를 마시거나 싸움을 하거나 약물 중독에 의해 위급에 빠진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다. 그는 아무리 위험한 상황일지라도 아이들에게 달려가 말을 한다.

어떤 땐 어린 학생을 폭력조직에서 빼내기 위해 조직 우두머리를 찾아가 직접 대면하기도 한다. 두렵지만 그는 간다. 그에겐 아이의 삶이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잘못되어 그는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폭력조직에게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독백한다.

"손가락 하나를 잃은 아픔은 매우 컸다. 그러나 소년의 미래를 위해서 손가락 하나쯤은 희생할 수 있었다."

그 소년은 일본인이 아니라 대만 소년이었다. 손가락 하나와 바꾼 그 소년은 그 후 고등학교로 돌아갔으며 일본 영주권도 획득하여 지금은 도쿄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일하며 성실하게 일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왜 그는 이렇게 위험한 일을 홀로 하고 있을까? 한때 폭력조직에 가담하여 방황했던 자신의 어릴 때의 삶이 하나의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을 어두운 밤거리로 내몬 것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아이들에 대한 희망의 믿음이었다. 그런 사랑과 믿음 때문에 그는 그 어떤 위험과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12년 이상을 밤거리를 찾아 떠돈 것이다.

"나는 절대 학생을 야단치지 않는다. 아이들은 모두 '꽃을 피우는 씨앗'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꽃씨라도 심는 사람이 제대로 심고, 시간을 들여서 정성스레 가꾸면 반드시 꽃을 피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학부모와 교사, 지역의 어른들과 매스컴을 포함한 사회 전체가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정성껏 돌본다면 아이들은 반드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꽃을 피우는 씨앗'.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꽃을 피우기도 전에 꺾여버리고 만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짓밟히기도 한다. 꺾인 그들은 아무런 희망 없이 신음하다 갈기갈기 몸과 마음이 찢어진 채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들을 위해 손을 쉽게 내밀지 않는다.

헌데 미즈타니 오사무는 버려진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옷을 벗어주고 마음을 주었다. 경원시하던 아이들은 그에게 의지했다. 물론 배신 같은 것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또 찾아오면 또 맞아주었다. 이런 그에게 일본 경찰은 '일본에서 가장 죽음 가까이 있는 교사'라며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밤거리를 포기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이들이 걱정돼서요."

이보다 더한 사랑이 있을까.

어느 사회에나 버려진 아이들은 많다. 여러 사정으로 가출하고 몸을 팔고 술집에 나가고 싸움판에 기웃거리는 아이들은 있다. 우리 주변에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문제아란 인식하에 멀리하려고 한다. 손을 내미려 하지 않는다. 손을 내민 순간 자신의 손도 더러워질까 봐서이다. 그런데 그는 말한다. 그런 아이들일수록 누군가의 손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그는 마지막으로 어른들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어떤 아이라도 그들이 살아온 과거와 현재를 인정하고, 제대로 칭찬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말이다.

"지금까지 정말 잘 살아줬어."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

미즈타니 오사무 지음, 김현희 옮김, 에이지21(2005)


태그:#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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