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전'을 아세요? 초봄에 짜투리 땅을 갈고 밭을 만들어 씨를 뿌리는 할머니들을 봤을 때만 해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과연 저 척박한 땅에 씨앗이 싹터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푸른 잎과 부지런히 물을 길어다 준 덕분에 호박밭에서 덩실덩실 달덩이들이 태어났다. 한덩이 안아보려고 하니 도무지 들 수가 없다. 호박 한덩이의 무게는 대략 5-6 킬로쯤 더 나가보인다. 할머니들은 밭에서 나온 호박으로 '달전'을 부치고 호박죽을 끓이고도 남아서 좌판으로 끌고 나오신 거다. 지날 때마다 안 사느냐고 묻던 할머니들은 이제 나를 잡지 않는다. 지난번 박을 사서 다 해먹지도 못하고 냉장고에서 얼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후부터는 별로 나를 달가와하지 않으시는 눈치다. "호박 한덩이 얼마에요 ?" 하고 물으니 "바윗덩이같이 무거운데 정말 살거야 ?" 하신다. 진짜 바윗덩이보다 무거운 호박을 사들고 갈 모양새가 아닌 것을 눈치로 아시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살 것처럼 주위를 맴돌며 호박을 손가락으로 찔러보기도 하니 할머니는 "제일 큰 놈이 오천원인데 특별히 사천 오백원에 한덩이 줄게" 하신다. 그리고 덧붙여 박처럼 냉장고에 안 넣어도 선선한 곳에 두면 겨울까지 아무 문제 없다신다.
추석의 보름달 속에서…달전, 은전, 금전이 쏟아지겠어요 가격을 흥정했으니 안 살 수 없다. 시장 수레까지 빌려주시겠다면서, 갖다 놓고 퍼뜩 돌려달라는 할머니 말씀에 시내로 나가려던 발걸음을 다시 집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이걸 두고 사서 고생이라고 하긴 그렇나. 둥근둥근 호박처럼 살자고 해도 마음이 늘 둥글둥글 굴러가지는 않는데, 둥근 호박을 실은 손수레의 바퀴는 둥글둥글 잘도 굴러간다. 호박꽃은 '박꽃'의 아름다움에 비교할 수 없지만, 호박의 쓰임새에 박은 발 벗고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호박을 긁어서 강낭콩을 넣어 찹쌀 경단을 빚어 만든 노란 호박죽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호박을 말려 호박떡을 해도 좋다. 호박으로 채를 썰어서 부침개를 만든 '달전'은 그야말로 둥근 추석달을 닮았다. 요즘은 시장에서 요리하기 좋게 호박부침개용을 비닐봉지에 넣어 팔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온 가족들이 모인 추석 전날 밤에 호박을 긁어서 직접 만드는 '달전'이 추석의 멋과 맛을 더욱 풍성하게 하지 않을까. 노란 호박 달전은 '노란 달'을 연상케 하고, 노란 달은 또 금전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둥근 가마솥 뚜껑에다 구워야 호박전은 제맛이 난다 정말 맛있는 달전을 구우려면 프라이팬으로는 어림이 없다. 둥근 가마솥 뚜껑에다 굽는 호박전이 진짜 '달전'이다. 뒷마당에 벽돌 두 장 정도 올려 놓고 장작불을 지핀 둥근 가마솥의 뚜껑은 동제, 제삿날, 추석 명절이면 훌륭한 부침개 전판이 됐다. 노란 콩기름을 듬뿍 먹인 잘 달은 무쇠 가마솥 뚜껑은 전을 부치면 늘어붙지도 않고 노릇노릇 정말 기가 막히게 잘 굽힌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즘이면 해 주신 둥근 '달전' 생각이 정말 그리운 추석이다. 그러나 그리운 '달전'을 어머니에게 눈동냥으로 배운 솜씨로 나도 바윗덩이 같은 호박을 하나 샀으니, 모처럼 이웃 사람에게도 '달전'을 돌려야지. 그러나 아무래도 내가 만든 '달전'은, 어머니 솜씨를 따라가지 못할 터다. 둥글둥글 어찌 그렇게 둥근 모양새를 내는지 어머니의 솜씨는 이웃뿐만 아니라 먼 동리 사람들까지 칭송을 했으니 말이다. 그래 그래, 어머니가 그러셨다. 호박전은 밀가루와 찹쌀가루를 섞어 부침개를 해야 그 모양이 노릇노릇 추석 달처럼 떠오른다고.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노는 날아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옥도끼로 찍어 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 만년 살고지고 천년만년 살고지고 <청양지방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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