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불로 바꾼다? 물로 고기를 굽는다? 물로 고기를 굽기 때문에 고기가 타지 않는 것은 물론 고기가 눌어붙지도 않는다? 고기를 자주 구워도 불판을 갈아 끼우지 않아도 된다? 아무리 고기를 오래 구워도 고기가 딱딱해지지 않는다? 게다가 에너지까지 적게 들기 때문에 쌈짓돈까지 아낄 수 있다? 세상에.
요즈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곳곳에는 별의별 신기하고도 희한한 제품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반짝이는 작은 아이디어 하나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우리들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불편함을 속 시원히 덜어준다. 그런 까닭에 발명품은 어찌 보면 아주 평범하고 하찮아 보이는 것 같지만 그 평범과 하찮음 속에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가면 '불고기를 물로 굽는다'는 이름난 불고기 전문점이 하나 있다. 그 참! 이 대체 무슨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란 말인가. 지난 9월 2일, 이 소식을 들은 나그네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곧바로 불광동으로 갔다. 저녁 때 소주 한 잔 걸치며 느긋하게 앉아 그 불고기를 실컷 먹어보자는 벗들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날 나그네가 그 집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가 조금 넘었을 때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여느 숯불고기 전문점처럼 식탁 곳곳에는 동그란 불판이 놓여져 있다. 하지만 실내 분위기가 마치 카페에 들어온 것처럼 아늑하다. 왜일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실내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찬찬히 실내를 둘러본다. 순간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진다. 이 집 실내에는 연기를 뽑아내는 환풍기가 없다.
고기가 타지 않는 불판... 연기가 나지 않는 불판 이 집에서 쓰고 있는 고기구이판은 '물을 불로 바꾼다'는 셀리니 구이판. 이 집 주인의 말에 따르면 '셀리니 고기구이판'은 스팀을 회수하는 재활용 전기보일러를 주춧돌로 삼고 있다. 게다가 스팀을 쓴 뒤 폐스팀을 버려야하는 기존 스팀 보일러와는 달리 스팀을 회수해 사용하기 때문에 반영구적이란다.
자리를 함께 한 박강수 회장(셀리니 구이판 발명인)은 "셀리니 구이판은 지금 국내 발명특허를 취득했으며, 국제발명 특허까지 출원 중에 있다"며 "기존의 스팀 보일러는 20도의 열에 80도의 열을 가해 100도의 스팀을 만드는 데 비해 셀리니는 스팀을 회수 약 95도의 뜨거운 물로 변환시켜 5도의 열만 가하면 되기 때문에 기존의 스팀 보일러에 비해 약 1/16 정도의 에너지만 사용된다"고 말한다.
박강수 회장은 이어 "셀리니 구이판의 강점은 8가지"라고 못박는다. 그 8가지는 ▲고기가 타지 않는다 ▲냄새가 나지 않는다 ▲연기가 나지 않는다 ▲고기가 눌어붙지 않는다 ▲고기가 딱딱해지지 않는다 ▲기름이 튀지 않는다 ▲에너지 절감효과가 뛰어나다 ▲상쾌한 실내공기가 유지된다이다.
박 회장의 설명을 들으며 주인에게 "손님이 많네요"라고 묻자, 실내에 빼곡히 들어찬 손님들을 턱으로 가리키며 "보시다시피..."라고 말한다. 손님으로서는 타지 않은 쫄깃한 불고기를 맘껏 즐길 수 있으니 좋고, 식당 주인으로서는 아무리 고기를 구워먹어도 불판을 따로 갈아 끼워야 필요가 없으니 일석이조가 아니냐는 투다.
아무리 구워도 타지 않고 고소하게 익어가는 불고기의 참맛 '고기가 타지 않는 구이판'을 개발한 박강수 회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주인이 오리고기와 삼겹살을 비롯한 상추, 깻잎, 마늘, 파저리, 양념게장, 단호박, 참기름 소금장 등을 식탁 위에 주섬주섬 놓는다. 밑반찬은 여느 숯불고기집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천천히 맛나게 드세요"라는 주인의 살가운 말 한마디다.
손을 바싹 갖다대도 미지근한 열기만 느껴지는 '희한한' 불판 위에 삼겹살을 올린다. 치지직~ 소리와 함께 삼겹살이 맛갈스럽게 익어가기 시작한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삼겹살 한 점 참기름장에 찍어 상추에 싸서 입에 넣는다. 쫄깃쫄깃 고소하게 씹히는 맛이 다른 숯불구이 삼겹살과는 다르다.
한 가지 재미난 것은 아무리 고기를 구워도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물로 구워낸 삼겹살이어서 그런지 깊은 감칠맛도 색다르다. 게다가 숯불구이처럼 고기가 시커멓게 타지 않고 오래 불판 위에 올려놓아도 기름기가 쫘르르 흐르는 게 희한하다. 그래, 대낮이면 또 어떠랴. 이렇게 기막힌 불고기를 앞에 두고 소주 한 잔 어찌 참을 수 있으랴.
소주 한 잔 입에 홀짝 털어넣고 싱싱한 깻잎에 싸먹는 오리불고기의 맛도 그만이다. 먹어도 먹어도 자꾸만 입에 당기는 쫄깃한 불고기의 맛. 거 참! 별난 구이판도 다 있다. 삼겹살을 조금 더 시키자 이 집 주인 왈 "맛이 끝내주지요. 저희 집에 와서 연기 안 나고 타지 않는 불고기구이를 먹어본 손님은 그날부터 단골이 되지요"한다. 그만큼 불고기구이에는 자신 있다는 투다.
숯불구이에 쓰는 숯불은 폐자재로 만든다 "숯불은 대부분 폐자재를 원료로 만들지요. 그 폐자재 속에는 페인트와 각종 이물질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런 폐자재로 만든 숯불을 불에 태우게 되면 더 많은 독성물질이 나오지 않겠어요? 바로 그 때문에 숯불구이가 사람에게 좋지 않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숯불구이를 찾겠습니까? 이제 우리의 건강은 우리 스스로 지켜내야지요."고소하게 익어가는 불고기를 사이에 두고 맞은 편에 앉은 박강수 회장은 한양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최보율(46) 교수의 '식생활 비교 조사결과'를 예로 든다. 최 교수에 따르면 위암 환자와 정상인의 식생활을 조사한 결과 숯불구이를 한 달에 1.5회 이상 먹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위암 발생 위험이 3배로 높아졌다.
아무리 오래 두어도 타지 않고 더욱 윤기가 쫘르르 흐르는 불판 위의 맛깔스런 불고기처럼 박강수 회장의 이야기도 시간이 흐를수록 맛깔스러워진다. 박강수 회장이 처음 타지 않는 구이판 '셀리니'를 떠올리게 된 사연은 그리 복잡하지가 않다. 어느날, 불고기집에 가서 숯불고기를 먹고 있는 데, 무수히 피어오르는 연기는 물론 고기의 속살이 채 익기도 전에 타기 시작했다. 게다가 고기를 한번만 굽고 나면 계속해서 불판을 갈아줘야 했다.
그때 박강수 회장의 머리 속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연기가 나지 않으면 고기도 타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되면 매번 불판을 갈아줄 필요도 없어지지 않겠는가'였다. 그때부터 박 회장은 '타지 않는 불판'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한번 어떤 계획을 세우면 끝장을 봐야 하는 것이 박 회장의 '끼'였다. 그렇게 수년 동안의 연구 끝에 만들어진 것이 '고기가 타지 않는 구이판'이었다.
불고기의 참맛은 타지 않는 불판에서 나온다박강수 회장의 쫄깃거리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 상추잎에 구운 마늘과 함께 올려 먹는 불고기의 맛도 더욱 쫄깃거린다. 벌건 대낮인데도 타지 않는 불판에 구워먹는 감칠난 불고기 맛에 포옥 빠져 벌써 소주를 두어 병을 비워냈다. 평소 불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김규철(51) 선생도 "허 참~ 이 집 고기 질이 좋아서 그런 건가, 이 불판 때문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주를 또 한 병 시킨다.
그때 주인이 소주 한 병에 상추와 마늘을 덤으로 내주며 은근슬쩍 한 마디 거든다. "고기는 여느 불고기집에서 나오는 그런 고기와 큰 차이가 없어요. 사실 저희 집 불고기가 다른 집 숯불고기보다 맛이 더 좋은 것은 이 타지 않는 불판 때문이지요. 저희 집은 이 타지 않는 불판 땜에 한 밑천 톡톡히 잡고 있어요"라고.
나그네가 주인에게 "이 불판 위에 생선도 구울 수 있어요?"라고 묻자 "생선을 구워도 연기가 나지 않고 타지 않아서 참 좋아요"라고 귀띔한다. 이어 그이는 "사실, 이 불판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저희는 비싼 시설비 땜에 고생을 많이 했을 거예요. 일반 구이판을 썼더라면 틈틈이 불판을 갈아 끼워주고 닦아내야 할 종업원을 더 고용해야 하지 않았겠어요?"라며 환히 웃는다.
오랜만에 만나보는 환한 웃음이다. 그동안 빈부 양극화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가. 타지 않는 불판에 불고기를 올려 구워먹는 맛. 그 맛은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란 우리 옛말처럼 '손님 좋고 주인 좋고'가 틀림없다. 그래. 오늘 저녁에는 가족들끼리 타지 않는 불판 곁에 오순도순 둘러앉아 고소하게 씹히는 불고기 한 점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큐,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