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경감에 관한 묘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그가 '천재형'이 아니라는 점이다. 천재형이 아니면서도 프렌치 경감은 명탐정의 이름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천재형이 아닌 탐정, 이것은 프렌치 경감에 대한 거의 모든 특징을 담고 있는 표현이다.
탐정들 중에는 촌철살인의 추리와 번뜩이는 기지로 대번에 사건의 전모를 꿰뚫어보는 인물들이 있다. 셜록 홈즈나 파일로 반스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프렌치 경감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범인의 흔적을 찾아서 온 유럽을 돌아다니고, 사소한 단서를 추적하기 위해서 런던의 시내를 발로 뛰어다닌다.
어찌 보면 프렌치 경감의 수사방식이 실제 사건수사의 모습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프렌치 경감을 창조한 작가는 아일랜드의 프리맨 윌스 크로프츠다. 그는 미스터리 소설에 리얼리즘을 부여했다는 극찬을 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어떻게 리얼리즘을 구현했을까?
소설 구성의 3요소를 인물, 사건, 배경이라고 해보자. 크로프츠는 미스터리 소설에서 이 세 가지에 모두 현실성을 적용시켰다. 즉 그럴듯한 배경에서 있을만한 사건이 터진다. 그러면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인물이 등장해서 사건을 해결해간다.
추리소설에 현실성을 부여한 작가, 크로프츠크로프츠의 작품에는 존 딕슨 카아가 즐겨 사용했던 밀실이나 괴기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크로프츠의 범인들은 거창한 트릭을 만들지도 않고, 탐정은 한눈에 사건을 간파하지도 못한다. 단서를 놓고 수많은 추측을 하고, 정황증거를 찾아서 여러 명의 인물들을 찾아다닌다. 그런 다음에서야 범인의 정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크로프츠의 이런 독특한 경향은 그의 첫 번째 작품인 <통>에서 잘 드러난다. <통>에는 프렌치 경감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범인의 알리바이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형사의 모습은 프렌치 경감과 유사하다. 크로프츠의 작품들이 대부분 비슷비슷한 유형인 만큼, 거기에 등장하는 형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크로프츠 작품의 또 한 가지 특징은 공간적 배경에 대한 묘사가 꽤나 정확하다는 점이다. 여기엔 작가가 철도기사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철도기사 시절 크로프츠도 기차를 타고 전 유럽을 여행했을까. <통>에서는 런던과 파리를 오가는 열차의 모습을 묘사하고,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에서는 암스테르담과 스위스, 스페인을 넘나든다.
사건을 위해서 가상의 마을과 장소를 만들어냈던 일부추리작가들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크로프츠는 실제의 공간을 배경으로 주위에서 볼 수 있을 만한 사건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천재가 아닌 일반적인 형사가 등장해서 사건을 해결한다. 이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프렌치 경감이
다.
프렌치(French)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인상과는 달리, 프렌치 경감은 영국인이다. 영국신사라는 표현이 어쩌면 어울리는 인물이다. 그가 등장하는 첫 번째 작품인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에서 그의 외모와 성향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친절하고 가정적인 형사, 프렌치 경감
프렌치 경감의 본명은 '조세프 프렌치', 보통 키보다 약간 작은 키에 뚱뚱하다기 보다는 몸집이 좋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인물이다. 그의 눈은 날카로우면서도 밝게 빛나고 있다.
항상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하기 때문에 그의 별명은 '애교덩이 조'이다. 그의 신분은 경찰청 수사과의 경감이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와 애교, 왠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합의 인물이다.
프렌치 경감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전쟁의 와중에 큰 아들을 잃었고 현재는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한가할 때에는 파이프담배를 피우고 책을 읽으면서 기분 좋은 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사건수사가 벽에 부딪힐 때에는 부인에게 의논한다. 저녁식사 후에 부인이 뜨개질을 하고 있을 때 그는 그 앞에서 사건의 개요와 그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부인은 프렌치 경감의 말을 모두 듣고 나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남편에게 '바보 아저씨'라는 말을 던지기도 한다. 그렇게 들은 부인의 의견이 사건해결의 귀중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부인에게 사건을 설명하고 나서 '바보 아저씨'라는 말을 듣는 남편, 형사이면서도 왠지 애교 있는 남편으로 보이지 않을까.
자신의 부인에게 바보라는 말을 들을 만큼, 프렌치 경감은 천재형 탐정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끈질긴 노력으로 많은 사건을 해결했기 때문에, 경찰청에서는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못한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는 법. 프렌치 경감도 예외는 아니다. 단서를 찾아서 수많은 밤샘근무를 하고, 밤을 새운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근무를 시작하는 습관이 있다.
셜록 홈즈의 곁에는 와트슨이 있었고, 네로 울프의 주위에는 항상 아치 굿윈이 있었다. 프렌치 경감에게 이런 절친한 동료는 없다. 그 대신에 프렌치 경감에게는 동원할 수 있는 방대한 경찰조직이 있다. 프렌치 경감은 이 조직을 효율적으로 이용해서 범인을 추적한다. <크로이든발 12시 30분>에서는 런던의 모든 약국을 수소문하고,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에서는 한명의 여성을 찾기 위해서 수많은 직업소개소를 일일이 탐문한다.
끈질기게 추적하는 노력형 탐정, 프렌치 경감물론 프렌치 경감의 수사가 항상 이렇게 발로 뛰어다니는 것만은 아니다. 결정적인 단서는 언제나 프렌치 경감의 머리에서 나온다. 프렌치 경감은 복잡해 보이는 암호문에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해독하고, 알리바이가 분명해 보이는 듯한 인물에게 더욱 주목한다.
프렌치 경감도 경력이 쌓이면서 그의 수사도 점점 세련되어간다.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에서 여러 차례 벽에 부딪힌 것과는 달리 <크로이든발 12시 30분>에서는 사건의 전모를 명쾌하게 사람들 앞에서 재구성해낸다.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이 발표된 것은 1925년, <크로이든발 12시 30분>이 출간된 것은 1934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하물며 경찰청의 형사에게는 얼마나 많은 수사의 노하우가 쌓였을까.
<크로이든발 12시 30분>에서는 범죄수사 일반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도 한다. 이 작품의 범인은 온갖 재주를 부리면서 알리바이를 만들고 단서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도 프렌치 경감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프렌치 경감은 '범인에게 지혜가 없으면 오히려 잡기 힘들다'라고 말한다. 공들여서 쌓아놓은 범인의 트릭과 잔꾀가 교묘할수록, 그것이 거꾸로 범인의 발목을 붙드는 격이다. 자신이 만든 덫에 자신이 걸리는 것처럼.
그리고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에서는 범인에 대해서 '재기 번뜩이는 타입이라기보다는 용의주도한 인물'이라고 짤막하게 논평하기도 한다. 이 평가는 고스란히 프렌치 경감에게 돌려주고 싶은 표현이다. 프렌치 경감이야말로 재기 번뜩이는 명탐정이 아니라, 용의주도하게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다.
탐정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명탐정의 특징이 없던 인물, '지혜가 없는 범인일수록 잡기 힘들다'라는 말을 하는 인물. 이 표현을 조금 변형시키면 어떨까. '지혜가 많은 형사일수록 범인을 잡기 힘들다'. 범인들이 제 덫에 제가 걸리는 것처럼, 재기발랄한 탐정들도 언젠가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본다면 프렌치 경감같은 스타일이 좀더 믿음직하지 않을까. 많은 베테랑형사들이 모여 있던 런던 경시청에서 프렌치 경감이 승승장구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