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30분을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덧 인터뷰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나버렸다. 이희대(55) 교수 얼굴에도 언뜻 피곤한 기색이 스친다. 덥다. 이마가 끈끈하다. 잠깐 땀을 훔치는데, 이 교수도 가운을 벗는다. 그리고 드러나는 수술복, 순간, 코끝이 찡해진다. 저 '파란 옷'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집어들자, 그는 가운을 다시 입으려 했고 나는 그런 그를 말렸다. "지금 그대로가 훨씬 보기 좋습니다."
영동 세브란스병원 이희대 교수(암센터 소장)는 환자다. 그것도 암 환자, 이제까지 10번이나 재발했다고 한다. 2003년 대장암 2기 판정, 6개월 후 간과 뼈로 전이됐다. "배를 다섯 번 열었고, 뼈도 잘라낸" 의학적으로는 분명 '다발성 전이암' 4기 환자다.
'물론' 그는 살아있다. 그것도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는 의사로 말이다. 암 발병 이후에도 한국 유방암학회 이사장, 영동 세브란스병원 외과 과장으로 일했고, 지금도 교수직은 물론, 병원 유방크리닉 팀장, 암센터 소장으로 하루를 바쁘게 보낸다.
게다가 최근에는 <희대의 소망>이란 책까지 냈다. 죽음의 문턱에 섰던 절망과 두려움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신앙의 힘이 얼마나 컸는지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물론 종교적으로 읽히지만, 한편으로는 죽음 앞에서 참으로 절박했을 '외침'으로도 들린다.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이 다짐했을 '희망'이었을까 말이다. 그에 비하면 책 본문에 등장하는 모두 245차례의 '하나님, 예수님' 등은 그에게는 오히려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을 것이다.
허나 '회상'이나 '간증'에서 멈췄다면, 이 교수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암(재발)을 예방하는 여덟 가지 방법'이나 '통증을 이기는 세 가지 소망의 법칙' 등 의사이자 환자로서의 노하우도 눈길을 끌었지만, 무엇보다도 "4기 암 환자를 절대 말기 환자로 부르지 말라"는 선언이 시선을 붙잡았다. '희대의 소망'을 직접 듣기 위해 12일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 '이희대 교수'와 마주 앉았다.
"장준혁이요? 장준혁이 나를 닮은 거죠"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오른손으로는 '손님'을 맞고, 왼손으로는 '앵클 스트랩(발목 운동을 돕는 일종의 의료기구)'을 꽉 쥐고 있다. 보행을 돕는 기구들도 눈에 띈다.
2005년에 엉덩이와 척추 아래를 연결하는 관절 일부를 잘라 내면서부터 이 교수는 다리를 절게 됐다. 20분, 이 교수가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상은 '평범'했다.
"아침에 스무 명 정도 진료했어요. 어제는 유방암 재발 환자 수술했고, (일정표를 보며)내일 또 수술 잡혀 있네요. 진료하고 수술하고 교육하고 강연하고…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다만 이쪽(왼쪽) 골반에 전이가 되면서 뼈도 잘라내고, 방사선도 여러 번 쪼이고, 댓 번 재발했어요. 신경 바로 옆에 암이 있는 바람에 데미지를 받아, 다리를 쓰기 불편하죠. 하지만 기동력이 조금 떨어져서 그렇지, 뭐, 옛날에 토끼처럼 살았다면, 이제는 거북이처럼 산다고 할까요?"정말 부지런히 달렸던 것 같다. 하루에 6∼7명을 수술하다보니, 이 방 저 방 '왔다갔다'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이 교수가 새로운 방법과 장비를 고안하여 앉아서 수술하게 된 것도 "서서 수술하면 체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라, 좀 더 많은 환자를 빨리 수술하기 위해서"였다.
"기본적으로 저한테 정치적인 피가 흘렀나봐요. 소의치병(小醫治病), 중의치인(中醫治人), 대의치국(大醫治國)이란 말을 대학 시절 스승님께 많이 들었죠. '대의'가 되고 싶었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의료 체계', 국가적 시스템과 관련 있잖아요. 아마 제가 오르고 싶었던 고지가 2∼3개는 됐을 겁니다(웃음)."
- 혹시 드라마 '하얀거탑' 보셨나요? 장준혁이 생각납니다.
"봤죠. 다만 내가 장준혁과 닮은 것이 아니라, 장준혁이 '나'스러운 거지."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이희대'를 닮았던 장준혁처럼, 갑자기 암이 찾아온 것은 2003년 1월. 대장암 2기였다. 하지만 이 교수는 당시만 해도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암 2∼3기는 수술 후 치료만 잘하면, 생명을 위협할만한 수준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암 전문가로서 다른 사람 손에 자신의 몸을 맡겨야 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고,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라는 안타까움이 오히려 더 컸다. 대장암 수술 한 달도 되지 않아, '병원장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인 병원 기획실장을 맡기로 결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채 반년도 되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설마는 기어이 다시 찾아오고야 말았다.
간에 두 군데, 뼈에 한 군데, 다발성 전이암. 졸지에 4기 암 환자가 됐고, 고지들은 아스라히 멀어졌다. 그토록 "능동태로 살아왔다고 자신했는데…."
갑자기 그의 인생은 "하나부터 열까지 의사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환자, 수동태"로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그나마 '의사'였기에 내릴 수 있었던 결정은 단 하나.
"그만 하자."
"동료들과는 그냥 눈빛으로 통해요. 생존율·생존 기간이 어떻고, 다 서로 아는데 뭘 따져 얘기하겠어요. 개복해서 간 잘라내고, 방사선 치료하고, 항암제 맞고, 그렇게 1년 정도 버텼는데…. 자꾸 (암) 덩어리는 커지고, 또 생겨나고, 항암제도 잘 안 듣고…. 의학적으로 가망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동료에게 얘기했죠, '그만 하자' '그래? 그래, 그만하자…."대장암 진단을 받고 1년만이었다. 그리고 기도원에 들어갔다.
그 때까지만 해도 교회에 잘 다니지 않았던 이 교수는 "어차피 죽을 테니까, 봉사라도 하고 싶어" 들어간 그 곳에서 뜻밖의 '나'와 마주친다. "담요 하나 깔고 앉아 기도하는 저들과 나는 다르다"고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죽는다는데, 잡아야 될 무엇"을 자신은 필요로 하고 있었다. "교만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은 그렇게 다가왔다.
"암 환자들은 우울하고 고독해요. 역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기 때문이죠. 식구들한테는 괜찮다고 하지만, 특히 밤이 되면은요, 조용해지잖아요. 어떤 때는 침대가 푹 꺼지는 것 같기도 하고, 울렁거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막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나서 이게 뭐 꼭 저승사자가 나를 데려가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럴 때는 엄청난 외로움, 고독감, 그 다음에 절망감이 밀려와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잖아요? 암으로부터 오는 공포가 아니라, 암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절망감, 그 절망감이 나를 죽이게 만드는 거예요. 더구나 나는 암 전문의잖아요. 더 잘 알죠. 그럼 내가 죽는다고 하는데, 내가 잡아야 될 것은 뭐냐. 그래서 하나님을 받아들였어요. 의학적인 방법 더하기 하나님 에너지, 그걸로 내가 극복해 가는 것 같아요."
"4기 환자를 말기 환자라 부르지 말라"이 교수는 하나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스스로 얼마나 많이 다짐했을 '희망의 얼굴'이겠는가. 당연한 일이다. 하나 더 분명한 것은, 그의 몸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 현재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의학적으로 4기로 봐야 하나요?
"그렇죠. 하지만 회복했어요. 올해 5월 29일 암 종양표지자(CEA, 혈액 속 암세포 활동 정도를 수치화한 것)가 정상으로 '탁' 돌아왔어요. 이제 암 덩어리들은 없다고 보는 거죠. 그러나 암 세포라는 건 정상인도 항상 하루에 몇 백 개씩 생겨요. 암 환자인데 안 생기겠어요? 앞으로는 정기검사를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철저히 해 나갈 생각이예요."
그래서 이 교수는 스스로를 '5기'라고 평가한다. 암은 일반적으로 0기에서 4기까지로 구분한다. 하지만 이런 구분만으로는 그의 현재 상태를 설명할 수 없다. 사실 "암세포가 많이 퍼진 4기니까, 5년 생존율이 5∼10% 정도"라는 진단 자체에 분명 '5∼10%'가 존재한다. 허수가 아니란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기도원에서 보니까 대학에서 '죽는다'고 판정 받은 4기 환자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우리 의사들은 24시간 병원에서 생활하잖아요. 병원 안에 있는 환자들만 봐요. 그리고 '어려울 것 같다'고, '앞으로 좋은 것 잡수시고…', 이런 식으로 해서 보내요. 그렇게 해서 나왔던 사람들인데, 5년, 10년 쌩쌩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럼 이 사람들을 4기로 불러야 할건가. 일반적으로 '4기'는 '곧 죽는다'로 받아들이잖아요? 말기라는 표현도 사회적으로 많이 쓰구요. 그런데 그렇잖아요. 가만히 있는 사람도 자꾸 '너 죽는다, 죽는다, 너 못된 놈, 못된 놈'하면, 이거 정말 죽는 것 같기도 하고, 못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분명 4기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말기'라고 표현하지 말자는 거죠."
- 억지 희망이 아니라… 분명히 존재하니까?
그렇죠.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들이니까. 아… 5기? 그럼 난 4기를 극복했네? 이제 5기의 인생을 살자, 새로운 삶을 살자. 그럼 마음이 즐겁잖아요. 자신감, 굉장히 큰 거 잖아요. 암을 극복할 수 있고, 소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5기'로 주자. 4기를 말기로 표현하지 말자. 사회적인 캠페인으로 해도 좋을 것 같아요."
- 끝으로 '희대의 소망'은 무엇입니까?"이번에 책을 쓴 것도 무언가 남겨서 환자들한테 계속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뭐, 나야 죽으면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기록을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환자들이 절망에서, 암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그래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계기를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나 자신의 가치를 잊고 살 때가 많잖아요.
그런 면에서 암은 차라리 축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왜냐. 그동안 고생도 많았지만, 얻은 것도 많거든요? 제일 큰 게 하나님, 그리고 저 혼자 식이조절 할 수 없잖아요? 가족도 같이 해야죠. 함께 암 예방 차원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됐죠. 또 다리도 불편하고 기운도 없는데 어디 딴 데 돌아다니겠어요? 남자들이 집에 있는 이유 딱 두 개잖아요. 돈이 없거나, 아프거나(웃음). 가족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 정말 큰 즐거움이고 축복이죠.
환자들과 함께 예배를 하면 굉장히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요.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 그리고 환자들이 서로 도와주고 이끌어주려는 만남들, 그 광경을 보면 '참, 좋다'는 내면의 기쁨이 솟아나요. 그 기쁨이 넘쳐서 환자에게 가고, 또 넘쳐서 나한테 오고… 일상의 아름다움을 계속 느끼며 살고 싶어요. 즐거움은 참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