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숭실대에서는 철학연구회와 한국정치사상학회가 연합해서 개최한 '대통령직의 위기와 유목적 정치질서'라는 제목의 학술회의가 열렸다. 거기서는 조선의 노론-소론 논쟁, 당태종의 정관정요, 페리클레스의 리더십 등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9편의 글이 발표됐다. 나는 그 중 한 꼭지로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재평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을 통해서 내가 말하고자 했던 기본 취지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근자에 대통령의 리더십에 관한 학술회의가 많이 열리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불러 일으킨 논란에서 기인하는 면이 있지만, 노 대통령의 리더십을 반드시 위기로 봐야 할 필요는 없다. 둘째, 노대통령에게서 굳이 문제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깊은 원인은 선험주의 정치의식으로서, 이는 한국 사회의 정치의식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다. 학술회의가 끝난 후 저녁을 먹고 전주로 내려왔는데, 자고 일어나 새벽에 보니 인터넷에 내 논문에 관한 기사가 떠 있어서 읽어 봤다. <연합뉴스>의 김승욱이라는 기자가 작성한 기사였는데, 따옴표로 인용한 표현들은 내가 분명히 논문에서 사용한 말이지만, 교묘한 편집과 생략을 통해서 내가 마치 노 대통령의 언행을 분석이라는 이름 아래 비판한 것처럼 바꿔 놓았다. 노 대통령 평가라는 현 시점에서 미묘한 주제를 다루면서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방향으로든 편파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노 대통령과 보수언론 사이의 담론 투쟁에서 나는 보수언론의 잘못이 훨씬 많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논문을 통해서 만약 나의 정치적 성향으로서 드러날 것이 있다면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쪽일 것이다. 그런데 김승욱 기자가 읽기로는 내가 보수언론과 거의 같은 시각에서 노대통령을 비판한 것으로 보인 모양이다. 그의 한글 독해력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내 의도를 왜곡해서 노 대통령을 공격하려고 한 악의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반 국민을 위해서 내 논문의 진짜 내용을 밝혀야 할 것 같다. 논문에서 나는 노 대통령(논문에서 나는 노 대통령의 이름에서 경칭을 생략하고 부른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학술논문이기 때문이다)의 언행을 평가하기 위한 방법론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서 논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평가가 현대 한국사회의 정파적인 균열과 맞물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학문적인 평가가 단순한 정치적 지지 선언 또는 반대 선언을 넘어서 무언가 가치 있는 의의를 가지기 위해서는 비판론에 대응해서 옹호론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와 같은 정파적 균열의 상황에서 쌍방이 상대를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지적 거울을 제시하는 데에 평가의 목적이 있다고 명시했다. 노 대통령의 언행에서 내가 주목한 요소들은 반대파의 시각에서 직설어법, 즉흥적 구상의 공표, 상시 임전태세로 비치는 것으로서, 반대파는 이를 각각 "막말", "미숙함", "복수심"이라고 부른다. 이 각각에 대해 나는 옹호론의 입장을 제시했고, 나아가 내가 개인적으로 옹호론 편임을 밝혔다. 직설어법은 겸손보다는 정직을 중요시하는 윤리적 결단, 즉흥적 구상은 개방적 사고와 실험정신, 임전태세는 원칙주의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노 대통령에게서 과거 재야 선동가 시절의 사고방식이 가끔 드러나고, 보수언론과의 싸움에서 감정이 절제되지 못해서 "싸우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까지 싸움에 말려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맞다. 김승옥 기자는 이러한 논의를 "막말", "미숙함", "복수심" 등의 방향으로만 요약하고 '정직, 실험정신, 원칙주의'라는 표현은 완전히 빼버렸다. 노 대통령의 언행에 대한 항간의 평가에 대칭해서 정반대의 평가도 있을 수 있다는 내 의도를 완전히 왜곡해서 내가 마치 항간의 평가에 동조하는 듯이 써버린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노대통령의 정치의식이 계몽적 합리주의의 정치의식과 비슷한데, 따라서 오크쇼트(Michael Oakeshott)가 교과서 정치(politics of the book)에 대해 가한 비판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요리를 할 줄 아는 지식과 요리 책에 나온 요리법을 아는 지식을 구분하지 못하고, 책에 있는 지식을 요리에 관한 지식 전부로 혼동한다는 것이 합리주의에 대한 오크쇼트의 비판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교과서 정치는 사실 정치적 문제에 정답이 있고 그 정답은 뛰어난 지성이나 통찰력으로 발견 가능하다고 보는 선험주의 정치의식에서 나오는 것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노 대통령뿐만 아니라 보수와 진보를 망라해서 모든 단일주제 정치세력(single interest politics)이 선험주의 정치의식을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그 중 노 대통령에게서만 선험주의 정치의식이 문제로 나타나는 이유는 김승욱 기자가 보도한 것처럼 그가 대통령으로서 성과를 보여줘야 할 책임이 있는 반면에 소수파 정권이라서 기득권의 저항을 받고, 나아가 타협을 악으로 치부하는 합리주의 신조가 있기 때문이다. 김승옥 기자는 내가 하지 않은 말을 인용부호에 넣어서 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 말을 인용한 다음에 자신의 말을 덧붙임으로써,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마치 내 말처럼 만드는 요술을 부리고 있다. 예컨대 기사 시작부터 그는 이렇게 썼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검사와의 공개토론회 도중 '한번 해보자는 겁니까'라는 표현을 사용해 보수세력의 비판을 받았다. 그 같은 정제되지 않은 어법은 임기 말인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내가 쓴 문장은 이렇다. "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2003년 3월 9일 참여정부의 특징을 과시하기 위해 시도한 공개 토론회였던 검사와의 대화 도중에 '한번 해보자는 겁니까'라는 일상적 구어체 표현을 국가원수의 공개발언으로는 모르긴 몰라도 그야말로 단군 이래 처음이라 할 만큼 파격적으로 사용해서 일부 국민을 즐겁게 하고, 일부 국민을 놀라게 했으며, 또 다른 일부 국민들에게는 불안감을 안겨 주었다. 물론 그 정도는 가벼운 개성표현 정도로 넘어갈 일이었다. 그런데 파격이 그 해 5월 '대통령직 못 해 먹겠다', 10월 '재신임 묻겠다'로 이어지자 즐거워하는 목소리를 놀라거나 불안해하는 목소리가 점점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3년말부터 이듬해의 총선과 관련된 발언들을 직설어법으로 하던 중에 야당들이 대통령의 선거개입을 문제삼기 시작하자, 2003년 12월 30일 선관위로부터 공명선거협조요청을 받게 되고, 바로 다음날 '대통령으로서 도대체 뭘 하면 되고 뭘 하면 안 되는 것인지 선관위에게 묻고 싶다'고 말해서 물의를 키웠다. 이에 대해 조순형, 최병렬등 야당 대표들이 당내 발언과 국회 대표 연설 등을 통해서 탄핵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지만, 노 대통령은 물러서기는커녕 2004년 2월 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발언함으로써 탄핵소추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후 과정은 지면관계상 세세히 기록하지 않겠거니와, 요컨대 이때부터 3월 12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때까지 노 대통령은 야당의 사과 요구를 받아들여 문제를 봉합하기는커녕 총선과 재신임을 연계하겠다는 등, 초강경 입장을 고수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입장을 수사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선거와 관련된 노 대통령의 태도는 2007년에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김승옥 기자는 노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어법을 문제시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내 논문에서 이 대목은 대통령의 언행을 평가하기에 앞서서 평가의 대상이 되는 사실 관계를 정리한 것이다. 그는 내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뚫거나 비켜가기 위해서는 일정수준의 타협과 흥정이 필요한데 노 대통령은 타협 자체를 악과 동일시해 스스로 지지기반을 약화시켰다'고 강조"한 것처럼 보도했지만, 내가 논문에서 강조한 것은 노 대통령의 독특한 언행에서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이 되새겨봐야 할 점은 우리 사회에 팽패한 선험주의 정치의식이라는 점이다. 선험주의 정치의식이 지속되는 한, 당분간 한국 정치의 파편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는 현시점에서 한국 정치의 건전한 발전을 해치는 요인은 기성 언론권력임을 다시 확인한다. 무지하거나 악의로 가득 찬 자들이 가당찮은 권력을 쥐고 행사하면서 도리어 이 사회의 언로를 막아버림으로써 특정 세력의 말과 가치만이 활개를 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오직 독자들의 양식만이 무지하고 악의에 찬 언론권력에 재갈을 물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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