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거의 강제적으로 민며느리를 들이게 됐다. 이것은 순전히 자칭 '시아버지'의 막무가내 때문에 일어난 사단인데, 그 막무가내 시아버지인 남편이 우리가 키우는 진돗개 '몽이' 놈의 각시 감으로 이제 막 젖을 땐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온 것이다.
아이들을 유난히 예뻐하는 성품 때문인지 5년째 키우고 있는 '몽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은 가히 자식 수준이다. 그런데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몽이가 아직 면총각을 못한 게 너무나 안타까웠는지 남편은 1년 전부터 노골적으로 암놈 한 마리를 더 키우자고 압박을 가해왔다.
그러나 아무리 짐승이라도 집안에 들이면 그때부터 식구가 되는데 식구를 돌보는 입장에서 쉽게 찬성표를 던질 수가 없었다. 짐승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덥석 데려왔다가 힘들고 귀찮다고 아무 데나 던져버리는 것만큼 잔인한 짓은 없지 않은가. 몽이 한 마리도 벅찬데 거기다 하나 더 보탠다고 생각하니 머리부터 아팠다.
하여튼 마누라 허락 떨어지려면 부지하세월이라 생각됐던지 남편이 일을 저질렀다. 뭐 자기 친구 집 진돗개가 전문가도 탐내는 순종인데 그놈이 새끼 다섯 마리를 났다나. 순종이고 잡종이고, 사람도 혈통 따지지 말자는 캠페인이 일어나는 판인데 뭔 "구신 씨나락 까먹는" 종자 타령이냐.
침 튀겨가며 '순종' 타령을 하는 남편에게 콧방귀도 안 뀌었는데 마누라 무시하고 기어이 암강아지 한 마리를 들여 온 것이었다. 자기가 키울 것도 아니면서 마음대로 강아지를 데려온 것이 짜증나 눈이 똑바로 떠지지 않았는데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놈이 어찌나 귀여운지 차마 미워할 수가 없었다.
낯선 집이 두려운지 비척비척 툇마루 밑으로 숨어드는 놈을 덥석 안았는데 에구머니나. 하얀 털에 까만 참깨처럼 무수하게 붙은 점 점 점…. 바로 진드기 내지는 개벼룩이었다. 세상에 내 집 것, 남의 집 것 개종자들은 무수히 봐 왔지만 그렇게 많은 벌레는 처음 봤다.
어리벙벙한 놈이 안쓰러웠지만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툇마루 아래 숨은 놈을 잡아내 모기약을 분사하고 빗질을 해댔는데 손에도 잡히지 않는 점 같은 벌레들이 무수히 기어나왔다. 대충 잡히는 대로 뭉개 죽였는데도 털 속에 켜켜이 박힌 것들을 완전퇴치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따뜻한 물에 목욕을 시키고 혹시 감기 걸릴까 봐 헤어드라이기로 말리는 난리 굿을 친 끝에 미리 마련해 둔 개집에 푹신한 이불까지 깔아 기가 팍 죽은 놈을 엎어 놨는데 사단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행여 어린놈 깔아뭉갤까 봐 몽이를 묶어 놨는데 몽이는 몽이 대로 풀어 달라고 발광을 하고 어린놈은 어린놈대로 제 어미한테 보내달라고 밤새 깍깍대 거의 잠을 설쳤다.
한 이틀을 어찌나 앙알거리는지 이웃집 어른들까지 밤잠을 설치게 하는 민폐를 끼쳐드리고 드디어 강아지가 적응을 했다. 마누라 혼자 있을 때는 잘해야 이틀에 한 번쯤 전화를 하면 다행이던 남편이 강아지 데려다 놓은 뒤론 아침, 점심, 저녁 아주 전화통에 불이 났다.
"아니, 여섯 살이나 먹은 몽이 놈한테 한 달짜리 각시라니 지금 원조교제 시키자는 거야 뭐야?"뻔질나게 전화를 해대는 남편에게 짜증을 냈더니 걱정하지 말란다. 뭐 6개월만 있으면 성견이 되어 새끼도 낳을 수 있다나. 하여튼 민며느리격으로 데려온 놈이니 두 놈을 모두 풀어놨다. 아무리 철딱서니 없는 '몽이'놈이기로서니 설마 어린 강아지를 해치랴 싶어서였다.
그랬더니 웬걸?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참말이었다. 쥐씨알만한 것이 몽이만 눈에 띄었다 하면 사정없이 짖고 달려드니까 몽이가 완전히 꼬리를 내리고 뒤꼍으로 도망을 친다.
마침내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뺐다. 마음대로 마당을 휘젓고 다니던 놈이 강아지 눈에 안 띄게 살금살금 담장가로 다니질 않나, 사료를 먹으려다가도 작은놈이 달려들기라도 하면 기겁을 하고 내빼질 않나 가관이었다.
성격도 어찌나 암팡진지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면서 아무 거나 물어뜯고 달려들고 보통 극성이 아니다. 내가 나가면 너무 좋아 오줌부터 지리고 그 다음엔 바짓가랑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걷지를 못하게 할 정도다.
성깔도 대단하고 애교도 만점인 놈이 어찌나 예쁜지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보고 왜 "우리 강아지"라고 하시는지 이해가 갔다. 민며느리를 데려다 놓고 행여 시어머니 자리가 구박이나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내가 수틀리면 재입양시키겠다고 했다) 하던 남편한테서 문자가 왔다.
자기가 며느리 이름을 지어 보냈으니 메일을 열어 보라는 것이다.
"원만행보살, 며느리 이름을 '자비'로 지었소. 여성이니까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딱 어울리고 '몽'이의 각시니 '비'가 맞춤 아니오?"에구구, 이 영감을 무슨 수로 말리나. 성질은 내가 먼저 내고도 여태껏 성질 내지 않는 남편을 이겨 보질 못하니 이런 '헛똑똑이'도 없겠지? 어쨌든 요즘 마당에만 나가면 쏜살같이 달려와 대롱대롱 매달리며 풀도 못 뽑게 하는 '비' 보는 재미가 보통 아니다.
가만 있자. 우리 아들이 장가를 들어도 며느리가 이렇게 예쁠까? 그랬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