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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역 광장에 방치된 듯 세워져 있는 자전거, 이곳에 주차대를 설치하면 좋을 듯.
 안양역 광장에 방치된 듯 세워져 있는 자전거, 이곳에 주차대를 설치하면 좋을 듯.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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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었다. 자전거를 통째로 잃어버렸을 때보다 더 황당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전거  안장을 가져가 버렸는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수 십 만원을 호가하는 비싼 자전거도 아닌데!

누가 내 자전거 안장을 뽑아가고 대신 허름한 안장을 자전거 위에 걸쳐 놓았다. 허름한 안장이라도 내 자전거에 끼울 수 있으면 다행일 텐데 크기가 맞지 않았다. 안장을 받치고 있는 시트 포스트와 자전거프레임 사이즈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세워둔 곳은 지구대 옆이었다. 믿음직한 경찰들이 항상 대기 하고 있는 곳이기에 최소한 도난 사고는 없을 줄 알았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이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장을 훔쳐가고 내 자전거와 맞지않는 안장을 걸쳐 놓았다.
 안장을 훔쳐가고 내 자전거와 맞지않는 안장을 걸쳐 놓았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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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안장 없는 자전거가 한두 대가 아니었다. 지구대 옆에 있는 자전거주차대라고 해도 인적이 드물다 보니 안장이 자주 없어지는 모양이었다. ‘도둑질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누군가 맨처음 자전거 안장을 훔쳤고 잃어버린 사람은 또 다른 안장에 손을 대고 그러다 보니….

기분 내키는 대로 한다면 나 역시 옆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의 안장을 쑥 뽑아서 내 자전거에 끼우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가면 될 터였다. 허나 양심이 허락 하지 않았다. 바늘을 훔치든 소를 훔치든 도둑인 것은 마찬가지다. 자전거 안장을 훔치고 도둑이 될 수는 없는 법.

이제야 사람들이 이 곳에 자전거를 세워두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경기도 안양역 부근에서 자전거 주차대가 설치된 곳은 이 곳 뿐이다. 지구대 옆 후미진 공터에 주차대를 설치해 놓았다. 그러나 지하철 이용자들이 자전거를 세워두는 곳은 역 광장의 한켠이다. 자전거 주차대도 없고 자물쇠를 채울 만한 기둥 하나 없지만 대부분 역 광장 한켠에  자전거를 세워둔다.

그러다 보니 무척이나 어수선 하다. 자전거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보니 멀쩡한 자전거가 ‘폐자전거’처럼 보인다. 자전거를 잃어버릴 염려가 없어 이곳을 선택 하는 듯했다. 이곳에 주차대를 설치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주차대만 있으면 자전거도 깔끔하게 정리될 터인데. 

지구대 옆 주차대에는 안장없는 자전거가 많았다.
 지구대 옆 주차대에는 안장없는 자전거가 많았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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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 자주 일어납니까? 그래도 지구대 옆인데 너무 하는 것 아닌가요?”
“이런, 또 없어졌네! 큰 일 났네요 집에 가셔야 할 텐데…”


경찰관은 나보다 더 안타까운 듯 호들갑을 떨었다. 아마도 자전거 안장이나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항의 하는 사람들을 자주 상대 한 것 같았다.

“감시 카메라 같은 것도 없나요? 아님 가끔 둘러보지도 않습니까? 안장 없어진 것이 꽤 여러 대던데!”
“언제 훔쳐 가는지 저희들도 도대체 알 수가 없어요. 우리 직원도 벌써 여러 번 잃어 버렸 어요.”


경찰관도 자전거를 잃어버렸다는 말을 들으니 더 이상 항의 할 수 없었다. 그냥 끌고 가려고 하자 한 경찰관이 어디서 구했는지 큼지막한 망치를 들고 나왔다. 시트 포스트를 망치로 두드려서 프레임에 끼워 준다는 것이다. 망치로 두드린 다음  몇 차례 끼워봤지만 크기가 차이가 나서 들어가지 않았다.

안장을 빼서 가방에 넣고 다니기도

안장 없는 자전거(지구대 옆)
 안장 없는 자전거(지구대 옆)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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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인구가  늘어나면서 자전거와 자전거 부품 도난사고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인터넷 자전거 관련 사이트에는 “자전거 도둑 잡아주세요”란 글이 자주 떠다닌다.

자출사(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는 사람) 회원인 한 대학생은 학교에서 자전거 속도계를 잃어버린 후 자전거를 주차 시킬 때마다 안장을 잃어버릴까봐 불안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대학생 중에는 아예 안장을 빼서 가방에 넣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자전거 안장을 여러 번 잃어버리고 난 후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요즘 자전거 도둑들은 자물쇠를 절단기로 끊고 자전거를 통째로 훔쳐가는 방법이 아닌, 가져 가기 쉬운 안장만 빼서 부속품 가게에 팔아 버린다고 전한다.

안장 없는 자전거(지구대 옆)
 안장 없는 자전거(지구대 옆)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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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자전거 부품이나 자전거를 잃어버린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불과 몇 달 전에는 바퀴에 있는 에어 밸브를 누군가 훔쳐 가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 이런 것도 훔쳐 간다는 사실에 놀랐다. 허탈한 마음으로 바람 빠진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 정비소에 가서 밸브를 사서 끼운 다음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었다.

“펑” 소리에 놀라서 타이어를 살펴보니 튜브가 터져 있었다. 튜브를 확실하게 밀어 넣지 않고 무리하게 바람을 넣다가 터져 버린 것이다. 졸지에 튜브까지 갈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자전거를 통째로 잃어버린 적도 있다.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잠시 볼일을 보고 나와 보니 자전거가 사라졌다. 채 1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자물쇠를 채워놓고도 잃어버린 적이 있다. 놀이터 난간에 자물쇠를 채워놓고 다음날 와 보니 없어져 버렸다.

자전거나 자전거 부품을 훔치는 행위는 자전거 대중화를 가로 막는 가장 나쁜 짓이다.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난 후 자전거 타기를 포기 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자전거를 잃어버릴 때마다 한동안 자전거를 멀리 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전거 도난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택가나 역 근처에 변변한 주차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공영 주차장을 볼 때마다 그곳에 자전거 주차대가 없는 것이 아쉬워진다. 자동차 주차 공간을 조금만 할애한다면 자전거 수십 대를 주차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터인데…. 주차 관리 요원이 있으니 도난 사고도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자전거 부품을 훔쳐서 돈을 버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기 것이 없어져서 억울한 마음에 다른 사람 자전거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죄의식을 느끼는지 혹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알았으면 좋겠다.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자전거의 대중화가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전거 도둑, #자전거 주차대,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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