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오전 8시 출발이다. 운전기사 친구는 30분 전부터 기다리고 있다. 아침을 먹는 동안 아주머니에게 딸이 참 예쁘고 착해요 했더니, 안 그래도 조선말을 잘 몰라 걱정이라고 한다. 열심히 식당을 운영해 꾸준히 저축하는 아주머니 같다. 공부 잘하는 딸을 잘 키우고 싶어하는 마음이 아주 깊다. 어머니의 마음이야 다 그렇겠지만. "오녀산 얼마나 걸려요?"
"네 시간." "와 머네." 소와 말, 논과 밭 그야말로 농촌을 달렸다. 우리 농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산도 푸르고 강도 맑다. 한적한 도로를 내달려 구비구비 가끔 덜컹거리는 길을 쉼없이 달렸다.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었고, 때때로 맡는 분뇨냄새도 정겨웠다. 그러다가 졸았다. 잠도 참 달다. 기사 친구에게 좀 미안했지만 의자를 확 다 젖히니 달리는 침대가 따로 없다.
오전 11시 50분에 환런(桓仁)에 도착했다. 다시 오녀산까지 10여 분 더 달려갔다. 60위엔 입장료를 내고 산성 오르는 차량에 탔다. 멀리서도 오녀산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너무 독특한 산이기 때문이다. 저 가파른 곳을 어떻게 오르나 했더니만 도로가 아주 지그재그다. 15분 정도 걸려 오녀산 정문 입구에 다다랐다. 이제부터는 혼자 올라가야 한다.
오녀산 입구에서 등산해서 다 보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물으니 2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릴 줄 몰랐다. 산성이니 그저 아무리 길어야 1시간이면 될 줄 알았던 것이다. 게다가 입구를 지나자마자 가파른 스빠판(十八盘) 등산로가 나타났다. 타이산(泰山)의 스빠판 계단 등산로가 얼마나 무서운 지 익히 아는데, 같은 이름이라니. 이거 참 예상치 못하게 고생 좀 하게 생겼다.
가파른 계단은 너무 쉬어가면 힘들다. 앉으면 오르기가 더 죽음이다. 체력전이다. 중간중간 사진을 찍거나 하면 참 좋다. 겨우 18반을 다 올라가니 평지다. 약도를 보니 은근히 볼 곳이 많다. 하산 길에 오녀산 성터가 있으니 빨리 이동해야겠다. 다시 얕은 등산로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흩날리는 소나무 가지들이 정말 예술이다. 절벽에 기대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소나무들이야말로 오녀산의 별미 같은 풍경이다. 더욱 소나무들을 빛나게 하는 것은 하늘이다. 파란 하늘은 소나무와 어울려 한 폭의 멋진 시야를 창조하고 있다.
하오한쏭(好汉松) 앞에서 멈췄다. 너무 멋지다. 산 아래가 훤히 보인다. 아슬아슬하게 뿌리 박은 소나무는 바람과 함께 평생을 흔들리겠지만 영원히 좋은 벗처럼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을 것 같다. 이 소나무를 보면서 한참 앉아서 산도 보고 산 아래도 보고, 하늘과 소나무 모두 친구처럼 대화했다. 바람만이 적막을 깬다. 간혹 새소리도 들리지만 바람 따라 휘날리니 날아가는 것인지 구름처럼 떠가는 것인지.
즈메이챠오(姊妹桥)는 그 모습이 간단치 않다. 절벽과 절벽을 연결해주는 것이 참 독특하다 느꼈는데 다리 아래서 보는 모양새는 더욱 경이롭다. 아래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최고의 속도로 달리는 형세다. 역시 나무들이 향연을 펼치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옆을 봐도 위를 봐도 모두 하늘과 실루엣으로 조화를 부리는 나무들이다. 세찬 바람에 마냥 흔들리면서도 꼿꼿한 자태를 유지하고 절벽에 꽉 매달린 모습들이 여간 강인해 보이질 않는다.
오녀산의 이름은 오녀분에서 왔다. 다섯 개의 돌무덤이 나란히 있다. 특별히 어떤 전설이 있는 것은 아니고 알아본 바에 의하면 항일전투 시기에 사망한 다섯 명의 여성 전사들의 그것이다. 어쩐지 산 이름이 유치하다 생각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오녀분이 오녀산이 되었고 이곳에 고구려의 옛 성터가 있으니 곧 오녀산성이 된 것이다. 오녀분을 지나 남쪽 방향으로 등산로를 타고 오르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하산길이 나온다. 이 길에는 천지가 하나 있다. 연못이라 하기에 너무 작지만 그 빛깔만큼은 예술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물빛이 파란 하늘보다 더 짙푸르니 섬뜩할 정도다.
연못에 왜 동전을 띄웠는지 모르나 수북하게 쌓인 동전이 보일 듯 말 듯하게 물 빛깔은 강렬하다. 선명한 빛을 바래지 않게 연방 풀잎들을 걷어내고 있다. 거울을 닦듯이. 그래서 연못에 비친 풀과 나무도 빛나고 있다. 파란 하늘을 닮은 연못이니 하늘이야 미뤄 짐작할 것이다. 좀 지나니 산 아래로 넓은 호수가 확 등장한다. 푸르고 드넓게 펼쳐진 호수를 바라보니 그 경치가 한 폭의 동양화, 예술 그 자체라 할만하다. 아니 동양화에서 이렇게 짙은 질감을 그려내지는 않느니 맞는 말은 아니겠다. 하여간, 새파란 하늘과 호수의 조화가 너무 아름답다. 게다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여전히 따라다니는 소나무들의 매력이 합쳐지니 산에서 내려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어쩔 것인가. 파란 하늘과 더 짙푸른 호수, 녹색의 나무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등산객도 거의 없다. 셀프 카메라로 찍으면서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혼자 보다니 정말 아깝다고 생각했다. 이런 곳에서는 시간을 두고 감상도 하고 풍경을 벗 삼아 시도 짓고 파란색, 초록색 안주 삼아 막걸리라도 한 잔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하는데 말이다.
정말 이런 풍경은 혼자 보기 아깝다. 그렇다고 혼자서 종일 보고 있을 수도 없다. 얼핏 시간을 보니 벌써 2시간 가까이 흘렀다. 삼매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빨리 내려가자 마음먹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데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곳들이 너무 많다. 산성 위에 옛 집터들이 유물로 전시되고 있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이다. 이런 멋진 산 위에 살았으니 참 부럽다. 사람은 변하건만 자연은 그대로였을 것이니 멋진 풍치 속에서 마음이 참 부자였을 것이다. 이제 내려가자. 내려가는 길은 오르는 길이기도 하겠지. 떡하니 반겨준 곳은 바로 이씨엔티엔(一线天). 하늘로 오르는 한줄기 줄. 중국 산에 오르면 간혹 이 이름을 만나게 되는데 대체로 아주 절경이거나 가파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말 절벽 사이에 좁게 난 길이 보인다. 신이 만들었다고 인정해야 할만한 그런 신비한 길이다. 정말 이 길을 오르면 하늘로 오르겠구나 생각하며 누군가 지었겠지. 정말 딱이다. 가파르기도 했지만 좁은 길을 내려가자니 위태위태하다. 양 갈래로 나누어진 길을 망설이다 보다 안전한 길로 내려갔다. 그리고 보다 위험천만한 길은 아래에 내려갔다가 다시 약간 올라가서 사진을 찍어야지 했다. 시간이 없으나 이 장면을 놓칠 수는 없다. 급한 마음에 후다닥 뛰었다. 아차 할 찰나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참 신기하게도 왼손에 캠코더를 들고 오른손에 카메라를 들고 뛰었는데, 왼편으로 넘어지면서 무의식 중에 캠코더 걱정이 생겼는지 왼손 등으로 땅을 짚으며 등쪽으로 넘어졌는데, 이상하게 왼쪽 종아리만 살짝 긁혔다. 오른쪽 앞발이 분명 돌에 걸렸는데. 정말 산에서 뛰면 안 돼. 다시 산에서 내려갔다. 산 중턱에 샤오쒀이쯔(哨所遗址)라고 쓰인 유적지가 몇 군데 보인다. 산성의 초소였던 곳이다. 비에 쓸려 가지 말라고 유리로 덮개처럼 막아놓았다. 보존을 하려면 좀 더 완벽하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성으로 덮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오녀산의 성터에 도착했다. 이곳도 역시 그저 옛 터이구나 할 정도이지 고구려 시대 산성이라는 표시도 없다. 언뜻 보면 최근에 새로 쌓아놓은 세트장인 줄 알겠다 싶었다. 한참을 이리보고 저리보고 아래로 내려가서 보고 옆에서도 보고 해도 그저 돌로 지은 얕은 성곽이다. 가지런하고 빈틈이 없다. 세월의 연륜을 말해주듯 돌들은 약간 균열도 있고 그 틈새에서 풀들이 자라고도 있다.
가슴이 아팠다. ‘고구려성(高句麗城)’이라거나 ‘흘승골성(紇升骨城)’ 아니면 ‘졸본성(卒本城)’ 또는 ‘홀본성(忽本城)’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하고 ‘오녀산산성(五女山山城)’이라 불리는 것도 아픈데 성터의 모양새가 너무 외로워 보인다. 홀로 서서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고구려답지 않다. 외톨이 같기도 하고. 점점 자라는 풀에 휩싸여 혹 역사 바깥으로 사라지지나 않을는지. 말로만 떠드는 애국충정 ‘고구려 마니아’들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인지. 혼자 한참 서서 별 걱정 다하다 보니 또 시간이 훌쩍 지났다. 뚜벅거리며 산을 다 내려왔다. 문득 입장권을 펼쳤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북부여 왕자 주몽이 건립한 지방정권’(据史料记载, 北扶余王子朱蒙建立高句丽政权)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방정권’이란 말이 참 거슬렸지만 ‘건립’이라는 말에 이르러서는 화가 났다. ‘건국 초기에 건립한 것’ 뭐 이렇게 표현하는 느낌이니 말이다.
훌훌 마음에 담긴 것을 다 털지 못하고 산에서 내려왔다. 게다가 등산객이 거의 없고 나 혼자라 하산하는 버스가 1시간이나 움직이질 않는다. 화가 나서 도대체 안 가는 거냐고 대들었더니 운전사가 어딘가 전화를 하고 그런다. 금방 간다고 한다는데. 이거 정말. 한참 기다리고 있을 조선족 동포 운전사에게 전화를 했다. 도대체 차가 안 간다고. 운전사가 산성 관리 측에 항의를 좀 한 모양이다. 다시 택시를 타고 통화(通化)로 갔다. 가는 길이 참 평화롭다. 논 일을 하는 사람들도 정겹다. 새하얀 구름이 살짝 그려놓은 하늘도 청명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마음속에는 여전히 앙금이 남았나 보다. 택시 타고 가는 내내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조용히 하늘 한번 보고 나무 한번 보고 산 한번 보고 농부 한번 보고 그렇게 시선은 한곳에 잘 멈추질 않았으니 말이다. 통화 역에서 기차 표를 예매하고 동포 운전사랑 훠궈(火锅)를 먹었다. 짜릿하게 매운맛으로 가슴에 든 허탈감을 씻어봤다. 씻겨 떨어질 것 같지 않은 아픔이라 맥주까지 동원해도 시원해지지 않은 마음을 안고 그렇게 션양(沈阳) 행 밤 기차를 탔다. [후기] 나이가 동갑인 동포 운전사는 참 수더분하고 또 역사에 대해서도 나름 잘 아는 친구다. 집안에 홀로 가는 사람은 꼭 연락하면 즐거운 하루 또는 이틀을 같이 보낼 수 있다. 물론 그때 편하게 말을 놓지 않았지만 한마디 꼭 하고 싶다. “고마워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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