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 “딱” 태풍 나리와 함께 온 비바람에 밤새 밤송이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마당 여기저기에 곱디고운 밤들이 수줍은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밤 주우러 간다. 올해 밤은 작년보다 훨씬 크고 여물더라. 농사짓느라 밭에 비료를 했더니 밤나무 아래까지 흘러간 모양이야.” 뒤춤에 비닐봉지 하나를 찔러 넣고 뒷산에 오르신 엄마, 관절수술을 받은 다리가 늘 불편하시다더니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니 다람쥐 저리 가라로 날래십니다.
“지붕 위로 밤 떨어지는 소리에 내가 잠을 못 잔다. 얼른 밤 주우러 가고 싶어서 말이야.” 이 가을, 엄마에게 아름드리 밤나무가 가득한 뒷산은 좋아서 잠도 못 잘 정도로 가슴 설레게 하는 놀이터랍니다. 이 주머니 저 주머니 가득 가득 윤기 나는 알밤을 주워 담아 내려오실 땐 얼마나 좋은지 한달음에 산등성이를 내려오곤 하시니까요. 비 온 후라 산길이 미끄러울 거라 걱정을 했지만 엄마는 듣지 않으십니다. 지난밤 태풍에 밤 떨어지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한 두시간만에 엄마는 검정 비닐에 가득 예쁜 밤들을 담아오셨습니다. “때깔 고운 놈은 골라서 추석 차례상에 놓고, 자잘한 것들은 밤송편을 만들고, 그도 저도 안 되는 건 밥할 때 넣어서 밤밥 해먹으면 좋지. 돈 주고 사봐라. 이렇게 흔하게 먹을 수 있겠나.” 지난 봄에 심은 동부와 함께 산에서 주워 온 햇밤을 넣고 밥을 지으니 가을의 영양이 가득담긴 영양밥이 따로 없습니다. “밤이 얼마나 영양가가 좋은 건지 아니? 엄마 젖 부족한 아기들 밤으로 죽을 끓여 먹여봐. 금방 토실토실 살이 올라 손목 발목이 잘록해진다. 곡기 못하시는 노인들도 밤죽을 끓여드리면 기운을 차리시거든. 가을 한철 밤밥 해먹고 나면 겨울나기도 문제 없다니까.”
그래서 가을 한철 우리집은 늘 귀한 밤밥을 먹습니다. 모두 엄마의 부지런함과 정성 덕분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너무 먹다보니 예상치 않은 작은 문제가 생깁니다. 밤을 듬뿍 넣은 밥을 매일 매일 먹으니 밤벌레처럼 살이 올라 예쁘기는 한데 소화가 잘 돼서 그럴까요? 평소보다 빈번한 가스배출사고(?) 때문에 낯뜨거운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지요. “뽀옹~” “뿌웅~” “이거 원 가스실도 아니고 화생방 경보라도 미리 울려주던지….” "나오는 걸 어떻게. 밤밥만 먹으면 그런 걸…. 이러는 나도 내가 싫어. 히히히." “냅둬라. 밤밥 먹으면 원래 방귀가 잘 나오는 법이거든. 방귀 뽕뽕 나올 때마다 살이 퐁퐁 오르는 거니까 눈치 보지 말고 마음 놓고 해.” "에라 나도 한방이다." 뿡~ 어른들의 밤밥예찬, 아니 방귀예찬에 여섯 살 조카 주석이가 한마디 합니다. “우리집은 방구공장이에요. 가족들이 모두 방구쟁이 뿡뿡이가 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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