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역사(驛舍)의 규모는 작지만, KTX 열차의 차량기지인 고양차량기지 인근에 위치하며 경부선·호남선 KTX 열차가 정차하는 역으로 유명한 행신역. 이 행신역의 플랫폼에서는 다른 지상 역사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특별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웬만큼 눈이 나쁜 사람이 아닌 한 보이는, 다음역인 강매역 전경이 바로 그것이다.
역간 중앙부분을 기준으로 한 영업거리표에 나오는 두 역간의 거리는 800m. 이는, 플랫폼 양 끝 간의 연결을 기준으로 한 최단거리는 700m도 안 되는 짧은 거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서쪽에 위치한 행신역의 플랫폼 서쪽 끝과 동쪽에 위치한 강매역의 플랫폼 동쪽 끝을 기준으로 두 역간의 최대거리를 측정한다 해도 900m를 넘지 않는다.
결국 한국철도시설공단은,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경의선 복선전철화가 완료되는 시점에 맞춰 강매역을 폐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근 주민들과 행신2지구 입주예정자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현재 500m 앞에 위치한 강매역 대신 1200m 정도 거리에 떨어진 행신역으로의 이동은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강매역 존치 논란 속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시민들이 강매역 폐쇄에 반대 논거로 제시하고 있는 사례가, 지난 2003년 9월 3일에 개통한 6.6km의 분당선 선릉~수서 구간의 도곡~구룡~개포동~대모산입구 구간이라는 것이다. 'PIMFY'(Please In My Front Yard)의 상징적 사례인 이 구간은 한 블록마다 한 개의 역사가 들어서 있는 곳이다.
2km 거리에 전철역이 3개실제 도곡~구룡, 구룡~개포동, 개포동~대모산입구 구간은 모두 700m 이내의 역간거리를 갖고 있다. 덕분에 이 구간의 경우 이웃한 역 간에 플랫폼이 또렷이 보이지는 않아도 플랫폼임을 식별할 수는 있다. 지하구간으로서 시야는 좁을지라도 지하 철로를 지나 보이는 플랫폼이 많은 형광등으로 환한 모습을 비추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들이 접했을 부도심 역사를 통해 얼마나 이 역간거리가 짧은지 살펴보자.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이대, 강남~역삼 구간의 역간거리는 800m로서, 좌측인 신촌역과 강남역에서 우측인 이대역과 역삼역까지 걸어서(지상 출구 기준) 10분이 조금 넘는 정도의 거리이다.
그런데, 신촌~이대 및 강남~역삼 구간의 경우, 신촌역과 강남역이 저지대이며 이대역과 역삼역이 상대적으로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 지리적 구조를 보이고 있다. 언덕을 오르는 걸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두 역간의 엄청나게 짧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나마, 강남역은 수도권전철 역사 중 이용객 1위인 역사, 신촌역은 대학교 중심의 번화가 지역에 위치한 역사, 역삼역은 거대한 빌딩이 즐비한 사무실 지역에 위치한 역사 등의 뚜렷한 정차이유가 있다.
실제 일평균 승하차인원(2007년 8월 기준, 서울메트로 통계)이 강남역은 19만7253명, 신촌역이 11만6245명, 역삼역이 10만2718명으로 폭발적 수치를 보이며, 이대역 또한 이용객 수 기준으로 2호선 역사 중 중상위권이지만 수도권전철 역사로 범위를 확대 시 상위권인 일평균 5만1197명의 승하차인원을 보일 정도로 붐빈다.
그러나 강매역 일대의 경우, 현재 역 바로 앞의 행신지구 최동단에 위치한 일부 아파트 주민들만이 역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며, 그나마도 1973년에 역사가 처음 생긴 뒤로 줄곧 간이역사로서 철도공사 직원이 한 명도 근무하지 않고 민간인에게 승차권 발매를 위탁하는 ‘승차권 위탁 발매역’ 상태가 유지될 정도로 이용객이 적다.
또한 현재 강매역 동쪽의 위치에 건설이 진행중인 행신2지구의 경우 5천 세대 규모의 소규모 택지지구이다. 역간거리가 지나치게 긴 경우도, 이용객이 폭발적으로 많은 경우도, 그렇다고 타 전철과의 환승역도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역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큰 손해이다.
지나치게 짧은 역간거리로 인한 수요 분산으로, 하루 이용객이 7천명 미만인 구룡역, 개포동역, 대모산입구역의 전례를 밟지 않으려면, ‘역세권’ 타이틀을 통한 집값 상승을 도모하는 일부 주민들의 PIMFY성 민원은 무시해야 마땅할 것이다.
역 수를 과감히 줄인 파리의 RER현재 대한민국은 서울특별시 내에서만 운영하는 도시철도와 서울특별시 외곽으로 운영되는 도시철도의 운임체계를 일찌감치 통합하여 운영하고 있다. 즉 서울메트로 산하 1~4호선 또는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산하 5~8호선의 역사에서 승차한 후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산하 수도권전철 역사에서 하차한다 해도, 이중운임을 부과하지 않는 방식이다.
이러한 통합운임체계는 지난 2004년 7월의 서울특별시 버스를 포함한 통합운임체계 구축 이전부터도 시행했던 방식으로, 수도권전철의 이용객 증대를 통한 도시철도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통합운임체계는 서울특별시 내에서만 운행되는 도시철도와 서울특별시 외 지역으로 운행되는 광역 도시철도 간 역할구분을 모호하게 하였다.
그 결과 집값 상승을 도모하는 일부 주민들을 중심으로 PIMFY성 역사 신설요구는 줄기차게 이어졌고, 그 결과 서울특별시 외에서 서울특별시 내로의 빠른 이동을 주목적으로 하는 광역 도시철도의 본 목적이 상실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700m 이하의 역간거리를 가진 구룡~개포동~대모산입구 구간은 가장 대표적인 예이며, 1980년대 후반 이후 무수하게 생긴 경인선의 신설 전철역을 비롯하여 그 예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세계적인 도시철도망으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의 경우, 파리 시내에서 운행되는 도시철도인 ‘메트로(Metro)'와 달리 파리 외곽지역에서 파리 시내로 빠르게 연결하는 광역 도시철도인 'RER'의 경우 별도 운임체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RER의 경우 역간거리가 짧은 메트로와 달리 파리 시내에서의 역 수를 최소화하여 급행형으로 운행중이다.
세느강을 경계로 파리와 맞닿은 파리 서북부의 신도시 라 데팡스(La Defense). 라 데팡스 역의 경우 이 역을 종점으로 하는 메트로 1호선과 RER A호선이 모두 운행중이며, 두 노선은 모두 7개의 도시철도(메트로 1/4/7/14, RER A/B/D)가 경유하는 파리 최대 도시철도역사인 샤틀레(Chatelet)역을 거친다. 하지만, 메트로 1호선과 RER A호선은 라 데팡스역에서 샤틀레 역 사이 구간의 역 수가 각각 13개 역과 2개 역으로 수 차이가 크다.
운행경로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라데팡스~샤틀레~리용(Gare de Lyon) 구간이 메트로 1호선과 같은 RER A호선의 2개의 정차역은, 개선문역(Charles de Gaulle Etoile)과 오페라역(Opera). 엄청난 이용객을 나타내는 중요한 역이다. 실제 이동 시간에서도 차이가 있어, 메트로 1호선으로 40분이 넘게 걸릴 구간을 RER A호선은 20분도 안 되어 닿는다.
RER B/C/D/E호선 또한 마찬가지이다. 촘촘하게 역사가 있는 메트로와 달리 거점 역사만 운영하여 중간정차로 인한 추가소요시간을 대폭 감축하고 있다. 이는 외곽으로의 개발을 통한 파리 대도시권 도시환경 개선에 효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PIMFY성 민원과 이를 수용하는 행태로 이름뿐인 광역전철을 가진 수도권과 달리 파리 대도시권은 도시철도 간 명확한 역할 구분과 정당한 원칙의 고수를 통해 올바른 도시철도 교통망 구축을 이룬 것이다.
광역전철의 저속화는 다수 시민에게 피해를 준다인터넷이 확산되면서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도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중에는 회원 수 5만, 게시물 수 10만이 넘는 전국대상형 거대 커뮤니티도 있고, 특정 지역만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밀착형 소형 커뮤니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동산 커뮤니티의 상당수는 자신이 보유한 집의 금전적 가치 상승을 위해 순리를 거스르는 주장을 펼치고 이를 선동하며 때로는 상호간 이익이 충돌하는 분야에 대해 이해당사자간에 심한 설전을 벌이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그 와중에 단골로 등장하는 요소는 도시철도의 건설이다. 경부선 광역전철의 성균관대역과 화서역 사이에 천천역(가칭)을 신설을 주장했다가 거절당한 사례나, 온수역이 환승역이 되기 전까지만 임시로 급행전철을 정차한다고 공언한 후 실제 온수역으로 급행전철 정차역을 옮기려고 하자 저지에 나선 경인선 광역전철의 역곡역 사례 등은 약과이다.
역사 신설이 추진되는 노선의 경우, 굴곡 노선을 만들더라도 자신이 살거나 자신이 보유중인 부동산이 있는 지역에 도시철도를 건설해야 한다며, 다양한 자료를 급조하여 여론을 선동하고 관련기관 사이트에 꾸준히 민원을 올리며 집단서명을 추진하기도 한다.
그러나 관련기관은 이러한 PIMFY성 요구를 다 들어줘서는 안 된다. 작은 구멍이 뚫림으로서 둑이 무너지듯이 한 곳의 PIMFY성 요구를 들어 줄 경우 그 곳의 선례를 근거삼아 다른 곳에서 지속적으로 PIMFY성 요구를 주장하게 된다. 이번 강매역 존치 논란에서 구룡~개포동~대모산입구 구간을 예를 들며 관련기관을 압박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광역전철은 주요 대도시 외곽지역에서 해당 대도시로 빠르게 연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광역전철이 본 목적과 달리 마을버스처럼 군데군데 다니며 소요 시간이 늘어나게 될 경우, 해당 지역보다 멀리 위치한 지역의 이용객을 비롯하여 다수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행신역 인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여 한 동안 행신역을 애용하던 지인에 의하면 행신역에서 통근열차를 놓쳤을 경우 철로 옆으로 빠르게 달려가면 강매역에서 통근열차 탑승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거리의 두 역, 하나는 없애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국정브리핑(korea.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