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는 우리의 대표 바다다. 애국가의 첫 소절에도 등장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다이버들이 처음 만나는 바다도 대개 동해다. 해가 뜨는 바다, 다이버들이 뱃전에서 동 동동 떨어지는 바다, 해안선이 절경인 바다, 그게 바로 동해다.
동해는 조수간만의 차이가 30cm 정도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입구를 일본열도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밀물과 썰물은 지구의 들숨과 날숨이다. 이는 여섯 시간의 간격을 두고 되풀이된다. 하루 4회다.
조수간만의 차는 통영을 기점으로 해서 인천으로 올라가면서 그 차가 점점 커진다. 인천이 그 정점에 있다. 거의 9m에 육박한다. 거기서부터 압록강으로 올라가면서는 차츰 작아진다. 세계 최대의 조차는 캐나다의 펀디 만으로 13.6m나 된다.
조수간만의 차가 거의 없다는 것은 다이버에게도 의미가 있다. 비치다이빙이 가능하고 입출수도 쉬워지는 것이다.
다이빙에는 물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보트를 타고 너른 바다로 나가서 보트 위에서 떨어졌다가 보트 위로 올라오는 보트다이빙과 해변에서 바로 들어가는 비치다이빙이 그것이다. 동해는 해변에서 들어가서 다이빙을 끝내고 제자리로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동해바다에 무턱대고 들어갈 수는 없다. 당연히 다이빙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하루에 한두 시간씩 약 일주일이 걸린다. 장비 사용법과, 물속에서의 신체 적응훈련, 그리고 물속이라는 특수상황에 대한 이론, 그러니까 잠수 생리학이나 잠수과학 이론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맛만 보는 정도로 배우면 된다.
신체 적응훈련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귓속의 압력균형 맞추기이다. 이걸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잠수를 시도하면 수압에 의해 당장 아픔이 온다. 무시할 수도 없지만 무시하고 내려가면 고막이 터져 버린다. 귓속 고막 바깥의 압력과 안쪽의 압력 균형을 맞춰줘야 귀가 아프지 않고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코를 막고 귓속으로 바람을 불어내면 압력균형이 맞춰진다.
물속과의 첫 만남을 오픈 다이빙이라 한다. 말하자면 꽃잠인 셈이다. 첫날밤인 것이다. 물론 나도 첫 다이빙을 앞두고 설레던 그 밤을 잊을 수 없다. 밤새 장비를 만지작거렸고, 갈증으로 수시로 물을 마셨으며, 하릴없이 집안을 거닐기도 했다.
아직도 나는 다이빙을 앞두고 있는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좋아서 그렇다. 본 게임은 접어두고 이 예비동작은 사람을 무척 행복하게 만든다. 다음날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꿈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꽃잠이 평생의 기억이 되듯이 오픈 다이빙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내가 처음 본 동해의 바다 속은 실망 그 자체였다. 너무 기대를 한 탓이었다. 첫 다이빙을 마치고 나서 나는 불만에 가득 차서 말했다. 마치 우리를 데려온 다이빙가이드가 바다를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처럼 그에게 따져 물었다.
“아니 바다가 형편없는데요, 그러니까 물고기도 없고….”
내가 들어 간 바다 속은 시야가 약 5m, 수심은 약 6m, 작은 바위와 모래사장, 그리고 추워서 떠는 것처럼 보이는 어린애 손바닥만한 쥐치 몇 마리가 모두였다. 물론 방파제 위에는 물고기 숫자보다 열배는 많아 보이는 낚시꾼들이 낚시를 던져놓고는 고기가 물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내 말을 듣고는 다이빙가이드이자 스승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바닷속도 육지와 마찬가지입니다. 다 좋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즐기세요. 댕기다 보면 좋은데도 많아요.”
그러면서 그는 멍게 한 마리를 꺼내어 뚜껑을 따내고는 소주잔을 만들어 거기에 소주를 부어 권했다.
“오픈 다이빙 기념입니다.”
그때, 바다가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기분이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첫 다이빙의 흥분으로 말미암아 가슴이 거의 터질 지경이었다. 이후로도 물속사정이 좋지 않으면 나는 다이빙 그 자체를 즐겼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그 곳에서 물고기와 벗하며 계곡사이를, 혹은 물속의 언덕 위를 새처럼 날아다닌다는 것은 내 환상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니까 첫 다이빙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상상하고 내가 알고 있던 물속은 외국영화에서 본 열대 바다의 물속이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우리바다를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가 없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열대와 같은 바다는 대한민국에는 없다. 정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곳은 있다. 울릉도나 독도를 제외해도 동해에는 그보다 더 좋은 곳이 많다. 물론 아름답다, 아니다 하는 개념자체가 주관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왕돌잠을 갈 필요도 없다. 어쩌다 이지만 한 번씩 동해가 마음을 내켜 그 속을 열어젖히는 날에는 누구라도 동해의 속살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이빙을 할 때 가장 힘이 드는 것은 입수다, 헤엄을 못 치면 가라앉는다고 알고 있는 분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사람은 물속으로 바로 가라앉지 앉는다. 폐에 있는 약 5ℓ의 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녀나 다이버들은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 몸에다가 자신의 몸무게의 10%에 해당하는 납을 찬다.
그럼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은 왜 그럴까? 말할 것도 없이 코까지 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 말이 의심스러운 분들은 목욕탕에 가서 실험해 보기 바란다. 숨을 참고 목욕탕 바닥에 몸을 붙이려고 해 보면 알 것이다.
입수하는 방법만 봐도 그 다이버의 다이빙 경력을 알 수 있다. 어찌 생각하면 잠수가 가장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오픈을 하던 그 당시만 해도 다이버들이 드문 시절이라, 해변에 도착해서 다이빙을 하려고 하면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구경을 했었다. 다이버의 숫자가 늘어나고 어민들의 내 바다에 대한 의식이 강해지면서 곳곳에서 어민들과 마찰이 시작되었다. 다이빙이 해변에 안착하면서 거친 과정이었다.
한 동안 나는 동해안의 해안선을 따라 1년 동안 100회의 다이빙을 한 적이 있다. 모든 것이 다이빙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절이었다. 다이빙적 사고, 다이버들만 만나기, 다이빙 숍 주위를 뱅뱅 돌며, 다이빙을 중심으로 하는 대화. 이 세상에 사람은 다이빙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만 있을 뿐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다이빙이라는 교의(敎義)에 몸을 맡긴 다이빙적 인간이었다.
이 시절은 거의 다이빙이 생활화된 때라 다이빙버디(다이빙 짝)가 못 갈 형편이 되면 나는 서슴없이 혼자서 바다로 향했다.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면서 될 성 부른 곳에다 차를 멈추고 바다로 들어갔었다. 물론 어민들과 마찰도 많았지만 그들은 내 손에 들린 수중카메라를 보고는 별 말없이 돌아가고는 했었다.
동해의 모든 바다는 아름답다. 지역마다 특색이 있고, 지역마다, 서식하는 해초와, 물고기의 종류가 다르며, 또한 해저의 지형이 다르다. 사람이 사는 모습도 다르고, 바다에 얽힌
이야기도 다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