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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대세론'이 '정동영 역대세론'에 포위된 형국이다. 이미 '정동영 대세론'이 '손학규 대세론'을 대체할 조짐마저 보인다. 대통합민주신당(이하 신당) 대선후보 경선 '주말 2연전'과 각종 여론조사의 결과다.
1차 제주·울산, 2차 강원·충북으로 이어진 4개 지역 주말 2연전에서 정동영 후보는 연거푸 승리했다. 정 후보는 1차 선거의 제주·울산에서 모두 1위를 했다. 2차 선거의 강원에서 1· 2위를 모두 내주었으나 충북에서 압도적인 몰표(52.7%)로 1위를 차지함으로써 종합 1위를 차지했다.
1위보다는 3위 쪽에 훨씬 더 가까운 아슬아슬한 2위를 한 손학규 캠프에서는 이같은 결과를 두고 국민선거인단을 버스로 실어나르는 '차떼기'와 조직·동원 선거의 결과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과연 그 이유 뿐일까.
'차떼기' 선거 때문에 정동영이 잘 나간다? 정말 그럴까사실 손학규 후보가 정동영 후보에게 1위를 내주거나 적어도 고전할 것이라는 조짐은 이미 지난 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예비경선 당선자 발표 때에 나타났다. '대세론'에 취한 손학규 후보 캠프에서만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다.
이날 '컷오프' 결과 발표 현장인 헌정기념관 대회의실은 각 후보 진영 의원들과 선거운동원, 그리고 지지자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그러나 5명의 '컷오프' 통과자 중 손학규 후보는 연설의 분위기가 썰렁했다.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사모와 MB연대가 상대 후보에게 했던 것처럼 야유를 보내지는 않았지만, 당원들의 외면과 무관심에서는 "그래, 너 한번 당해봐라"라는 '살기'마저 느껴졌다.
그런데 손학규 캠프 우상호 대변인은 뒤늦게야 "같은 당 안에서 이런 '왕따' 선거는 처음 치러본다"며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막상 뚜껑을 까보니 선거인단(1만명)과 일반국민(2400명)을 대상으로 한 1인2표 방식 여론조사 결과로 '컷오프'한 예비경선에서 1(손학규)-2위(정동영) 후보의 차이는 불과 54표(0.3%p)였다. 이른 바 '손학규 대세론'에 상당한 거품이 끼어 있거나, 적어도 손학규 대세론이 당내 경선에서는 힘을 쓰지 못할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 질문에 답을 찾으려면, 우선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의 전선이 두 군데에 걸쳐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부 전선] 친노냐 비노냐
먼저, 내부의 전선이 그것이다. 이 내부의 전선에서 피아 식별의 암구호는 '친노냐 비노냐'이다.
그 기준은 여전히 '노무현 프레임'이다. 열린우리당 해체와 신당 창당에 적용된 '노무현 프레임'은 신당 대선후보 경선전에서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범여권 인사들은 그것이 한나라당과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이 만든 프레임이라고 비판한다. 그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그 프레임이 유용한 것은 노 대통령의 '인기(국정 지지율)'가 '바닥세'인 탓이 크다. 또 역대 대통령들에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노 대통령의 적극적인 '선거 개입성' 발언도 한 몫 했다.
정치는 말싸움과 명분싸움인데 이를 놓칠 한나라당이 아니다. 결국 '친노냐 비노냐'의 내부 전선은 자업자득인 셈이다.
이렇게 해서 신당 대선후보 본경선은 이른바 '비노' 후보 2인(손학규·정동영) 대 '친노' 후보 3인(이해찬·유시민·한명숙)의 대결구도로 막이 올랐다.
누가 봐도 객관적인 상황은 친노 후보들이 열세였다. 표밭은 한정돼 있는데 친노는 셋이서 나눠가지니 둘이서 나눠갖는 비노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열세에 놓인 친노 진영은 이틀간의 연쇄 후보단일화로 구도를 단박에 '손-정-이 3파전'으로 만들었다. 이로써 표밭의 물적 토대는 일단 비노 2인과 친노 1인의 대결구도로 유리하게 바뀐 셈이다.
그러나 친노의 상황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친노라는 프레임은 현실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 당내에는 '친노 후보로는 어렵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정동영>손학규-이해찬'의 교집합
이런 상황에서는 손학규·정동영 후보가 이해찬 후보보다 상대적 우위(손학규·정동영>이해찬)를 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내 경선의 특성은 조직 기반이 강한 후보(정동영·이해찬>손학규)가 유리하게 돼있다. 결국 두 상황의 교집합은 '정동영>손학규·이해찬'의 구도로 나타난다.
그 결과는 지난 1(제주·울산), 2차(강원·제주) 지역 경선, 특히 손학규 후보가 3위를 한 2차 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정동영 후보는 강원도에서 이해찬·손학규 후보에게 1· 2위를 내주었다. 그러나 충북에서의 '몰표'로 종합 1위를 했다. 이용희 국회부의장이 '괴력'을 발휘한 덕분이었다.
이용희 부의장의 지역구인 영동·보은·옥천 3개 군 투표자는 4872명으로 충북 전체 투표자의 40%가 넘었다. 충북 내 인구비율(9.5%)에 비해 4배 이상 많은 수치다.
이 3개 군에서 정동영 후보는 3840표를 받았다. 3개군 유효 투표의 78.8%가 정 후보에 몰린 것이다. 이 3840표의 비중은 정동영 지지표의 60.6%를 차지했다. 충남 청양이 고향인 이해찬 후보는 이용희 의원 고향인 옥천에서 6.7%밖에 얻지 못했다.
이 후보 측에서는 이 역할을 강원도에서 이광재 의원이 했다. 강원도의 경우 이해찬 후보를 지원하는 이광재 의원 지역구인 태백·영월·평창-정선에서 이 후보가 65.2%를 득표했다. 투표자 수도 1326명으로, 도내 2위였다. 또 이해찬 캠프 선대위원장인 이창복 전 의원의 연고지인 원주에서도 이 후보는 1266표 중 544표(43%)를 얻었다. 두 지역에서의 선전에 힘입어 이 후보는 강원에서 1등을 했다.
손학규 후보가 강원도에서 2위를 한 데는 인구가 많은 삼척시(48% 획득) 등 도회지에서 지지율이 높은 것이 힘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손 후보가 속초(53%), 양양(40%) 등지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은 것이다. 속초-고성-양양은 한나라당 경선 전에 손학규 후보의 대리인 역할을 한 정문헌 의원의 지역구이다. 손 후보는 자신을 지지하는 한편 이시종 의원 지역구인 충주에서도 1023표 중 615표(60.5%)를 가져갔다.
'노익장' 이용희가 '젊은피' 이광재 눌렀다이용희 의원은 정 후보 캠프의 최고 고문이다. 이 의원은 지난 17대 총선 전에 총선시민연대가 지목한 낙천 대상자 가운데 한명으로 지목되어 열린우리당 1차 공천 대상에서 배제됐다.
당시 정동영 의장은 상임중앙위 만장일치로 재심을 이끌어내 이 의원에게 공천을 주었고, 그후 이 의원은 무난히 4선을 기록하며 국회 부의장까지 올랐다. 이 의원의 ‘괴력’은 정 후보에 대한 '보은'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이해찬 후보를 지원한 김종률(진천 음성 증평 괴산) 의원은 기자회견을 갖고 "이 지역 군수들이 직접 투표소에 나가 선거 참여를 독려했고, 선거인단 모집에도 관여한 의혹도 있다"면서 "무늬만 국민 경선이고 사실상 동원·금권·관권선거"라고 정동영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나 김종률 의원 지역구에서도 이해찬 후보가 56.5%(1169표 중 660표)를 가져갔다. 또 이용희 의원 지역구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충북에서는 유일하게 열린우리당 공천자들이 전원 당선된 곳이다. 이용희 '괴력'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후보가 강원에서 1위를 차지한 것도 전적으로 이광재 의원이 동원한 '강원도의 힘'이었지만, 이광재의 힘은 양과 질에서 모두 이용희 부의장의 노익장에는 미치지 못한 셈이다. 결국 강원·충북 경선은 정동영-이해찬의 대리전에서 이용희의 노익장이 '젊은피' 이광재를 누른 것이다.
[외부 전선] '짝퉁 한나라당 후보론' vs '한나라당 전력 효자론'
그 다음은 외부로 향한 전선이 그것이다. 이 외부로 향한 전선에서 승리를 담보하는 기준은 이명박 후보와 견주어 누가 '본선 경쟁력'이 더 우위에 있는가이다.
예비경선 때부터 다른 후보들이 손학규 후보를 공격한 논리는 '짝퉁 한나라당 후보(손학규)'로는 '진짜 한나라당 후보(이명박)'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손학규 진영은 이에 대해 범여권 1위 후보답게 '대세론'과 '한나라당 전력 효자론'으로 포지티브 전략을 구사했다. 현재 그래도 국민들로부터 10% 대의 의미있는 지지율을 얻는 후보는 자신뿐이고, 자신의 한나라당 전력이 오히려 본선에서 한나라당 지지표를 끌어올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 정면 돌파를 한 것이다.
사실 손학규 후보측이 가장 강력한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점이 범여권 후보 지지율 1위이다. 그러나 탈당 이후 지지율 변화 추이를 보면, 일부 언론 여론조사에서 10%를 넘어서기도 했으나 뚜렷한 정책과 비전이 없는 '대세론'만으로는 지지율 상승을 이끌어가기가 힘들다는 지적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손학규 진영은 '대세론'을 철회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여정부 주역 불가론'과 '레드카드 후보 필패론'을 강조하는 네거티브 공세로 전환했다. 참여정부 주역으로서 이미 국민들로부터 '레드카드'를 받은 정동영·이해찬 후보로는 본선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1위 정동영 후보에게는 조직·동원 선거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며 '참여정부 황태자'라는 공격도 서슴치 않고 있다. 손 후보는 18일 대전 정책토론회에서 "정 후보 지지자들이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선거인단을) 차로 실어나르는 동원선거에 나섰고, 이 때문에 대선후보 경선이 당의장 선거로 변질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범여권 입장에서는 이번 대선이 '한나라당 대 비한나라당' 대립구도로 치러질 때 승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 '짝퉁 프레임'은 본경선에서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런 구도에서는 정동영·이해찬 후보가 손학규 후보보다 상대적 우위(정동영·이해찬>손학규)를 점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3등후보로서의 탈당 경력과 '이명박 대항마'로서의 경쟁력 부재, 한나라당 시절 발언 및 행적에 대한 범여권후보 적합성 논란 등은 여전히 손 후보를 공격하는 '약한 고리'다. 특히 당내 기반이 취약한 손 후보에 대한 범여권후보로서의 적합성 논란은 탈당 이후 지속적으로 지지율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결국 '정동영 돌풍'의 배경에는 앞서 살펴본 '노무현 프레임'과 '짝퉁 프레임'에서 정 후보가 이해찬-손학규 후보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점이 작용하는 셈이다.
정동영, 여론조사에서도 손학규 앞질러더구나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여론 지지율에서도 처음으로 손학규 후보를 제치고 이명박 후보에 이어 2위로 나서 주목된다.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손 후보에 배 가까이 뒤져왔던 정 후보는 경선 시작과 함께 '전체 대선후보 선호도' '신당내 세 후보간 선호도' '범여권 후보 적임도' '한나라당 이 후보와의 가상대결' 4개 항목에서 모두 손 후보를 앞질렀다.
<동아일보>가 여론조사기관 코리아리서치(KRC)에 의뢰해 17일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정 후보는 전체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10.2%를 기록해 손 후보(4.5%), 이해찬 후보(4.0%)를 제쳤다. 정 후보가 범여권에서 1위를 한 것도, 지지율 10%를 넘긴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또 <한겨레> 신문이 17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플러스에 맡겨 전국 19세 이상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면접 조사에서도 정 후보는 전체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9.7%를 기록해 손 후보(6.1%)와 이 후보(3.6%)를 제치고 이명박 후보(56.7%)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지지율(선호도) 변화 추이를 보면 동아일보 조사의 경우, 지난달 20일 같은 조사와 비교할 때 정 후보는 6.8%p 상승한 반면 손 후보는 2.5%p 하락했고 이 후보는 2.2%p 올랐다. 한겨레 조사의 경우, 지난 1일 같은 조사에 비해 18.4%p 올랐고 특히 호남권에서는 31.3%p 나 급상승했다. 이 기간 손 후보는 2.6%p 떨어졌고 이 후보는 3.5%p 올랐다.
손 후보는 16일 강원·충북 선거결과가 '꼴찌'로 나타나자 "아무리 잘 짜여진 각본도 끝내 민심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며 '당심'과 '민심'의 일치를 강조했다. 곧바로 광주에 가서 한나라당 전력을 사과하고 "광주의 아들이 되겠다"고 호소하며 3차 선거전(광주·전남)에서의 반등에 '올인'했지만 현실은 오히려 반대의 방향에서 당심과 민심이 일치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호남권에서의 정 후보 지지율 급상승은 이른바 '전략적 선택'에 능한 호남의 신당 지지층이 정 후보를 '이명박 대항마'로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갖는다는 관측도 나온다. 선거 경험이 많은 신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대선이 '한나라당 대 비한나라당 대결구도'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록 질 때 지더라도 '민주정부 10년의 정체성'을 가진 후보를 내세워 한번 후회 없이 붙어보자는 밑바닥 정서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결국 손 후보로서는 탈당 이미지를 극복하고 범여권 후보로서의 정통성을 획득할 수 있는 전략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관건인데, 현재로서는 '비상구'를 쉽게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