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원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사람들의 이런 성향은 그동안 쌓아온 믿음이 외부의 사실과 큰 격차가 있을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때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내적인 혼란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바로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선별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이다.
개인의 이런 성향은 사회적으로 확장되어 인습과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기능을 한다. 유통되는 정보가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와 관련되어 있을 때(혹은 그렇게 믿고 있을 때) 이런 현상은 빠른 시간 안에 폭발적으로 발생한다. 모두 잘 알고 있듯, 황우석 사건이나 <디워> 논란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에 이해관계의 당사자인 언론은 '기대'와 '사실'을 뒤섞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기대'로 '사실'을 뒤집기도 했다.
<디워>가 미국에서 개봉된 후, 한국의 대다수 언론은 다수의 기대를 깨뜨리지 않는 '안전한'(그리고 돈이 되는) 선택들을 했다. 언론들은 현상의 일부만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과감히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나태와 무지도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예를 들어보자.
"<뉴욕타임즈>, '설명 필요 없는 영화' 호평" (<한국일보> 2007. 9. 10)
"<디워> 미국 개봉 첫날 5위... 한국영화 신기록 달성할 듯" (<조선일보> 2007. 9. 16)
"<디워> 미국 개봉... 한국적 소재, CG 할리우드도 인정" (<국민일보> 2007. 9. 16)'자막 불필요'가 '설명 필요 없는 영화'로 둔갑하다니 한국의 언론을 보면, <디워>는 태풍처럼 미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문화현상이라도 된 듯하다. 그러나 극장에 가 보아도, 신문을 펴 보아도, 온라인 토론방에 가 보아도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으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미국이 맞나 싶을 정도다. 일단 한국 언론이 보도한 내용의 사실관계부터 살펴보자.
<디워>는 미국에서 개봉하기 전에 기자시사회를 단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영화도 보지 않은 <뉴욕타임즈> 기자가 어떻게 개봉 한 주 전에 "설명 필요 없는 영화"라는 "호평"을 할 수 있었을까? <한국일보>가 '인용'한 <뉴욕타임즈> 기사의 원문은 이렇다. "자막이 없어 편하게 볼 수 있다(with no pesky subtitles)."
<조선일보>는 <디워>가 "개봉 첫날 5위에 오르며 선전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집계결과로 보면 '5위'가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경우 대개 종영 무렵보다는 개봉 초기에 관객을 많이 확보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디워>와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 전국개봉을 한 영화가 얼마나 되는지도 흥행 여부 판단에서 중요한 문제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디워>가 개봉한 그 주말에 전국개봉을 한 영화가 세 편뿐이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미국 언론은 <디워>뿐 아니라, 이보다 몇 배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1위를 거둔 조디포스터 주연의 <용감한 것(The Brave One)>에 대해서도 "흥행실패(Stumble at Box Office)"라고 평가한 상황이었다. <디워>는 개봉작 가운데 최하위였음은 물론, 개봉 2주차인 서부영화 <유마로의 3:10>는 물론, 개봉 5주가 지난 코미디 <수퍼배드>와의 경쟁에서도 뒤처졌다.
'박스오피스 모조(Box Office Mojo)'에 따르면, <디워>가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첫 주 6일 동안 거두어들인 총 수입은 585만1000불이다. 한국에서 같은 기간 동안 거둔 수입의 4분의 1 수준이다. 미국에서 확보한 개봉 스크린 수가 한국의 세 배가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이 '선전'인지 아닌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관객 주머니 털어 미국 적자 메우는 비극적 만용의 도화선 되나 '박스오피스 모조'가 밝힌 6일 동안 <디워>의 총수입을 2275개 개봉 스크린으로 나누면 스크린당 하루 평균 수입은 430불(약 40만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스크린당 하루 평균 5회를 상영했다고 보면 한 회 평균 86불(약 8만원) 정도의 수입을 거둔 것이다. 표당 8불로 계산할 경우, 매 회 11명 정도가 관람한 셈이다.
성공의 평가기준은 주관적일 수 있지만, 개봉 첫 주 6일 동안의 회당 수입이 8만원 정도밖에 안 되는 영화를 성공작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주말 이후 관람객이 더욱 줄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월요일(17일)과 화요일(18일) 극장당 하루 매출은 각기 134불(약 12만원)과 121불(약 11만원)이었다. 그리고 수요일(19일)은 더 떨어져 103불(약 9만5천원)이 되었다. 하루 평균 매출을 5회로 나누어 보면, 수요일의 경우 한 회당 매출이 2만원 미만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표당 8불로 계산할 경우, 극장에 두세 명이 앉아있었다는 말이다. 수요일은 개봉한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이니, 심각한 상황이다. 일부 극장은 벌써 교차상영을 시작했다.
심형래 감독의 말대로 <디워>의 미국 마케팅에 2천만불을 썼다면, 수익은커녕 마케팅 비용의 절반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한국 언론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거나 "제 2, 3의 <디워>가 나와야 한다"는 식의 무책임한 보도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 언론의 이런 태도는 한국 영화산업과 관객은 물론, 심형래 감독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디워> 논쟁과는 별개로, 미국 내에서 <디워>가 관객들과 평론가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객관적이고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디워>에 애정을 품고 응원한(평론가들을 포함해 누가 그러지 않았겠는가?) 관객들로서는 가슴 아픈 부분일 수 있으나, 무비판적 옹호가 언제나 미덕일 수는 없다. 여기서 또 다시 반성의 기회를 잃는다면 <디워>는 "한국영화산업의 대안"은커녕, 한국 관객의 주머니를 털어 미국 개봉의 적자를 메우는 비극적 만용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더구나 심형래 감독은 이미 미국시장을 노린 새로운 영화제작에 착수했다고 말하고 있다. 과거의 경험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을 수 없다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디워>가 한국과 미국에서 지적받는 부분이 <용가리> 시절부터 되풀이되어온 문제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한국에서 <디워>의 작품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되었을 때 감독과 영화를 일방적으로 감싸기보다는 합리적인 조언을 통해 작품을 조금이라도 다듬도록 제언했다면, 미국에서 쏟아진 극단적인 평가를 일부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디워>의 실패에 대해 심형래 감독과 배급사 쇼박스는 물론, 합리적인 비판능력을 상실한 한국 언론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컴퓨터그래픽(CG)조차 높은 평가 못 받아한국 언론은 <디워>가 미국 내에서도 '스토리가 약하다'는 비판은 받았지만, '그래픽 기술로는 인정받았다'고 일관되게 보도했다. (스토리와 대사는 "껌 종이에 쓴 듯한 수준의 스토리," "영어로 번역된 중국제 전자제품 매뉴얼 같은 대사" 등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래픽에 대해서도 미국 대부분의 언론은 그다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조악한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비판은 물론, <반지의 제왕>이나 <고질라> 등 다른 영화를 그대로 베껴왔다고 말하며 표절문제를 제기하는 언론도 적지 않았다. 호의적인 평가조차 '저예산 영화치고는 봐줄만 하다'는 정도였다.
"<디워>는 한국의 영화사상 가장 많은 돈을 들인 영화다. 그러나 <디워>는 조잡한 완성도에, 영화를 떠받치는 특수효과도 놀랄 만큼 조악하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그 제작비가 도대체 어디에 쓰였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중략) 놀랄 만큼 뛰어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갖춘 현대의 영화들과 비교하면 <디워>의 그래픽 기술은 빙하기의 공룡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저예산 뮤직비디오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영화 같은 주류매체용은 아니다." (윌리엄 얼, "높은 제작비 들였다는 <디워>, 결과는 실망적", <더 이타칸> 2007. 9. 20)
"출연료만 생각하고 <디워>에 참여한 배우들은 이 영화가 미국 개봉관에 걸릴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던 것 같다. (중략) 이 배우들이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컴퓨터 그래픽 수준을 확인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촬영 후 컴퓨터로 합성해 넣은 것이니까 말이다. 배우들은 미국 관객이 <디워>의 특수효과를 보게 될 줄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국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은 일본의 혼다자동차를 베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나 보다. 이제 <고질라>까지 베끼고 나섰으니." (로저 무어, "<디워>는 실패작", <올랜도 센티넬> 2007. 9. 14)
<올랜도 센티넬>의 평가는 지나치게 가혹하지만, 미국의 신문이 가장 많이 받아 실은 영화평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평론가들이 한국영화에 특별히 적대적인 것은 아니며, 일부가 생각하듯이 한국영화의 부상에 대한 시샘이나 위기감 때문도 아니다.
몇 년 전 <괴물>이 미국에 개봉되었을 때 미국 평론가들은 한목소리로(<뉴욕타임즈>의 <디워> 평가와는 달리 아무런 조롱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 뜻에서) "괴수 장르의 재발견"이라고 평했다. "꼭, 꼭, 꼭 보아야 할 영화"라고 극찬도 쏟아졌다. 이제까지 한국영화는 미국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꾸준히 신뢰를 쌓아가고 있었으며, 이 뒤에는 미국 평론가들의 호의적 평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디워>, 한국영화가 가야 할 길인가... <괴물>이 호평받은 까닭 기억해야
가장 큰 문제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였지만, 개봉 방식이나 마케팅 전략에도 문제가 있었다. <디워>는 미국의 흥행 대작들이 모두 간판을 내리거나 개봉 후 몇 주에서 몇 달이 지난 상황에서 개봉했다. 이는 '정면승부를 피한다'는 <디워>의 개봉전략의 하나이기도 했지만, 인지도 낮은 영화를 전국적으로 개봉시키기 위해 배급사가 취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내 대규모 개봉'이라는 전략이 한국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을망정, 미국시장에서는 도리어 역효과를 낳았다. 어차피 기대작들이 많지 않은 시기였기에, 제한개봉으로 시작해 점차 스크린을 늘려가는 것도 고려해 볼만한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한국에서 '미국 2000개 이상 스크린 개봉'이라는 극적 홍보효과를 가져올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개봉 후 한 달도 못 되어 간판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2000벌 이상의 프린트 제작비용과 단기간 안에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 비용, 그리고 배급사에 지급하는 추가비용까지 고려할 경우 막대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미국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런 전략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2002년, <디워>와 비슷한 시기인 9월에 개봉하면서 단 26개의 극장에서 제한상영으로 시작해 그 이듬해인 2003년 3월말까지 42주 동안 장기 상영하면서 스크린 수를 700여개까지 늘렸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수입이 1000만 불이 넘는다.
그러나 <디워>는 스크린 2000개 이상의 대규모 개봉을 하면서도 언론시사회는 무시하는 납득하기 힘든 전략을 썼다. <디워>의 미국 배급을 맡은 프리스타일(Freestyle Releasing)은 언론사의 인터뷰 제의를 거부했다. 그 때문에 미국의 관객들은 예고편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객관적 정보도 얻지 못한 채 극장으로 갔고, 그 결과는 실망한 관객들의 배신감으로 나타났다. 만일 제작사나 배급사가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면 이런 무책임한 방법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전략 이전에 관객에 대한 예의와 배려의 문제다.
나는 한국 영화가 미국에서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낯선 땅의 극장과 대여점에서 고국의 영화를 보는 기쁨은 정말로 크다. 그러나 '미국 진출'이라는 것이 강박으로 자리 잡은 한국 문화계의 현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디워>가 '진출'하기 전에도 한국 영화는 한국 특유의 감수성과 독특한 미적 감성, 그리고 적절히 부여된 사회적 메시지로 높이 평가받고 있었다. 특별히 미국관객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든 영화들에 도리어 미국 관객이 서서히 눈을 돌리는 상황이었다.
그런 면에서 미국 평론가 브라이언 온도프의 말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온도프는 '돈'이 한국 문화계의 지배적 잣대가 되면서 문화적 가치를 상실하는 것은 물론, 목표로 하는 돈 자체와도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미적 감수성과 풍요로운 영화언어를 지닌 나라다. 왜 그런 나라가 <디워>라는 더 없이 끔찍한 공상영화를 세계시장에 내놓아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가? 가장 쉬운 (아마도 유일한) 대답은 '돈'일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현실을 보면, 진절머리 날 만큼 끔찍한 특수효과로 도배한 영화는 미국도 충분히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이여, 제발 참으시라!" (브라이언 온도프, <이크리틱> 2007. 9. 15)
누구든 실수할 수 있고, 이 실수는 미래의 성공을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전에 필요한 것은 냉철한 자기 평가와 반성이다.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 그리고 언론에서 이런 합리적인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할리우드 진출의 꿈'을 역설한다. 하지만 그들이 '꿈'을 말할 때마다 거기서 더 멀어져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