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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부쩍 DMZ(비무장지대) 관련 이용 계획이 정치권과 자치단체에서 발표되고 있지만, 아직 DMZ는 미지의 땅, 금단의 땅으로 한반도를 가로지르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에 "아름다운 통일로 가는 길, DMZ-개발이냐 평화냐,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상하자"를 주제로 총 4회에 걸쳐 DMZ 기획을 연재합니다. ▲ 대선주자의 DMZ 개발 공약에 이어 이번에는 지자체의 DMZ 개발 계획을 짚어보고 다음편에는 ▲지금 우리에게 DMZ는 무엇인가?가 이어집니다. 최근 DMZ 논의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DMZ의 평화적 이용의 모범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 서화리' 평화생명마을' 전경
DMZ의 평화적 이용의 모범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 서화리' 평화생명마을' 전경 ⓒ 김형우


"DMZ는 개발 욕구와 보존 욕구가 충돌해서 복잡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입니다. 어떻게 보존하는 것이 마땅한지, 우리 민족뿐 아니라 인류에 어떻게 기여하는 것이 좋을지를 놓고 전문가뿐 아니라 예술인·지역 주민· 평범한 시민이 모여 DMZ의 미래에 대해 토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17일 강원도 인제군 서화리를 찾았다. 백두대간 울창한 산림이 동쪽으로 막 뻗어 나가려는 산자락에 적지 않은 규모의 논과 마을, 부대가 뒤엉켜 커다란 문화 생태계가 펼쳐진 곳이다.

여기서 다시 남방한계선 부근으로 살짝 올라가다 보니 'DMZ 평화생명동산' 현장에서 터 닦기 사업이 한창이다. 군데군데 눈에 띄는 대전차 방어호, 탱크와 지근거리에서 끊이지 않고 들리는 총성이 평화·생명·동산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정성헌 평화생명동산 추진위원장은 역설적으로 21세기 새로운 대안 문화가 이곳에서 창출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여기서 남방한계선으로 바로 이어지는 가전리 검문소까지는 2㎞ 남짓. 평화생명동산은 마을 주민들과 방문객이 어울려 몸의 평화와 인류의 평화를 돌볼 수 있는 방문센터, 지뢰를 포함 모든 것을 그대로 놔둔 채 최소한의 탐방로만을 갖춘 지뢰생태공원, DMZ 생태자원 연구단지를 포함한 커다란 기획이다.

이는 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좋은 선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흔적인데, 이를테면 센터는 후방에, 지뢰 매설 지역은 그대로 둔 채 탐방을 위한 다리만을 놓겠다는 것이다.

역설의 지대로써 DMZ의 특성을 살려 명실상부 생명, 평화의 산 교육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음양오행 원리를 살린 건축과 조경, 대체 에너지 시설은 기본. 이날 이곳을 찾은 이유는 지역 주민·군부대·지자체가 협력하여 DMZ 개발의 좋은 사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DMZ 개발 놓고 경기도·강원도 경쟁 치열

대선 주자들도 그렇지만 접경지역을 포함하고 있는 지자체와 지자체장들의 DMZ 관련 발언과 움직임이 최근 들어 부쩍 잦아졌다. 지난 8월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한강하구 골재채취, DMZ의 평화생태공원 조성 등을 남북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다뤄줄 것을 정부에 건의한 바 있으며, 이어 같은 달 22일 경기개발연구원이 'DMZ 평화·생태공원 기본구상과 조성방향'이란 토론회를 열었다.

이에 앞서 6월엔 강원도가 국내외 전문가를 발기인으로 선출, 서울에서 '한국DMZ평화포럼' 출범식을 진행하였다. 또한 지난 8월 김진선 강원도지사도 "DMZ가 지닌 생태, 자원, 문화 등을 인류의 자산"으로 내세우기 위해 "'한민족 평화 생태지대 조성 계획'을 세워 철원은 물류 교류모델, 화천 양구 인제는 평화 생명 교류모델, 고성은 관광 교류모델"로 개발하며 "철원에 개성공단과 같은 평화시를 건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선 주자들의 DMZ 공약이 선언적이라면, 지자체의 이용 계획은 집중 정도가 훨씬 크고 알차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의 의욕적인 움직임은 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미 몇 해 전 강원도와 경기도에서 발표한 '제4차 강원권 관광개발계획안'과 '제4차 경기도 광역 관광개발계획안'을 보면 DMZ의 관광 자원화, 안보 관광지 사업 등을 주요하게 거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의 움직임은 일정한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상의 문제로 볼 수 있겠지만, 변화된 정세 속에서 경쟁이 가속화 된 것 아닌가 하는 판단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난관은 분명하다. 경기도와 강원도가 DMZ 관광 특화를 선점하기 위해 분투한다면, 문화관광부와 환경부, 해양수산부에서 보존과 이용에 관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고, 건교부와 행자부 차원의 종합 계획이 각각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문화관광과 박상신 주사는 "중앙 부처가 나름대로 계획안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며 DMZ의 특성 상 절대적으로 국방부 협의가 중요하다"면서 "방향은 발표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없는 상황이라며 "강원도도 비슷한 형편일"거라고 했다. 방향과 현실에 분명한 괴리가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지난 20여년 DMZ를 모니터 해왔던 함광복 GTB DMZ연구소장은 "우리가 개발을 유보했던 땅"에 대한 계획은 그 자체로 매력적일 수 있지만, 최근의 상황은 "유행병처럼 과도한 열정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자연생태계 조사, 개발 계획 모두 경쟁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강원도에서 평화공원 이야기가 나온 지 벌써 10년 정도 됐습니다. 그런데 올해 경기도에서 똑같은 얘기가 나왔습니다. 지금껏 나온 이야기를 합치면 파주, 개성, 철원 남을 땅이 하나도 없습니다."

강원도와 경기도가 통일을 대비하여 도의 발전 방향을 구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일 수 있다. 남한 내 군사시설보호구역의 약 67.5%가 강원도와 경기도가 속한 접경지역에 설정되어 있어 각종 제재로 주거 환경과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화체제가 가져 올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결과는 고스란히 접경지역의 변화, 북 강원도와 북 경기도의 발전과 변화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강원도와 경기도는 경쟁적일 수 있지만, 또한 한 배를 탄 운명이다.

지난봄에 발표한 '경기도-강원도 광역행정협력문'은 두 지자체의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잘 엿볼 수 있게 한다. 주요 합의 사항으로는 접경지역 공동발전을 위한 제도개선 및 광역교통망 조기 확충 ▲DMZ 주변 평화관광벨트 조성과 관광 상품 공동 개발 등이다. 특히 인천 강화∼경기 연천∼강원 고성에 이르는 323㎞의 동서관통 순환도로를 조기 개설하고, 국도로 지정해줄 것과 군사시설보호구역 규제완화 및 접경지역지원법 실효성 확보 등 접경지역 제도개선을 위해 힘을 합치기로 한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생태지평 황호섭 연구원은 "남북 교류협력이 활발해지고 상대적으로 낙후된 민통선 일원 주민들의 개발욕구가 점차 표출되면서 DMZ 일원의 개발압력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면서, "DMZ 일원의 생태계를 보전하고 지역주민의 경제에도 보탬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연구해야 하지만 보전 원칙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합의문에서 보듯 접경지역에 걸쳐있는 규제를 풀고 지원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은 강원도와 경기도의 오랜 현안인데, 이와 비슷한 지적은 시민사회 진영에서도 나온다. 지뢰제거연구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재국 연세대 교수는 "지역에 대한 군의 과도한 권한으로 접경 지역 주민들이 당한 피해를 배려하면서 현안으로 얽혀있는 토지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DMZ 논의의 출발이라고 보고 있다. 분단체제의 피해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민통선 주민들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이 먼저 필요하다는 얘기다.

 강원도 철원군 유곡리 앞에 펼쳐진 논 바로 너머에 남방한계선 철책이 보인다. 민통선 일대를 개간하여 활용되고 있는 논의 크기는 상당하다.
강원도 철원군 유곡리 앞에 펼쳐진 논 바로 너머에 남방한계선 철책이 보인다. 민통선 일대를 개간하여 활용되고 있는 논의 크기는 상당하다. ⓒ 김형우


DMZ까지 흔든 부동산 투기 열풍

그렇다면 DMZ 일원에서 불거지고 있는 현실적인 사례를 좀 더 짚어보자.

1967년, 대북 심리전과 식량증산 목적으로 군 출신 150명이 천막에 입주하면서 형성된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의 경우, 최근 50여 가구의 집터 소유주가 소유권을 내세우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국가가 통제를 해제하기 전까지는 경작권이 입주민에게 있다는 등의 규정을 제시하며 행정 당국이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지만, 철원군은 정부에서 예전부터 이 사업을 추진해 관련 자료가 전혀 없는 데다 사유재산권 분쟁 성격이 있어 대책마련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강원도 인제군 해안면의 경우, 이주민들이 지뢰밭을 일궈 만든 경작지가 1996년 3월 농림부와 재경부로 귀속됐다가, 지난해 4월 국유재산법에 의한 매각금지규정 시효가 만료됨에 따라 실경작자인 농민들에게 매각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으나,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면적이 적고 매입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50여년 개간 과정에서 각종 지뢰폭발로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은 민간인만 31명에 이르고 있지만, 자칫 하면 이 땅이 외지인에게 넘어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강원도 고성군은 뒤늦게나마 민통선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고성군은 군부대 협조로 배봉천 일대 1만5000㎡지역에서 미확인 지뢰를 제거한데 이어, 오는 2009년까지 54만㎡ 일대에서 지뢰제거작업 및 마을휴양관리지 조성사업을 모두 마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곳에는 주민소득증대 차원에서 고사리재배단지 마련 및 자연학습장, 서바이벌게임장, 농특산물판매장 등이 들어설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 9월 국회 결과에 따라 민통선이 15㎞ 이내에서 10㎞ 이내로 축소되면 이와 같은 개발행위는 더욱 가속화 될 전망이다.

한마디로 DMZ 일원 개발의 현실은 산 넘어 산이지만, 폭발적인 개발 욕구가 잠재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랏빛 전망만으로 과연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몇 해 전 대한민국 투기 열풍이 DMZ 일원을 뒤흔들었던 적도 있다. 2000년대 초 평당 5만원선이던 철원 민통선 안쪽 농지는 현재 20만을 호가하고 있다. 철원군 유곡리의 경우 2002년 76건이던 토지거래가 2004년에는 227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설상가상으로 DMZ 토지를 사고파는 거래가 급증하던 때도 있었다. 아무나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민통선 지대가 아닌 남방한계선 위 DMZ 내 토지가 실제로 약 2만원에서 5만원가량에 거래되었다. 당시 거래를 주도한 조합원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거의 남은 매물이 없다고 한다. 토지대장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없는 경우에도 지적도 없이 매매계약이 성사되었다고 하니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에 대해 건설교통부는 "DMZ 내 토지 취득은 거래 자체가 무효이거나 현행법상 대부분 취득이 불가능"하다고 밝혔지만 앞으로 어떤 혼란스런 상황이 벌어질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한 민통선 주민은 "최근 전문 브로커들이 파주 민통선 일대에 포크레인과 지뢰 제거 장비를 갖고 들어와서 농지를 불법 개간하고 지역 농민들에게 경작권을 파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혀를 찼다. 민통선 일대를 관할하는 군부대가 "어찌된 영문인지 불법 개간과 경작권 매매 행위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원도 인제군 서화리 'DMZ 평화생명동산' 공사 현장 입구에 서있는 장승. 공사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서화리 주민들이 직접 깍아서 세웠다.
강원도 인제군 서화리 'DMZ 평화생명동산' 공사 현장 입구에 서있는 장승. 공사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서화리 주민들이 직접 깍아서 세웠다. ⓒ 김형우


평화·생태관광, 철새와 마을이 공존하는 법

'아름다운 DMZ' 라는 구호 아래 복잡한 논란이 요동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커다란 이상보다는 지역주민, 군부대, 지자체, 중앙정부가 모여 광범위한 실태 파악과 보전 대책을 현실에 입각해 논의할 필요한 때가 아닐까?

평화생명동산 정성헌 추진위원장은 "최고의 DMZ 보호운동은 들어와 사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주민들과 뜻있고 관심 있는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하나하나 작은 성공 사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인제군 서화리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평화생명동산은 하나의 가능성을 머금고 있다.

평화생명동산의 시작도 그러하다. 지난 98년경 지역주민들의 숙원사업인 민통선 출입영농 허가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인제군이 정성헌(남북강원도협력협회 이사장) 추진위원장의 제안을 받아, 서화리 주민, 관할 군부대와 함께 논의하며 진통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서화리 주민들이 민통선 개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몇 마지기 논을 포기한 대신 "평화와 생명의 고장"으로 변모시켜 가자는 제안에 흔쾌히 동의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공사장 입구에 마을 주민들이 깎아서 만든 장승들이 늘어선 것도, 서화리에서 나는 쌀 이름을 '평화생명쌀'로 바꾼 것도 평화와 생명의 가치를 마을의 것으로 받아 안은 탓이다.

"지역 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돌아가는 혜택은 없을 거라고 했어요. 다만 DMZ 주변에 사는 사람들로서 평화롭고 생명이 넘치는 공간으로 한 번 만들어 볼 생각 없냐고 했지요. 주민들과 함께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또 하나의 좋은 사례도 있다. 새 전문가 이기섭 박사는 철원군 양지리 마을을 좋은 사례로 꼽고 있다. 과거 DMZ 고엽제 파동으로 접경지역의 쌀 가격이 떨어진 때가 있었는데, 오히려 양지리 쌀은 "철새가 찾아와 먹을 정도의 맑은 물로 지은 좋은 쌀"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더 비싸게 팔린 일이 있었다. 이 일로 환경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주민들이 친환경농법으로 농사짓는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에 '새농어촌건설 우수마을'로 선정돼 받은 상금으로 '두루미 펜션'을 짓고, 철새탐조 투숙객들을 끌어 들이면서 관광마을 조성을 위해 철새 보호 사업에도 힘쓰고 있다.

"대중관광과 달리 생태관광의 전제 조건은 보전이 중심입니다. 철새가 떠나면 관광객이 오지 않기 때문에 통제와 보호에 대한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양지리 주민들은 이를 잘 알고 있어서 아직은 큰 문제없이 철새와 마을이 공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을과 자연이 더불어 살며, 공존의 기술을 습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DMZ의 지속가능한 미래와 평화를 가능케 하는 삶의 기술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획취재기자단 기사입니다.



#DMZ#평화생명마을#생태관광#철새#민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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