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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선서 하는 반기문 UN사무총장
 취임선서 하는 반기문 UN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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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5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각국대표 기조연설에서 “변화하고 있는 세계는 더욱 강력한 유엔을 필요로 하고 있다”며 유엔의 역할 강화를 역설했다. ‘더욱 강력한 유엔’이 필요한 이유와 관련하여 그는 다자주의 부활과 상호의존성 심화를 들었다.

국가 간의 상호반목과 전쟁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보다 더 강력한 전 지구적 단위의 세계정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쉽사리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평화를 위해 더욱 강력한 유엔이 필요하다는 표현은 얼핏 그럴싸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유엔이 실질적으로 누구의 유엔인가를 생각해보면, 유엔 강화가 인류에게 행복이 되기보다는 도리어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에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출범 당시 그 구성면에서는 미·소 양대 패권을 일정 정도 반영했지만, 실질적인 기능면에서는 그동안 미국의 패권을 일방적으로 반영해온 게 사실이다.

소련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익을 대변한 유엔군이 편성돼 한국전쟁 당시 미군 등을 일방적으로 지원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유엔이 '누구의 유엔인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특히 구소련 붕괴 이후에는 유엔이 미국의 국제정책을 승인하는 거수기 역할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충실히 수행해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구소련 붕괴 이후 유엔이 한 일이라면, 미국의 무단적 세계정책에 대해 합법적 권위를 부여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동네 아이들’을 때리고 다니면, 유엔은 뒤에서 그 동네 아이들을 혼내고 나무랐다.

그리고 유엔이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점은, 북한·이란 등의 핵문제에 관한 미국-유엔-IAEA의 협조체제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엔은 북한·이란 등의 ‘하소연’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역할만 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 딱한 것은, 그러면서도 유엔의 힘으로 핵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유엔이 ‘인류의 유엔’이 아닌 ‘미국의 유엔’으로 전락한 상태에서 유엔을 한층 더 강화한다면, 이는 미국의 무단적 세계정책이 더욱 더 강화되는 결과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분신인 유엔이 강화되면, 본체인 미국 역시 더 강화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유엔의 강화는 인류에게 불행이 될 뿐이다.

혹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걸프전쟁에서 유엔군이 아닌 다국적군이 결성된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 유엔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그다지 강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유엔을 강화하면 미국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미국이 예전처럼 유엔군을 마음대로 동원하지 못하는 것은 미국과 유엔의 상호 독립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 유엔군을 조직할 수도 있었을 미국이 곧잘 다국적군에 의존하곤 하는 것은 그만큼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유엔의 영향력도 약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인의 위세가 약해지면 그 집 하인의 위세도 약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하인의 위세가 약해지면, 그 사실로부터 주인의 위세 약화를 추론해야 할 것이다. 하인의 위세가 약해지는 사실로부터 주인과 하인의 상호 독립성을 추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인과 하인의 위세가 정비례 관계를 보이는 것처럼, 미국과 유엔의 영향력도 정비례 관계를 보여 왔다. 유엔이 점차 약해지는 것은 그 유엔을 부리는 미국이 약해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유엔이 힘 싣는 것은 미국 수족을 강화하는 일

만약 미국의 영향력과 유엔의 영향력이 반비례 관계를 보이고 있다면, 유엔의 영향력 강화에 기대를 걸어봄직도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운명을 함께하고 있는 유엔에 힘을 실어준다면 이는 미국의 수족을 강화하는 일이 될 것이고 결국에는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일이 될 것이다.

미국의 지시에 따라 유엔군을 조직하기도 힘들 정도로 약화되어버린 유엔을 도리어 강화시킨다면, 앞으로 미국은 주요 분쟁에 다국적군을 보낼 필요도 없이 보다 더 권위 있는 유엔군을 보낼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이러한 점들을 생각해볼 때, 인류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는 유엔의 영향력이 약화되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게 차라리 더 나을 것이다. 유엔이 초췌해지면 초췌해지도록 그냥 내버려두고 유엔이 콜록콜록 하면 콜록콜록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분신인 유엔이 약화되어야만 인류가 미국의 무단적 세계정책으로부터 조금은 더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국가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진정한 의미의 세계정부는 인류가 앞으로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자국의 이해관계에 매몰된 어느 한 나라가 세계를 이끌어가는 한, 이 지구상에는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을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정부는 미국 등을 포함한 소수 강대국들만의 밀실 담합으로 창출될 수는 없을 것이다. 몇몇 강대국이 모여서 만들어낸 세계정부는 유엔의 전철을 그대로 되밟게 될 것이다. 몇십 년, 몇백 년이 걸릴지라도 인류의 보편적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진정한 세계정부를 향해 인류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해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에서, 한국인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있을지라도 유엔은 계속해서 약화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곧 인류의 이익이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세계는 더욱 약한 유엔을 필요로 하고 있다.


태그:#유엔, #국제연합, #반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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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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