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때운 후 짐을 싸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그리 크지 않은 시외버스 정류장에는 버스가 뒤엉켜 손님을 태우고 있다. 우리는 남쪽 해변으로 가는 "프놈펜(Phnom Penh) - 시아누크빌(Sihanouk Ville)"이라고 쓰인 버스에 올랐다. 시아누크빌은 얼마 전 여객기가 추락해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희생된 곳이다. 한국에서 수입된 중고 버스임을 쉽게 알 수 있는 조금 오래된 버스다. 버스에는 한국어 안내문이 그대로 붙여져 있다.
운전석 바로 옆 시야가 좋은 좌석에 앉아 행선지를 향해 간다. 도로는 잘 닦여 있다.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이 많이 다니는 것으로 보아 화물선을 위한 항구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버스는 두어 시간 달린 후 조그마한 식당 앞에 손님을 내려놓는다. 어린 아이들이 과일, 찐 고구마, 옥수수 그리고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병아리의 형체가 보이는 부화하기 전의 계란을 쪄서 팔고 있다. 화장실을 찾았다. 예상했던 대로 남자들은 들판을 향해 볼일을 본다.
프놈펜을 떠난 지 거의 다섯 시간이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택시 대신으로 손님을 태우고 다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하니 우리와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서양 젊은이들도 와 있다. 잘 정돈된 숙소에 짐을 풀고 5분 정도 걸어 바닷가로 나가본다.
한국의 여름 피서지 같이 북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많은 사람이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외국에서 온 여행객이 많아 보인다. 해변에는 간이음식점이 즐비하다. 숯불에 갓 잡아 올린 오징어를 꼬치에 구워주는 행상도 있다. 바닷물은 바다 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슬리퍼를 벗고 발을 물에 담그며 해변을 걷는다. 가는 모래의 촉감과 알맞은 온도의 바닷물이 여행의 피로를 풀어준다.
저녁을 먹으려고 해변을 다시 찾았다. 해변의 테이블에 켜져 있는 수많은 촛불이 이국의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그럴듯하게 생긴 테이블에 앉았다. 막상 앉고 보니 하루살이가 심하게 달라붙는다. 자세히 보니 전등에는 하루살이가 끊임없이 달려들고 있다. 해변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기기가 쉽지 않다.
멀지 않은 바다에는 고기잡이배들의 불빛이 난무한다.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고기잡이 배에서는 하루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바다와 싸우는 어부의 전쟁터일 것이다.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나는 단체 관광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배낭여행을 많이 해 온 탓인지 단체로 다니는 관광을 하면 나만의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아 여행의 참맛이 감소되는 기분이다. 호텔 앞에서 관광을 시켜주겠다는 사람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미화 4불을 내고 오토바이를 빌렸다. 12시간 동안은 내 것이다.
오토바이 뒤에 탄 아내에게 지도를 손에 쥐여 주고 해변 도로를 무작정 달렸다. 공해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신선한 공기를 흠뻑 마시며 달리니 상쾌하다. 무엇보다도 우리만의 시간을 갖고 우리가 원하는 곳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갈 수 있어 좋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해변을 따라 달렸다. 계속 가도 끊임없는 백사장의 연속이다.
'인디펜던스'라는 이름을 붙인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호텔이 눈에 들어온다. 경비원의 호기심 어린 눈초리를 무시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진입로를 따라 들어선다. 잘 정돈된 정원에 둘러싸인 현대식 호텔이다. 오토바이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아내와 함께 들어서니 주차장 근처에 있는 호텔식당에서 직원이 나와 기웃거린다.
손이 많이 간 정원을 둘러본다. 호텔손님만을 위한 해변도 따로 갖고 있다. 가격을 보니 미화 120불부터 시작한다. 내가 지금 묵는 호텔보다 서너 배는 더 비싸다. 유럽 여행을 할 때에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는데 이곳보다 더 비싼 금액을 준 생각이 난다. 유럽에서 온 여행객들은 돈의 가치가 있어 참 좋겠다. 국가 경제력이 무엇인지! 조금 떨어진 정원에서 일꾼들이 일을 하고 있다. 열대의 뙤약볕이 쏟아 붓는 속에서 온종일 정원을 가꾸는 일꾼들은 일당으로 일이천 원 정도 받을 것이다.
세상은 공편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생각해 본다.
호텔에서 나와 관광지도에 표시된 절을 찾아 떠났다. 골목을 몇 번 돌아도 절이 나타나지 않는다. 목도 축일 겸해서 바닷가에 있는 가게를 찾았다. 간단한 음식도 파는 곳이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바로 옆 식탁에서는 캄보디아 현지인과 일본사람들이 음료를 마시며 영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일본에서 호텔을 구입하려고 온 모양이다. 캄보디아에도 서서히 관광객이 모이기 시작한다. 곳곳에 호텔 짓는 공사를 하고 있으며 한국어 간판이 붙은 호텔도 있다. 속된 표현으로 개발이 시작되고 있는 시아누크빌이다. 캄보디아 주민들에게 개발의 혜택이 나누어졌으면 하는 기원을 해본다.
콜라를 주문했다. 겉모양은 비슷하지만 우리가 흔히 마시는 코카콜라 혹은 펩시콜라가 아니다.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는 미국 상표가 붙은 콜라는 없고 단지 캄보디아에서 만든 콜라만 판다. 미국 콜라에 길들어 있는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절을 찾아가는 길을 물었다. 잠깐 기다리게 해 놓고는 옆에 있는 호텔에서 지도가 곁들여 있는 작은 소책자를 주면서 가는 길을 알려준다. 음료수를 마시며 책자를 보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잇는 새로운 국경이 개통 되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바닷가를 따라 베트남에 갈 수 있어 마음이 끌린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캄보디아의 국경도시 코콩(Koh Kong)을 거쳐 태국을 배와 육로를 이용해 간 후 비행기로 베트남에 올 예정이었다. 베트남을 떠날 때의 계획을 수정했다. 육로를 이용해 새로 개통된 국경을 통해 베트남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그네처럼 목적 없이 길을 거니는 사람은 우연한 기회로 여정이 바뀌기 십상이다.
절에 도착했다. 절은 동네에 비해 큰 규모다. 경내 한복판에 누워있는 커다란 금색의 부처상이 눈을 끈다. 또한 '앙코르왓'을 연상시키는 제법 큰 석탑이 서너 개 세워져 있다. 대웅전에 들어가 벽화를 구경하고 경내 구석에 만들어 놓은 긴 의자에 앉아 절 특유의 분위기에 젖어본다. 황색의 도포를 입고 거니는 스님들의 모습이 보기에 좋다. 한 스님은 담배를 피우며 어디론가 걸어 가고 있다. 절에서 담배 피우는 스님을 본 일이 없었기에 특이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스님도 사람인데 하면 그만이겠지만 구도를 하는 모습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 본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8월 초에 다닌 여행 기록입니다. 다음 회에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