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해 김정일 국방 위원장과 악수를 나눴다. 다음날 조간 신문들은 이 장면을 어떻게 보도할지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중앙일보>의 승리였다는 게 언론계의 일반적인 평가였다. <중앙일보>는 1면에 아무 기사도 싣지않고 하단 광고까지 없앤 뒤 두 정상이 처음 만나 악수를 나누는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두 정상의 만남에 아무리 깊이있는 기사를 쓰고 화려한 제목을 달아봐야 이 사진이 주는 감동을 따를 수는 없었다. 만남 자체가 최대의 뉴스였기 때문이다. 2000년에는 만남 자체가 뉴스였지만... 그러나 2007년은 다르다. '정상회담의 연속성 확보'라는 의미가 있지만 구체적인 성과로 감동을 줘야한다는 부담이 있다. 김연철 고려대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1차 정상회담은 '만남'이고 이번에는 '의제'"라고 규정했다. 그는 "1차 정상회담은 만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 2000년 이전 남북한 사이에는 당국간 회담이 거의 없었고 따라서 1차 정상회담 때의 합의사항은 추상적·원칙적이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이미 남북한 사이에 쟁점들이 부각되어 있어 이 쟁점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의제들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 정상회담의 핵심은 '의제'라는 뜻은, 다른 말로 하면 상당히 구체적인 합의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000년 때는 처음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지난 7년간 쌓인 문제를 풀어야 한다"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남북관계를 한단계 엎그레이드 할 것인지, 어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국제환경] 북핵 변수는 다르다, 북미 관계는 비슷하다
2000년 정상회담과 올해는 국제 환경에서도 차이가 난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은 "2000년에는 북핵 문제가 돌출되지 않을 때로 한반도 문제가 국제화되기 전이다, 따라서 1차 정상회담은 한반도 문제의 민족 내부화를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됐다"며 "이번에는 북핵 문제가 돌출되고 국제적인 6자회담이라는 논의가 진행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되레 비슷한 면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 1999년 10월 대북포용정책을 핵심으로 한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의 페리프로세스가 나왔고 이런 분위기에서 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이어 2000년 10월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다. 지금은 조지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고 있고 6자회담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미 관계의 흐름은 2000년과 올해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정치상황] 한국은 임기말, 미국은 임기 도중... 2000년과는 정반대 2000년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2년 8개월이나 남아있었다. 따라서 그는 정상회담 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장관급 회담 정례화·개성공단 사업 추진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노무현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불과 5개월이다. 12월 19일 대선을 감안하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잔여 임기는 2달 반정도에 불과하다.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의 앞길을 제시한다고 해도 후속 뒷처리는 차기 정부의 몫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 정상회담이 아무리 늦어도 올 3월 정도에만 열렸어도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조성렬 박사는 "새로운 대규모 경협보다는 현재 통행·통관·통신 등 남북 경협의 걸림돌을 제거한다거나 납북자나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며 "한반도 평화 선언을 한다면 상징적인 수준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남은 임기 문제로 들어가면, 2000년 때 빌 클린턴 대통령과 현재 부시 대통령의 경우는 정반대다. 2000년 6월 정상회담이 열리고 그 해 10월 올브라이트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빌 클린턴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4개월에 불과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미 수교가 임박한 분위기였으나 중동 사태가 악화되고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결국 북미 수교는 불발됐다. 그러나 지금 부시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1년 5개월이다. 6자회담의 순조로운 진행이라는 변수가 있지만, 부시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서는 그의 임기안에 북미 수교를 포함한 거의 모든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다. [지도자 스타일] 말 가리는 김대중 대통령, 토론 즐기는 노무현 대통령
정상회담은 특히 최고 지도자의 성격이나 대화 스타일도 중요하다. 특히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뜻이 전부인 나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김 위원장은 두뇌 회전이 대단히 빠르고 달변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자주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워낙 말을 가려서 신중하게 하는데다 상대방의 반응을 봐가면서 대화를 하는 스타일이다. 김 위원장과 대조적이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언변은 청산유수고 토론을 즐긴다. 달변가고 솔직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잘 한다. 따라서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대화가 잘 진행되면 궁합이 잘 맞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지만, 혹시 '맞짱 토론' 양상으로 가면 언쟁으로 번지는 게 아니냐는 농담도 나온다. 김 위원장을 몇 번 직접 만났던 한 인사는 "언뜻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대화 스타일이 비슷해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며 "김 위원장은 두루뭉수리 게 큰 덩어리로 얘기하고, 이 주제를 얘기하다가 얼른 건너 뛰어서 다른 주제로 간다"고 말했다. 그는 "노 대통령은 토론을 즐기고 논점을 잡고 집중적으로 논리를 펴가는 스타일인데, 내가 볼 때 김 위원장은 이런 식의 토론을 즐기지는 않는다"며 "혹시 논쟁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이라면 김 위원장은 얼른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리지 맞대응하지 않을 것이다, 둘이 만나면 논쟁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 가는 방법] 2000년엔 하늘로, 2007년에 땅으로 김 대통령과 노 대통령이 평양에 가는 방법도 다르다. 김 대통령은 항공기를 타고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평양으로 갔다. 한국전쟁 이후 첫 서해 직항로의 개척이었고 이후 남북한 당국 회담은 이 항로를 이용했다. 노 대통령은 육로를 이용한다. 1994년 지미 카터 대통령 등 일부 인사가 육로를 이용한 적이 있지만, 남한 대통령의 첫 육로 방북은 그 자체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번 정상회담 뒤 남북 당국간 회담에 육로 이용이 더 활발해질 수 있다. 남북 장관급 회담 때 양국은 좌석수 170석 안팎인 보잉 737급 여객기를 전세내는 데 항공료 부담이 만만치않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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