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을 느끼게 해 주는 건 역시 '나비'였다.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함평IC로 나가자 나비 마스코트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길에도 산에도 하다못해 건물에도 나비 모양을 멋지게 그려 놓았다. 봄에는 온통 벚꽃 일색이더니, 가을에는 조금 달라졌다. 꽃무릇에 배롱나무 꽃까지 제법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일 먼저 생태 공원을 찾았다. 소풍 나온 아이들이 떼를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몸보다 큰 가방 탓에 투구게처럼 가방이 걸어가는 것 같은 안쓰러운 모습의 아이들. 어딜 가나 엄마를 일터에 뺏긴 아이들의 가냘픈 걸음걸이가 안타까워 보였다.
입장료가 5천원. 좀 비싸다 싶었지만 볼 게 많겠지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길옆 돌배 나무에 배가 다닥다닥.
'야! 돌배다." 우리는 동시에 외치고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런데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던 아가씨가 뜻밖의 대꾸를 한다.
"드시고 싶으시면 하나 따 드셔도 됩니다."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해 졌다. 따서 먹으라는 말이 하도 신기해서다.
"아니, 이거 따도 된다구요?"
"예, 하나쯤은 따서 드셔도 됩니다." 아가씨의 친절이 기분 좋게 다가온 순간 아니 돌배도 먹나 싶어 의아해진다.
"아니 돌배도 먹어요?"
"아, 저건 돌배가 아니랍니다. 솎아내지를 않아 그렇지 맛도 괘 괜찮답니다." 우리는 다가가 하나를 땄다. 그리고 간이 작은 관계로 하나로 만족하기로 했다. 손이 잘 닿지도 않으려니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배가 보기 좋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도 가을의 풍성함을 보고 느끼게 해줘야 한다는 배려 차원에서.
그런데 돌아서다 보니 가장 맛있어 보이는 배를 말벌들이 집중강탈하고 있었다. 말벌 사고가 많이 나는 계절이라 보기만 해도 으시시. 하지만 그들은 맛난 먹이에만 정신이 팔려 사람의 존재 같은 건 잊은 듯했다. 그러나 말벌의 횡포는 곧 확인되었다.
생태공원을 나와 용천사로 갔을 때였다. 왠지 어수선해 보였다. 구급차가 지나가고 경찰차도 지나갔다. 나중에야 말벌의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벌떼 참 무섭다. 그런데 거기 용천사에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이 있었다. 그 불길도 볼겸 소풍 나온 학생들이 다수 벌에 쏘였단다. 꽃무릇 공원에서.
꽃무릇이라면 상상화라는 이름으로 선운사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곳 용천사에도 지천이었다. 길이고 산이고 벌판이고 아주 꽃무릇 천지였다.
수선화과의 꽃으로, 봄에 녹색 잎이 나오지만 꽃은 보지 못한 채 6월경에 말라 버리고, 꽃은 잎이 말라 없어진 다음에 꽃대를 내어 피운다. 이처럼 마치 사랑의 숨박꼭질을 하는 연인 마냥 잎이 나오면 꽃이 지고, 꽃대가 나오면 잎이 말라 버리는 꽃무릇.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만나지 못하는 슬픈 인연을 보는 듯한 꽃. 그래서 사람들은 상사화라고 부르기도 하면서 꽃말도 만들고 그에 맞는 이야기도 만들었을 것이다.
용천사는 모악산 기슭에 있다. 용천사 가는 길로 접어들자마자 나타난 꽃무릇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 모습에 흥분한 내 옆의 사진사는 몇 번이나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지만, 이건 갈수록 더 황홀한 풍경이 펼쳐졌다.
일부러 심었나 했지만 설명에는 자생지라고 되어 있다. 용천사 앞 꽃무릇 공원이나 경내뿐 아니라 등산로에도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함평천에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징검다리를 건너 걸어보았다. 백로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자동차를 세워놓고 낚싯대를 드리우는 사람들도 있어 아름다웠다. 작지만 나름의 멋을 지닌 강이었다.
산에는 나비모양이 수놓아져 있다. 봄이면 이곳 수변공원에서 나비축제가 열린다.
'함평'하면 '나비'다. 노랑나비, 호랑나비, 흰나비. 수없이 많은 종류의 나비들이 훨훨 날아다닌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갖다대면 날아가 버린다.
한 마리가 날아가질 않기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날개를 활짝 펴기를 기다렸더니, 이 나비 쉴 새 없이 날개를 폈다 접었다 반복한다. 이거다. 행여 자신을 해칠까 긴장하면서 빨리 날을 준비를 하는 것. 나비의 본능적인 감각이다.
돌머리 해수욕장 가는 길에는 배추걷이가 한창이었다. 지리하게 이어진 비 때문에 금추가 되어버린 배추. 값이 비싸서 그런가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움직임이 한결 활기차 보였다.
돌머리 해수욕장은 다른 해수욕장과 달랐다. 밀물과 썰물을 가려서 물이 들어오거나 매일 물이 해안 가득 밀려와 있는 다른 해수욕장과 달리 저수조를 만들어 물을 가둬 놓은 해수욕장이었다. 그 대신 갯벌 생태 체험도 같이 한다고 한다.
함평에는 해수욕장이 두 곳이었다. 돌머리 해수욕장과 안악해수욕장. 그리고 두 곳 다 같은 방식이었다. 보통 서해안이라고 해도 해안가가 몽돌이나 모래 아니면 뻘로 되어 있는데, 이곳은 날카로운 자갈돌로 되어 있어 인위적으로 이런 방식을 이용한 것 같았다.
멀리 마을이 보였다. 우리는 성급한 마음에 영광이 아닌가 했는데, 거기는 불온면이란다. 바로 안악해수욕장이 있는. 바닷물 사이에 기다란 섬이 형성도 있고 여인네들이 뭔가를 부지런히 채취하고 있었다. 우린 바지락이나 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갯지렁이를 잡는 거란다. 낚시할 때 미끼로 쓰이는 갯지렁이도 요즘은 어촌의 큰 수입원이라고.
어릴 때 낚시하는 사촌 오빠를 따라갔다가, 낚시는 할 생각도 않고 갯지렁이만 잡는 통에 경악을 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낚시꾼이 잡아서 하는 게 아니라 잡아 놓은 것을 사서 하는 모양이었다.
추석 전이라 그런지 대체로 들뜬 분위기. 돌머리해수욕장에 민박을 잡았다. 숙박비는 3만원. 철 지난 바닷가는 여러모로 좋다. 한창 열병을 앓았던 곳이라 바다도 쉬고 우리도 쉴 수 있어 좋고, 우리를 맞이하는 바닷가 사람들이 친절해서 좋고. 또 민박이나 다른 비용들이 적게 드는데다 손쉽게 이용할 수 있어 좋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21일에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