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절을 찾을까. 절을 찾는 마음은 구도의 염원만은 아닐 것이다. 불교를 믿거나 안 믿거나, 대개 좋은 경개(景槪)를 찾아 그곳에서 마음의 절 한 채를 만나기 위함일 터다. 무릇 절이란 크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자그마한 암자를 주로 찾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보아도, 사원은 신과 인간의 수직의 교신이 절실하게 닿을 때, 신도들이 줄을 잇고, 이에 알려진 절이름만으로도 수려한 풍경처럼 절로 찾게 된다면, 해월정사는 이에 해당할 것이다.
'해월정사'라는 절 이름은 성철스님께서 직접 지으셨다고 한다. 넓은 푸른 해운대의 바다와 해운대의 아름다운 달빛의 불지를 의미한다고 해서 해월정사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성철스님은 입적하셨지만 여전히 짙게 남아있는 생전의 흔적을 찾아 많은 신자들과 관광객들이 찾는 해운대의 명소로 꼽는다. 생전 성철 스님이 해운정사에 남긴 여러 메모와 논문, 일기 등 무려 300여점의 친필 유고(遺稿) 모음과 스님의 유품을 모시기 위한 봉훈관은 이제 거의 완공 단계에 있다.
살아 계셨을 때 성철스님과 만나기 위해서는 그 누구든 부처님께 삼천배를 해야 했다고 한다. 모 재벌 회장이 삼천배를 하고 성철 스님을 만났다고 하고,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성철 스님께 화두를 배우기 위해 부처님께 삼천배를 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얼마나 스님의 내공이 깊었으면, 다른 종교인들이 우러러 존경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철스님을 한번 만나기 위해, 부처님께 절을 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는 일화가 숱할까. 가신 지 오래지만 그 흔적이라도 가까이 하기 위해, 해월정사를 찾는 이들을 위해 산문은, 바다처럼 활짝 열려 있다.
원각이 보조하니 적과 멸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아아, 시회대중은 알겠노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스님'의 <법문>전문
성철스님의 유고 모음들은 대부분, 스님이 해우소(解憂所)에서 갑자기 떠오른 단상을 휴지, 달력, 종이 뒤쪽에 적어놓은 글이나 불교 경전에 대한 소개, 한국 불교에 대한 개인적 고뇌를 적은 내용들이다. 성철 스님의 맏상좌였던 천제 스님께서는 매달 음력 초사흘 법회에서 성철 스님의 메모를 한 장씩 복사해 신도들에게 나눠주며 법회를 2년 가까이 열고 있다. 이 때문에 신도들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법회에 참석한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의 소리에 이끌려, 법당 안으로 들어가 성철 스님 사진 앞에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다. 고개를 숙이는 것보다 엎드려 절을 할 때 우리는 비로소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오만했던 이기심과 물질의 욕망에 점점 마음의 눈이 침침해져 자신이 누구인가를 잊고 사는 삶에서 벗어나 잠시 절 마당의 거울처럼 환한 연못을 들여다본다. 수십 마리의 비단 잉어들이 물비늘을 반짝이며, 그 누구도 서로 길을 막지 않고 잘 비켜주며 각자의 길을 유영한다.
해월정사는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파란 잉크 수 만 수 천 병을 바다에 풀어 놓은 듯 눈이 부신 청사포 바다를 절마당으로 한 명당이다. 이 곳은 성철 스님 때문에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아는 이보다는 모르는 이들이 더 많지 않을까. 작고 아담한 암자처럼 보이지만, 한때 성철스님이 머문 자리의 서광이, 가만히 앉아서 천리향처럼 많은 불자들을 오늘도 부른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들을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치고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도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데 둥근 수레바퀴 붉음을 내뱉으며 푸른산에 걸렸다. '성철스님'의 <임종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