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덕택에 이른 새벽 눈을 떴다. 모기 잡는 소리에 덩달아 깬 아내가, 일어난 김에 노무현 대통령 방북 길 환송을 가자고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새벽에 일어나는 걸 원체 두려워(?) 하는 족속이라 가당찮다고 생각하며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자꾸 이런저런 생각이 똬리를 튼다. 지하철 가판, '황색저널'(신문 색깔이 노랗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문화일보> 1면에 또박또박 적어놓은 "한나라 '순진한 민족주의' 우려"라는 굵은 글씨가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머리기사 바로 하단 '노 정권' 어쩌고저쩌고…. 정상회담 가는 노 대통령 뒤로 찬물을 확 끼얹는 심보다.
그런데 갑자기, 이른 새벽 일어나 교회 가시던 어머니 모습은 왜 아른거리던지. 한반도 평화의 든든한 건널목을 세우는 뜻 깊은 순간에 나는 어떤 자세로 있어야 할까. 왜 저리도 무심하고 험악한 말들이 쏟아져야 할까. 그래,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자.
결심한 이상, 행동으로 옮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함께 활동하고 있는 생명평화연대 단체 회원들 몇몇이 환송 가자고 바람을 잡은 탓이다. 문제는 곤히 자고 있는 세 살짜리 아들 녀석. 하지만 그것이 문제랴. 잘 찍은 사진 한 장이면, 아이는 이날을 두고두고 기념하리라.
강북구 수유동에서 광화문까지는 1시간 남짓. 오전 7시 30분경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거리를 메우고 있어야 할 '꽃 분홍 물결의 환송인파'는 보이질 않는다. '우리가 뭔가를 잘못 안 걸까.'
아니다. 이미 많은 수의 전경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리를 잘못 잡은 건 아닌가 보다. 누군가 준비한 DMB를 꺼낸다. 출발 풍경이 실시간 보도된다. 청와대 출발시각은 대략 오전 8시. 하지만 썰렁하다. 과거 '전모시기 대통령'의 외국 순방 길에 늘어선 울긋불긋한 환송인파를 떠올렸다면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던 건지.
때마침 커다란 현수막과 함께 50여 명의 사람들이 경복궁 앞 삼거리 쪽으로 이동해왔다. 현수막 아래 켠 '참여정부평가포럼'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노란색 물결이다. 다행인지 그렇지 않은 건 지 잘 모르겠다.
'우리의 소원 통일이, 한반도 평화체제'가 언제부터 노무현 대통령과 노사모의 전유물이 된 건가. '참정평' 사람들, 그들이라면 나올 수 있는데,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는데, 어쩌다가 그들만의 잔치인 듯 상황이 왜곡되는 것일까. 우리 민족의 통일을 꿈꾸는 이들, 오늘 아침 그들은 어디서 기도하고 있는 걸까.
너무나 차분한 아침 풍경이 무척이나 아쉽다. 이른 아침에 출발하다 보니, 특별한 이벤트 없이 차분하게 올라가는 모습이 민주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일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국가주의에 너무 경도된 걸까. 그것도 아니면 한번 새벽에 일어나서 나갔다고 우월감에 빠져 이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반도 평화의 길목. 불철주야 글을 써대며 굵은 헤드라인으로 남북정상회담의 가치를 폄하하는 이들이 지금 이 시점에 유독 강조하는 자세가 있다. 바로 '침착'이다. 한나라당, 보수언론, 우익 단체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한 주문이다. 대통령과 온 국민을 향해 훈계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오늘이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방방 대는 형국을 지긋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훈계나 하고 있어야 하는 땐가. 과연 그러한가. 전략 따 짜서, 노트북 싸들고 가는 떠나는 국가대표 선수를 위해 굳이 할 일이 있다면 기도 외에 뭐가 또 있을까.
평양 가는 길을 함께 떠나 보낸 좋은 친구들이 있어 그리 서럽지만은 않았다. 한반도기를 함께 흔들었던 아들 녀석이 있어 내일이 마냥 위태롭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무한히 펼쳐질 한반도 평화를 기대하며 마냥 흥분하고 기뻐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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