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좀 과장되게 말한다면 이제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두가 서울특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사는 대전에서 서울역까지 가는데 단 5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서울 시내 변두리에 사는 사람이 서울역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훨씬 빠르다. 하지만 편리하다는 것 하나로 세상사를 다 아우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산이 아닐 수 없다.
서울이 제 외연을 점점 넓혀올수록 내 가슴은 점점 답답해진다. 평야지대를 가로지르는 고속철도, 높은 교각 위에 세워진 고속도로들. 그저 가만히 서서 풍경 좀 바라보자는 것 뿐인데 왜 이다지도 거치적거리는 게 많은가. 거치적거리는 것 없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어디 없는가.
오늘은 개천절이다. 지난 일요일에 가려다가 비 때문에 미룬 속리산 산행을 하려고 새벽 일찍 집을 나선다. 날씨가 잔뜩 흐리다. 어쩌면 비가 올는지도 모르겠다. 오전 7시, 속리산 법주사는 아직 고요하다. 잠시 법주사와 동암에 들렸다가 등산로로 나와 산행을 서두른다. 아까와는 달리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졌다. 두 곳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했나 보다.
우선 문장대를 목표로 삼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법주사에서 문장대까진 약 7km. 세조가 몸에 난 종기를 고쳤다는 목욕소 근처에서 딸을 목마 태우고 가는 아빠를 본다. 경기도 일산에서 온 분이라는데 딸은 이제 다섯 살이라고 한다. 참 보기 좋은 모습이다. 이 광경을 보고 아이 아빠에게 "힘들지 않느냐?"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랑에 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 무게를 초월하는 사랑이 힘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목욕소를 지나자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오르면 천황봉과 상환암으로 가는 길이요, 왼쪽으로 오르면 복천암을 거쳐 문장대로 가는 길이다. 주저없이 문장대로 가는 길을 택한다.
산길을 조금 올라가자, '이 뭣꼬?'라는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는 아직도 화두를 깨치지 못했는가. 15년 전 화두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복천암을 들렀다 나온다. 아까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늘었다. 앞에도 사람, 뒤에도 사람이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이 유난히 많은 듯하다.
숨이 차서 할딱거린다는 '할딱재"에 이른다. 본래 이름인 보현재보다 얼마나 더 정감있는 이름인가. 양철지붕으로 된 휴게소가 길손을 기다리고 있다. 허름한 옛 주막의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웬 총각이 다가오더니 아주 작은 조랑박에 든 술을 내밀며 한 번 맛보라고 한다. 하도 권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받아 마셨다. 솔잎으로 담근 술이라는데 맛이 그만이다. 소주 한 잔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양이지만 금세 양볼이 달아 오른다.
문장대를 800여m가량 남겨둔 지점에서 아까 목마를 태우고 오던 부녀를 다시 만난다. 중사자암에 들러서 스님과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지체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이다. 아이는 이젠 제 발로 산을 오르고 있다. 문장대가 얼마 남지 않은 탓인지 사람들이 점점 빨리 걷기 시작한다.
낮 12시. 드디어 문장대가 바라다 보이는 고개 마루에 올라선다. 경상북도와 충청북도가 다툼없이 만나는 지점이다. 문장대휴게소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사람들이 앉아 있다. 라면을 시켜놓고 기다리는 사람들, 집에서 가져온 점심을 들기 위해 펼쳐놓는 사람들…. 다양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의 군상이 바위에다 울긋불긋 꽃을 피운다. 이곳에서 먹는 라면 맛은 무슨 맛일까. 물어보나 마나 '쥑이는' 맛일 테지.
사람들을 뒤로 하고 문장대를 향해 간다. 눈들어 올려다 보는 문장대가 아찔하다. 문장대 자체의 높이만 1000m가 넘는다고 한다. 미끌어질세라 조심조심 철제계단을 올라간다. 송대관이 그랬던가. "인생은 세 박자"라고. 인생만이 세 박자가 아니라 계단도 한 번에 오르는 계단은 없다. 한 번 꺾어지고, 또 한 번 꺾어지고, 세 번을 꺾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문장대에 오른다.
문장대의 높이는 1054m. 아깝게 4m 차이로 천황봉에 정상 자리를 내주었다. 바위 군데군데 웅덩이가 움푹 파여 있고, 그 안엔 물이 가득 고여 있다. 산 아래를 굽어본다. 왼쪽 가까이엔 관음봉이 있고 오른쪽엔 신선대와 입석대가 있다. 그 중간엔 상주 화북으로 뻗은 봉우리들이 내려가고 있고. 참으로 절경이다.
속세를 떠난다는 말을 곧이 곧대로 해석한다면 사람 사는 세상을 등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말의 속뜻을 살피면 시방 자신이 있는 곳이 '절경'이라는 것을 에둘러 말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머물고 싶지만 자리가 너무 비좁다.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 격을 달리 했을 뿐이지 이곳 역시 의심할 바 없는 속세의 한 귀퉁이다.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와야 하는 이치에 따라 천천히 문장대를 내려온다.
문장대를 내려와 천왕봉(1058m)을 목표로 삼고 길을 간다. 신선대- 입석대- 비로봉-천왕봉으로 이어지는 3.5km가량 되는 거리다. 걸어가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문장대를 바라본다. 줄지어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슬아슬하다.
구절초, 쑥부쟁이, 참산부추 등의 들꽃이 이따금 고개를 내민다. 법주사에서 문장대에 이르는 구간에는 금강소나무, 상수리나무 등 덩치 큰 수종들이 많아 저런 들꽃을 구경하지 못했다. 높은 곳까지 올라온 작살나무와 아직 열매가 푸르스름한 쥐똥나무도 모습을 드러낸다.
신선대 근처에서 제법 멋들어진 암봉을 만난다. 지리산 연하봉을 연상시키는 풍경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지리산에나 가볼까. 확 트인 자리에서 산을 조망하고 싶어 잠시 길을 벗어나 오른쪽에 있는 작은 봉우리로 올라간다. 저 멀리 입석대가 보인다. 바위가 마치 세로로 길게 세운 비(碑) 같다. 어떻게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과 온갖 풍파를 견디고 저렇듯 꼿꼿하게 서 있을까.
신선대(1016m)라고 쓰여진 표지석이 세워진 자리엔 휴게소가 들어 앉아있다. 신선이 막걸리 마시던 곳을 확장한 것인가. 이런 높은 봉우리까지 휴게소가 들어서 있다니. 자리를 잡고 앉아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 천황봉을 향해 간다. 조금 더 가자, 아기자기하게 생긴 , 비로봉 봉우리와 우뚝 솟아오른 천황봉이 바라다 보인다. 3거리에 도착하자, 친절한 이정표 씨가 나와서 당신은 문장대로부터 1.3km를 걸어서 예까지 왔노라고 일러준다. 이정표 씨는 →천횡봉 2.5km, ↓경업대 0.4km라고 부연 설명까지 아끼지 않는다.
경업대로 가는 길을 따라 6.2km가량 아래로 내려가면 법주사에 이른다. 문장대 근처에서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행을 함께 했던 대구에서 오셨다는 노인 양반 내외는 이쯤에서 그만 하산하시겠다고 한다.
조릿대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어간다. 댓잎이 살갗을 스친다. 이런 경우 내가 더 간지러울까, 댓잎이 더 간지러울까. 올랐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능선길이 한 동안 계속된다. 이정표씨가 또 나타나서 이젠 천황봉까지 0.8km밖에 남지 않았다고 알려준다.
이정표 가까운 곳에 석문이 기다리고 있다. 제법 어두컴컴한 석문을 지나 밖으로 나온다. 지리산 천왕봉 직전에도 통천문이란 석문이 있다. 고귀한 곳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 같은 것인가 보다.
다시 3거리다. 천왕봉까지는 남은 거리는 불과 600m. 아직 오후 4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몹시 흐린 날씨 탓에 어두컴컴하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이쯤에서 법주사로 내려가기로 한다.
다문천왕에게 비파 한 곡조를 청하건만
상고암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샛길을 타고 오른쪽으로 조금 들어가자 아담한 암자가 길손을 기다리고 있다. 머리 위에 비로봉을 이고 있다. 약간 높은 곳에 있는 영산전과 산신각을 거쳐 아래로 내려오는데 스님이 먼저 말을 건넨다. 산신각에서 조금 더 가면 전망대가 있는데 경치가 기가 막히게 좋다며 한 번 가보라고 권한다.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가 산신각에서 왼쪽으로 조금 더 가자, 스테인리스 난간이 반짝거리는 전망대가 있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나 보다. 전망대 위로 올라서자, 관음봉에서 비로봉까지 속리산 봉우리들이 한 눈에 쏙 들어온다. 가히 속리산 최고의 전망처라 할만 하다. 문장대에서의 조망과는 달리 봉우리들이 손에 닿을 듯하다.
날아오르라, 내 무거운 존재여. 넋이여. 한 올의 깃털같이 저 봉우리 위로 둥둥. 눈앞에 장엄하게 펼쳐진 수십 폭 산수화 병풍. 저 산수화 속을 다 거쳐 이곳에 이른 나라는 존재가 우화승천하는 듯한 기분이다. 정말 바빠서 속리산을 샅샅이 구경할 시간이 없다면 이곳에 올라 저 봉우리들을 잠시 바라보다 내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법주사로 내려가는산길로 돌아온다. 등산객 사이에서 아이 하나가 울면서 내려오고 있다. 아까 보았던 아이 가운데 하나다. 아마도 다리가 아파서 우는 모양이다. 아이야, 울음 울지 않으면 세상은 네게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 법이란다. 사람은 누구나 울음으로써 세상을 배우는 거란다.
오후 6시. 법주사에 도칙했다. 그냥 갈까, 하다가 뭔가 아쉬워 다시 법주사 경내로 들어선다. 이 시간이면 사천왕문에 계신 다문천왕이 연주하는 비파 소리 몇 소절을 얻어 들을 수 있을까. 노래를 청하는 내게 무정한 다문천왕은 일절 대꾸하지 않고, 대신 천왕문 안쪽에 자리한 커다란 어둠이 자꾸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어서 속세로 돌아가라고, 거기서부터 삶 속으로 가는 여행을 또 다시 시작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