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순연, 올해 칠순을 맞이하는 저희 어머니입니다. 당시의 다른 여느 어머님들처럼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는 못했지만 별 특별할 것 없는 집안의 마음씨만 좋은 남자한테 시집을 와서는 평생 고생만 하였지요. 그래도 3년전에 돌아가신 아버님 애기할 때면 아직도 눈물을 흘리시고 ‘좋은 사람 만나서40여년간그래도 행복했다’고 말씀을 하시죠. 요즘은 뒤늦게 집 앞마당에서 시작한 식당 – 대저할매국수라는 간판을 내 걸고 하는데 부산지역에 상당한 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 아주 잘되어서 당신 말씀대로 “말년에 현금 세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고 하십니다. 오늘은 신기하고도 오묘한 당신의 정치 세계에 대해 소개를 해 보고자 합니다. 참고로 저의 집은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에 위치하고 있고 저는 현재 미국 아이다호 주에 거주하고 있으며 어머님과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은 통화를 하고 있습니다. 부산시 강서구는 최근 10여년간의 한국 정치일정을 돌아보면 아주 민감하고도 정치적 변화를 주도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느닷없이 저희 어머님의 그간 10년간의 정치적 선택에 대해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이 제게 던진 이 강렬한 메세지 때문입니다. “내가 찍은 놈(?)은 무조건 다 된다.” 뻔할 것 같은 2007 대선, 그러나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가 지적한대로 우리 국민은 심심한 대선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과연 저희 어머님은 어떤 선택을 하실지 참 궁금했습니다.
사실은 어머님이 정치가 그렇게 관심이 있는지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마 그냥 먹고 살기 바쁘신 어머님이 당연히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무시를 한 것이 보다 정확할 것 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정치적 메세지를 들은 것은 1992년 대선때입니다. 당시는 신한국당의 김영삼 후보와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겨루던 때였습니다. 저는 그 당시 군 복무 중이었는데 12월 어느날 부대에서 전화를 했는데 그 당시 어머님이 저에게 처음 하신말은 잘 지내느냐는 등 그런 말이 아니라, “김영샘이 찍었제?” 였습니다. 어떻게 군 부재자 투표자 진행중 이었다는 것을 아셨는지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아니 강요를 하시더군요. 당시 저는 대대 본부에서 작전병으로 근무를 하면서 선거 요원도 했는데 분위기는 어쩔수 없이 여당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뭐 그랬습니다. 아주 고령의 선임상사가 투표장에서 정말 어설프게 ‘하늘에 해도 하나 달도 하나 기호도 일번’을 외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신도 지역감정이라는 한국 정치의 오랜된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었죠. 그러나 어머님의 강력한 정치적 활동 (?)에도 불구하고 전 그 당시 김대중 후보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5년 후 1997 대선이 왔습니다. 와신상담 끝에 다시 나온 김대중 후보가 보수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이회창 후보와 그야말로 박빙의 대결을 펼치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대학원을 다녔는데 투표 전에 간단한 가족 대화가 있었습니다. 대학 중퇴라는 고학력을 가졌던 아버님은 여전히 ‘김대중은 빨갱이, 전라도는 안돼’ 라는 당신 세대의 낡은 레퍼토리를 되내이시며 이회창 후보를 선호 하셨고 저는 여러가지로 설득을 해 보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은 “그래 준비된 자가 대통령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그렇게 고생했으면 이제 대통령도 해 볼만하다. 언제까지 지역감정에 매달릴 수는 없다” 라는 대충 이런 말씀을 하시면 김대중 지지로 돌아서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제 추측에는 당시 김대중 후보의 읍소, 마지막 기회이고 그동안 많이 준비했으니 한번만 밀어달라는 호소가 저희 어머님과 같은 경상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선거 결과기 나오던 날 어머님은 환한 얼굴로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즐기는 분위기였던 반면, 아버님은 그냥 뒷마당에서 담배 한대로 위로를 하시더군요. 다음의 어머님의 정치적 선택은 대선이 아니라 2000년 국회의원 선거였습니다. 당시 종로구 국회의원이었던 노무현은 과감하게 다시 부산 강서구로 내려와서 지역감정과 정면대결을 했습니다. 모든 언론이 이번에는 노무현이 된다라고 전망을 했지만 투표일 며칠 전에 발표된 남북 정상회담의 역풍과 함께 다시한번 노무현은 지역감정의 벽에 좌절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온라인 상에서 ‘바보 노무현’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와 격려는 ‘노사모’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라는 한국 정치 사상 초유의 정치인 팬클럽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이것이 원동력이 되어서 노무현은 2002년 대통령에 당선이 됩니다. 저희 어머님도 그 당시엔 어쩔수 없었는지, 아니면 저도 유학중이라서 마땅한 정치적 대화 상대가 없었던지 당시의 한나라당 후보 (허태열)을 찍어셨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다시 한번 정치적 승부수가 2002년 대선에 저희 가족에 다가왔습니다. 물론 아버님은 다시한번 권토중래를 위해 이회창 후보를 선호하셨지만 저는 당시 노사모 회원은 아니었지만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적어도 한국 정치의 새로은 지평과 방향을 유도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인식하에 나름대로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전화로 아버님을 설득하는 것은 그야말로 포기한 상태였고, 누구를 찍는 것이 너희들에게-아니 사위에게- 나은 것이야고 순진하게 물으시는 장모님과는 달리 어머님은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노무현 후보를 찍겠다고 제가 물어 보기도 전에 애기를 하시더군요. 당신 왈,” 항상 잘난 놈(?)만 대통령해선 되겠느냐..노무현 같은 사람도 (대통령)이 되어서 확 바꿔야 한다’라고.. 그야말로 당신의 한표로 변화와 혁신을 한국 사회에 강력하게 요구 하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 아들아 걱정하지 마라, 내가 찍은 놈(?)은 백프로 된다.” 당신이 하신 말씀대로 그야말로 백전백승이었습니다. 이제 2007년 대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어머님의 이번의 정치적 선택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가 어머님을 설득하거나 또는 특정후보를 위한 강요(?)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동안 저는 이미 어머님 정치적 판단을 충분하게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삼주전에 제가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누구에게 당신의 정치적 지지를 주겠냐교.. 당신 왈 , “글쎄다..(이)맹박이가 좋긴한데..운하가 좀 걸리고.. 강원도 지사했다는 – 좀 햇갈리는 것 같습니다- (손)학규도 생각이 있고.. 시간이 있으니 이제 좀 찬찬히 봐야제” 하시는 겁니다. 제가 이주 전에 그냥 어머님께 좀 더 선택을 폭을 넗히기 위해 넌지시 물었습니다. 문국현이라고 아냐고…당신 왈 “그게 눈데 (누군데)” 였습니다. 제 생각엔, 어머님은 이병막 후보가 대세이고 좋긴한데 운하 공약이 맘에 안들고 손학교 후보는 좋기는 한데 딱히 왜 찍어야 되는 모르겠고..그리고 여권 장외후보라고 하는 문국현 후보는 낮은 인지도를 반영하듯이 아직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었던 거죠. 저번주에 아들이 관심을 가지는 후보에 대해서 몰랐던 것이 좀 머쓱했던지 어머님이 전화를 해 주시더군요. 문국현 후보가 나오는 인터뷰를 봤는데 사람이 차분해 보이고 좋더라고 –이거 캠프에서 고민하고 있는 교장선생님 이미지 아닌가요??? 이제 두달 조금 더 남은 2007 대선. 특히 이번 대선은 다가오는 남북 화해 시대와 그야말로 선진국으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더 중요한 정치적 장이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어머님의 정치적인 마인드를 얻는자가 이번 대권을 거머질것이다”라고 제가 주장을 하면 너무 허황된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지난 한국 정치적의 10년의 격변기에 어머님은 나름대로 정확한 판단으로 한국 정치의 흐름과 변화를 주도한 한명의 정치권 권리자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어머님같은 분들을 설득하는 것이 이번 대선 승리의 필승요인이라고 확신합니다. 아직 선택을 하지못한 대한민국의 평범한 유권자들을 위해 대통령후보자님들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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