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개천절! 모든 샐러리맨이 그러하듯이 국경일이라는 생각보다는 하루 더 쉬는 그저 그런 빨간날이라는 사실이 먼저 와 닿는 것이 사실이었다. 모처럼 게으름을 피려고 폼을 잡는데 아내가 하는 말이,
“오늘 현수 축구시합 나간데… 대림역 근처에 있는 학교에 9시 30분까지 데리고 오래.” “뭐?” 모든 나의 게으름 스케줄이 아작이 나는 순간이었다. 아들 현수가 유소년 축구대회에 나간다는 것인데 아빠로서는 반가울리 없었다. 그래도 어찌하랴 아빠 의무를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옷을 주섬 주섬 챙기고 나와야 했다. 현수는 그저 신났다.
나오는데 비가 부슬 부슬 오는 것을 보고 내심 오늘 시합 취소 안되나 하는 약간의 기대를해 보았다. 그러나 주차장을 빠져나와 자유로를 달릴때까지 취소한다는 연락은 없고 오히려 비가 멈추는 것이 아닌가?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휴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차자 많지 않아 거리는 한산했고 얼마 걸리지 않아 대회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는 길에 배가 고플까 바나나 사먹이고 빵 먹이고 우유 먹이고 그래도 힘내라고 열심히 먹으면서 왔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일반적인 맨 땅 운동장일 줄 알았는데 인조잔디가 쫘~ 악 깔린 아주 깔끔한 곳이었다. 요즘 초등학교와 중학교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깔아준다고 하는데 이 학교도 혜택을 본 것 같다. 벌써 많은 유소년 클럽 축구팀과 응원 나온 엄마들이 바글 바글 했다.
같이 유소년 클럽에 보내는 엄마 아빠들과 안면이 있어 서로 인사하고 감독님과 코치님과도 인사를 했다. 10시부터 경기가 시작된다고 한다. 아들을 유소년 축구 클럽에 보내고 이런 대회에 나가 본 것은 처음이다. 아빠가 축구광이다 보니 아들 놈도 일요일마다 아빠를 따라 조기 축구회에 나가면서 축구를 무척 좋아하게 만들어 버렸다.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가자고 꼬시는 엄마의 방패막이로 아들을 내세운 것이 아주 성공적인 작전이었다. 아들이 축구를 하고 싶다는데 막을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하하하! 예선은 전후반 없이 10분 경기가 진행된다고 한다. 일반 운동장을 네 곳으로 나눠 1학년 시합을 시작했다. 현수가 속해 있는 유소년팀은 이러한 대회에 처녀 출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처녀 출전이라 아이들이 주눅이 들지 않을까 다소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할 것이라고 믿고 첫 경기를 하는데 상대를 보니 우리 아들 놈이 속해 있는 클럽보다 덩치도 크고 도저히 1학년이라고 볼 수 없는 아이들이 나오는 것이다.
어째든 경기가 시작되고 시작한지 2분도 안돼 덩치가 산만한 상대편 선수가 롱~슛을 했고 어이없이 한 골을 먹었다.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경기가 진행되었고 생각보다는 팽팽한 경기였으나 결국 한 골을 더 먹고 2:0으로 지고 말았다. 그래도 잘했다고 등 두드려 주면서 다음 경기에서 잘하면 된다고 격려를 했지만 응원하는 엄마나 아빠들은 왠지 서운했다. 상대팀은 아주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오 것 같았다. 코치도 무척 무섭게 아이들을 다그쳤다. 반면 우리 팀은 아이들이 하는 대로 지켜보고 그저 열심히 뛰라고만 한다. 뭐라고 작전지시도 하고 그랬으면 좋으련만 천하태평이다. 내가라도 나서서 소리를 지르고 작전을 지시하고 싶었다.
다음 경기를 위해 작전판을 가지고 코치가 열심히 작전을 지시하고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라고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이리 저리 뭉쳐 다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선수가 부족해서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동생도 끼워 넣었는데 공은 안차고 딴짓만 하고 있어도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두번째 경기도 1:0, 세번째 경기도 1:0으로 3전 전패로 예선 탈락! 서운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뛰어 준 아들들에게 잘 했다고 격려를 해주었다. 어떤 엄마는 한 골도 못 넣고 무슨 물을 먹느냐고 밥도 먹지 말라고 억지 아니 억지를 부리면서 한 바탕 웃음 바다가 되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여기 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오고 골을 넣은 아들보다 응원하는 엄마가 더 좋아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경기에 나가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온 가족이 함성을 지르면서 하나가 되고 아이들이 열심히 뛰는 모습이 진정 이러한 대회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아들을 유소년 축구 클럽에 보내는 것은 축구 선수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가 축구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운동을 친구들과 열심히 하면서 뛰어 놀라는 의도에서 보낸 것이다. 비록 경기에서는 졌지만 진 것을 가지고 아이들을 탓해서는 안될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 혼자가 아닌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세상의 진리를 깨우친다면 처음 참가한 유소년 축구대회에서 너무나 큰 것을 배운 것이리라. 개구장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이런 예전의 CF문구가 딱 어울린 하루였다. 아빠의 게으름 작전을 파괴한 아들을 용서한다. 다만 아들! 한가지만 부탁하자!
축구를 너무 좋아하는 건 아는데 이왕 할 거면 좀 더 잘 차면 안되겠니? 아빠는 그래도 회사에서도 감독이고 조기회에서도 감독인데… 아빠 체면도 좀 세워주라…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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