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욕하는 1인 시위도 하는데, 홈에버 앞에서는 피켓 들고 서 있지도 못하나?"6일 오후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 정문 앞. 정종권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매장 안에까지 울려퍼졌다.
정 위원장이 '이랜드 그룹은 비정규직 확산을 중단하고 용역전환을 철회하며 전환배치를 중단하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펼치려 하자, 노조 집회를 막기 위해 회사가 동원한 이른바 '구사대'가 등장해 피켓을 빼앗고 갈기갈기 찢었기 때문이다.
정 위원장은 조각난 피켓을 바닥을 깔고 매장 앞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이어 "경찰은 박성수 이랜드 회장으로부터 월급을 받냐"고 목청을 높였다. 구사대의 '횡포'를 제지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경찰을 꼬집은 것이다.
사실 이 날은 지난 6월 말부터 7월에 걸쳐 진행된 홈에버 월드컵몰점 점거투쟁 돌입 100일 째를 맞는 날이다. 정 위원장으로부터 100여m 떨어진 곳에서는 이랜드·홈에버 비정규직, 민주노총 노조원 등 300여명은이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이랜드 그룹을 규탄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었다.
상시적인 구사대의 횡포..."구사대가 나오면 경찰이 사라진다"사실 구사대의 횡포는 이날만 있었던 문제가 아니다. 용역 및 회사 직원들로 구성된 구사대는 이랜드 유통매장 앞 집회 때마다 등장해 위압감을 조성했다.
때로는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그동안 집회에 참석했던 일부 이랜드·홈에버 노조원과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이들에게 부상을 입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 인터넷 매체 기자가 구사대로부터 폭행을 당해 사측으로부터 200여 만원의 합의금을 제안받기도 했다.
이날도 어김이 없었다. 하얀 셔츠와 까만 양복 바지를 차려입고, 얼굴에는 하얀 마스크를 쓴 구사대 20여명이 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매장 밖에 나와있었다.
구사대는 집회 장소인 월드컵경기장 역 입구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전의경 차량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우리 일터 내가 지킨다" "홈에버 정상영업합니다" "불법 영업 방해 즉각 중단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거머쥐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정종권 위원장에 앞서 민노당 서울시당의 이상규 사무처장의 1인시위도 막고 이들을 추방했다.
이상규 사무처장은 "(노조가 아닌) 민노당이 나서면 함부로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역시 구사대는 백주 대낮에 폭력을 스스럼없이 휘둘렀다"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의 화살은 경찰을 향했다. 그는 "1인 시위를 할 때 곁에 전의경을 제외한 경찰관이 3명이나 있었는데도 누구 하나 구사대를 말리지 않더라"면서 "오히려 구사대가 나오자 자취를 감추었다"고 토로했다.
또 이 사무처장은 "경찰이 중립을 지키지 못해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조원이 매장을 점거하고 사측에 맞서는 것은 합법적인 파업권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이를 경찰이 막고 있기 때문에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고 뒷받침했다. "매장이 운영되는 데 자본을 가진 회사가 교섭에 나오겠냐"는 것.
점거돌입 100일 행사... 권영길 "비정규직 여성, 이제는 거리의 투사"
한편, 이날 저녁 7시부터 CGV 상암점 앞 광장에서는 홈에버 월드컵몰점 점거투쟁 돌입 100일을 기념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는 집회 참석자들의 장기자랑과 노래공연, 그리고 비정규직·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사는 내용을 담은 연극이 펼쳐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권영길 민노당 대선후보는 "처음 주먹을 올리지도 못했던 여성들이 지금은 거리의 투사가 되었다"면서 "노동자의 힘찬 모습은 반갑지만 거리의 투사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착잡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날 해남에서 서울로 온 정광훈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도 "노동자는 사람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며 "서럽게 투쟁하면 안 된다, 웃으면 행복하게 투쟁하라"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