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래,왜 그래.숨이 안 쉬어져? 어디가 아파?"일요일 아침(7일), 목욕을 하고 돌아온 남편이 울며 뒹구는 나를 안아 일으키며 어쩔 줄을 모릅니다. 나는 도리질을 하며 쉰 목소리로 꺼이꺼이 울어 제꼈습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멈춰지지 않는 통곡을 해버렸습니다.
"하이참,이 사람 왜 이래."
겁에 질린 남편의 목소리 때문에 더 울고 싶었지만 눈물을 거두었습니다.
"나,아프지 않아. 숨도 잘 쉬어지고 컨디션도 좋아."
눈을 반짝이며 남편 코 앞에서 생글거리자 남편이 기인 한 숨을 뱉어냅니다.
평소처럼 오늘도 새벽 5시에 잠이 깨었습니다. 밖이 어둑어둑했지만 주방으로 내려와 내 먹을거리를 장만했습니다. 사과와 토마토를 씻고 양배추와 오이 당근을 썰고 버섯볶음도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 식구들이 먹을 밥쌀을 전기밥솥에 예약하고 나니 1시간 반이 후딱 흐르고 약간 피곤했습니다. 거실 소파에 앉아 밝아오는 아침을 음미하며 수고한 내게 맛있는 포도 한 송이를 선물했습니다. 포도의 시원 달콤한 과즙맛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포도를 보내준 시누이와 하루를 재워놨던 몇몇 친구들에게 새벽 기운을 담아 행복한 문자를 날렸습니다.
이렇게 행복 속에 하루가 시작되었고 남편이 목욕을 간 사이에 나는 방에서 가벼운 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쉬려고 잠시 누었습니다.갑자기 함께 운동하는 민경이 생각이 납니다. 민경이는 이제 24살 아가씨인데 폐암이 뼈로 옮아간 상태입니다. 처음 병원을 찾아간 날 우리나라 최고 폐암 권위자로부터 너무 늦었다는 말만 듣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폐와 간에 암덩이를 가지고 숨도 편히 못 쉬는 나와 민경이는 중환자 중에서도 요시찰 인물이지요.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나이값을 하느라 평상심을 많이 가지고 사는 반면 민경이는 그렇지 못하다는 정도입니다.
아마 내가 민경이 생각을 하게 된 건 내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크나큰 도움을 받고 살아가 듯이 나도 민경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민경이는 살 수 있을까? 살지도 못할 사람에게 내가 헛 공을 드리는 건 아닐까?'
자문해보니 답이 없습니다. '그렇구나! 내 깊은 마음에 민경이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구나. 야, 그렇다면 말이 안되잖아. 민경이가 살거라는 믿음도 없으면서 민경이에게 무슨 도움을 주겠다는 거야? 그런데 왜 민경이가 살 거라는 믿음을 갖지 못하지? 아하~ 내게 믿음이 없구나. 나는 반드시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아직 없구나. 그런거구나. 민경이는 너무 젊은데."
갑자기 오열이 터지며 난생처음 뒹굴며 울어제꼈습니다.
"민경아, 너는 살아야 해. 민경아,너는 살아야 해."
생각지도 않은 말이 저절로 터져나오며 몸이 마구 요동을 쳤습니다.
운동실에서 민경이를 만날 때 약간 거리감을 가졌던 건 그래도 내가 너보다 덜 심한 환자라는 생각 때문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오늘 터진 눈물은 비틀리고 막혔던 내 가슴이 살아난 거라 믿습니다. 눈물은 민경이만을 위해 흘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믿지 못한 채 세상에 벽을 느끼고 살았던 가엾은 내 영혼을 위한 위로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매일 매일 대박을 터뜨리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눈물을 흠치며 남편에게 내 생각을 말했더니 남편은 평소 버릇대로 쌩뚱맞은 소릴 합니다.
"에이~오늘 일진이 안 좋은가봐~"
"왜요?"
"목욕탕에 더 있다 올건데 어떤 놈이 술을 마셨나 봐. 어딜 가나 고약한 술 냄새 때문에 못 있겠더라구~'
"와 하하하하. 대박이다. 잘 됐다. 그렇게 잔소리 해도 내 말 안듣더니 이제 술 냄새 풍기며 출근은 안하겠네~ 생각해 봐. 아침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웠겠어."
"그러게 말이야,이 참에 술 끊어야할까봐. 술 마신 날은 다른 방에 가서 자야겠어."
"와~ 큰 숙제 하나 풀었다."
"그런거여? 재수 없는 날이 아니고 대박인거여? 그래 그래 대박이다 차암~'
아침부터 맥없이 한바탕 통곡을 했더니 배가 고팠습니다.
"아침 먹으러 갑시다."
아래층에 내려오니 늦잠꾸러기 아들, 딸이 웬일로 얼쩡거리고 있네요.
9월에 대학을 졸업한 딸 입에서 툭 터져 나오는 말 또한 대박입니다.
"엄마, 일요일 날 4식구 같이 아침 먹는 거 참 오랫만이다.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