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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출판계는 <000시리즈>를 자주 내놓는다. 대부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참고서와 교육용이다. 어른들을 대상한 한 시리지물은 범우사에서 <범우문고>가 있다. <범우문고>는 이미 200권을 넘어섰다. 시공사의 <시공디스커버리총서>가 100권을 넘어선지 오래되었고, 도서출판 살림에서 <살림지식총서>가 이번에 300권을 넘었다. 문고판이지만 우리나라에도 100권 200권 300권이 넘는 시리즈 물이 나온다는 것은 출판과 책 읽는 문화를 위해서는 매우 좋은 일이다.  책세상도 <책세상 문고 우리 시대>라는 이름으로 문고판 시리즈를 2000년에 처음 내놓았다. 탁석산씨의 <한국의 정체성>이 첫번째 책이다.

 

'정체성' 대학 다닐 때 자주 사용했던 말이다. 하지만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받게 될 때 쉽게 답변할 수 없는 주제다. 우리는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용어를 말함에 있어서 개념을 명확히 하는데 매우 정확하지 못하다. 너무 쉽게 개념을 정립하고 단정한다. '정체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탁석산씨는 정체성을 무엇이라 말할까?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에 관한 고찰이다. 과연 우리는 지금 '한국적인'것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을까? 한글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도로의 간판과 방송사의 프로그램 이름, 가수들의 이름을 보면 한글로 된 이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축구와 운동경기, 한국을 나타내는 경기를 볼 때 금방 한국인이 된다. 일상생활에서는 한국적인 것을 갈수록 찾아보기 힘들지만 한 번씩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마음껏 자랑한다. 이런 혼란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체성의 문제는 전통적으로 형이상학적이었다. 탁석산의 말을 들어보자.

 

"어떤 사물이 변화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그 사물로 인식되거나 존재할 수 있다면, 즉 우리가 변화된 사물을 변화를 겪기 전의 사물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한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이것이 전통적인 정체성 문제이다. 변화를 겪으면서도 동일성이 유지된다면 그 동일성을 우리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본문 28쪽)

 

앞에서 말했던 언어 사용에 있어서 외국어가 한글을 지배하고 있다. 과연 한국인이라고 하면서 한글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는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동수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한국에서 살았지만 김동수가 먹는 것은 햄버거, 콜라, 스파케티 뿐이다. 말은 영어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너는 몸만 한국인지 다른 것은 한국인이 아니라고 해도, 김동수는 아니다. 겉으로는 그럴지 몰라다. 내적으로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나는 한국인이라 주장한다. 정체성 확립 기준을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중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이토록 정체성이란 매우 난해한 문제다.

 

탁선산은 한국인이란 개인과 한국이라는 집단의 정체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국인라고 해서 모든 한국인이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각 개인은 자신만이 가지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한국인 개인의 정체성을 한국의 집단적인 정체성의 기초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탁석산은 말한다.

 

그리고 탁석산은 한국의 정체성이란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견지한다.

 

"우리가 강대국이면서 동시에 문화적 선진국이라면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별로 없다. 모든 문화를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으므로 자기화된 모든 것을 자신의 것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약소국이다. 또한 문화적으로 후진국이다. 돈 없는 사람에게 돈이 중요하고 무지한 사람에게는 지식이 절실하듯이 약소국이며 후진국인 우리에게는 문화 교류에 미국화되지 않고 자신늘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본문 49-50쪽)

 

이 부분을 읽을 때 의문점이 들었다. 문화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기준이 무엇인지 애매한다. 사실 문화는 문명화된 것과 미개한 문화는 없다. 각자의 문화는 가장 앞선 문화이다. 가장 앞선 문화가 서로 교류하면 발전한다. 한국의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후진국, 약소국이기에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의 정체성>은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 독자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의 정체성> 탁석산 저 | 책세상 | 2001년 12월


한국의 정체성

탁석산 지음, 책세상(2008)


태그:#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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