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물꼬를 다시 5·18로 돌렸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김상봉은 5·18에 대한 사회과학적 담론이나 철학적 논의에 대해 비판을 가하면서, 광주의 철학화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5·18의 철학적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는 5·18 당시에 광주민중들이 실현했던 공동체의 성격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이념형으로서의 '참된 나라'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 그는 세 가지 '상징'을 거론했다. 피, 밥, 총... 그리고 광주 첫 번째 상징은 '피'다. "의지와 정서의 측면에서 5·18은 크게 세 가지를 얘기할 수 있다. 하나의 상징은 피를 나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헌혈이라고 하는 건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공수부대가 총질하고 씨알들이 피 흘리고 죽어가고 할 때, 피가 모라자서 너나 할 것 없이 헌혈을 했는데, 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는데, 심지어는 유흥가의 여종업원들까지 피를 뽑으러 달려왔다. 제일 먼저. 그런 얘기가 지금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데. '피를 나눈다'라고 하는 건 고통을 나누는 거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응답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상징은 '밥'이다. "그리고 그걸로 끝나지 않고 두 번째는 밥을 같이 먹었다. 광주가 고립되었을 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있던 물건도 다 자취를 감추어야 한다. 안 그런가. 쌀과 라면·건전지·기름, 모든 것들이 자취를 감추는 게 일반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광주가 본격적으로 항쟁에 들어가고 고립되기 시작을 했을 때, 어디에나 넘쳐난 게 김밥 또는 주먹밥이었다. 모두가 같이 '밥'을 먹었다. 정말로 절박하게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사람들이 도리어 이기적이 되지 않고 이타적으로 되었던 것은 정말 놀라운 역사다." 마지막 상징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총'이다. "고통을 같이 나누고, 둘째는 밥을 같이 나누고, 마지막으로 같이 싸웠다. 총을 들고 또는 수류탄 들고 같이 싸운 역사가 5·18이다. 시민공동체는 자기들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그들을 자기들을 노예화하려고 하는 모든 악의 세력에 대해서 더불어 싸운 공동체, 전사들의 공동체였다." '하늘의 나라'로 간 예수, '땅의 나라' 지킨 광주 시민들 5·18 당시 광주의 민중들은 '밥'과 '피'와 '총'을 함께 나누었다. 이 상징의 의미는 명료하다. 5·18 당시의 씨알 공동체는 서로의 고통에 응답하면서 밥을 나누었으며, 피를 나눔으로써 운명을 공유했고, 총을 듦으로써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세력에 저항했다. 그것은 김상봉이 말하는 온전한 의미에서의 참된 서로주체성의 현실태, 씨알들의 '뜻으로 된 나라(이념형)'가 현실 속에 강림한 사건이었다. 그는 이 5·18 당시의 씨알공동체야말로 최정운 교수가 말한 '절대적인 공동체'의 성격을 넘어선, 동시에 우리들이 추구해야 될 국가의 참된 모델을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예수의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는 것은 엉뚱한 일일까. 예수가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죽음을 당하기 직전, 그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거행한다. 죽음 앞에서 그는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과 함께 먹으며, 이것은 내 피와 살이라고 말했다. 머지않아 로마인들이 체포하러 올 것이고,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피안의 나라로 갈 준비를 고요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5·18 당시 광주의 시민들처럼 죽음 앞에서 '총'을 들지 않았다. 그는 ‘땅의 나라’를 벗어나 '하늘의 나라'로 갈 수 있었지만, 광주의 시민들, 아니 씨알들은 총을 들고, '땅의 나라'를 사수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땅의 나라를 김상봉은 '만남의 공동체'라고 명명한다. "문자 그대로 여기서는 중요한 게 공동체다. 만남 그 자체. 아까 말씀드린 최정운 선생 경우에도 절대적 공동체가 무엇인고 하니, 개인의식이 절대공동체 안에서 아주 소멸되어 버렸다고까지 말한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5·18 당시 광주의 공동체는 만남의 공동체였다. 만남 속에서는 홀로주체성이 서로 주체성 속에서 지양된다. 그래서 도리어 확장되고 도리어 상승된다. 그래서 나로서는 개인의식, 개별자 또는 개체의식이 소멸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에서 생성되는 건 공동체다. 그 공동체 속에는 만남이 있다. 물론, 과거에도 그런 것이 있었다. 소비에트 공동체도 있고, 나름대로의 이런 것들이 있는데, 느낌이 다르다.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서가 있다. 우리가 아무리 개인주의적인 인간이 되려고 해도 될 수 없는 마지막 남는 만남에 대한 갈구라고 하는 것이 5·18 속에서 실현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 또는 만남 그리고 만남의 내적 본질로서 서로 주체성 이런 것들이 그 이전에 서양에서 홀로 주체성, 홀로 주체의 권리의 극대화, 그것의 균형과는 다른 어떤 새로운 공동체의 면모를 보여준다고 말하고 싶다. 계급투쟁의 관점에서만 5·18을 해석한다고 할 때는 본질적으로 침해당한 권리가 중심문제가 된다. 물론 5·18도 침해당한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서 싸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바탕 위에서 더 근원적인 건 만남이 더 중요한데, 그런 까닭에 때로는 자발적으로 자기 권리를 타인을 위해서 양도할 수도 있는 것이 '만남의 공동체'가 다른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엇이 먼저인가, 무엇이 마지막 심급인가라고 하는 게 광주항쟁을 통해서 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이전까지 혁명은 언제나 홀로 주체의 관점에서 언제야 내가 나를 완성하는가라는 것이 기준이었다고 한다면, 광주민중항쟁의 경우는 언제 우리는 참된 의미의 만남 속에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새롭게 제기되는 역사의 이념이었다. 나는 그걸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광주항쟁이 독보적인 것이었다고 본다." "계급 이전에 학벌... 학벌 분석 않고는 한국사회 알 수 없다"
5·18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다가, 이제는 화제를 돌려 최근 이른바 '신정아 사태'를 기화로 다시 벌어지고 있는 '학벌사회'에 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상봉은 일찍부터 학벌폐지 운동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학벌사회>라는 저작을 통해 철학적으로 분석했다. 앞에서 김상봉은 국가기구와 씨알의 전쟁상태라는 관점에서 한국의 근대사를 논의했는데, 그런 관점을 연장시키자면 학벌사회 역시 또 하나의 전쟁상태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은 국가기구와 씨알 간의 전쟁이라기보다는, 씨알간의 전쟁이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김상봉은 말한다. "국가기구와 씨알들 사이의 전쟁상태는 씨알들 내부의 전쟁상태를 반드시 조성하게 된다. 그러니까 국가기구라고 하는 것이 어떤 씨알들의 서로주체성의 현실태가 되지 못하고, 홀로주체성의 현실태가 되어버릴 경우에는 그 국가기구 내에 포획된 어떤 씨알들 사이에도 무한경쟁이 벌어진다. 무한경쟁은 당연히 전쟁이다. 룰이 없는 거니까. 그래서 그런 상태로 전환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다. 그 다음부터는 국가기구가 우리 모두를 위한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의지, 보편적인 주체성의 현실태가 되지 못하고 어떤 개별적인 홀로 주체에 의해서 전유되어버리는 거니까. 뭐겠나. 국가라고 하는 테두리 내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국가라고 하는, 어떤 국가 기구를 자기들 손아귀에 전유할 수 있을까라고 하는 걸 두고 싸우지 않겠나. 당연히 전쟁상태가 조성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런데 개인이 절대로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국가기구를 전유할 수는 없는 거고, 언제나 나름의 집단성 속에서 그것을 독점해야 되는데, 한국사회에서는 그것이 계급으로 나타나기 이전에 먼저 학벌로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 내가 <학벌사회>에서 말하고자 했던 바다." 그는 학벌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지속성과 정해진 외연이 있는 집단적 주체가 있다. 대표적인 게 학벌이라는 거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다른 모든 사회적 실체들을 조정할 수 있는, 거기에 다 개입하면서 다른 모든 사회적 실체들 또는 다른 모든 사회적 주체들과 집단적 주체들을 배후에서 조정할 수 있는 본질적인 사회적 주체가 한국사회에서는 학벌이다. 서양 사람들은 그걸 계급이라고 했다. 계급이라고 하는 어떤 집단적 주체, 계급의식으로 뭉친 집단적 주체가, 역사발전을 배후에서 생성 발전시켜 나가는 그런 요소 또는 주체라고 할 수 있다면, 이 나라에서는 그게 학벌이다. 학벌이 자본가 계급이든 노동자 계급이든, 정당 정치가 계급이든 관료 계급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학벌이 같으냐 다르냐에 따라, 오히려 더 근본적으로 규정되는 어떤 사회적 행동의 원리가 우리나라에는 있다. 학벌이라는 것을 사회과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분석하지 않고서는 한국 사회의 작동 원리를 해명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람을 자본의 노예로 키우는 학벌체계" 그는 오늘의 학벌사회가 조선후기의 가문패거리 집단인 벌열(閥閱)구조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역사를 생각해 보면, 한 사회의 모순이 가파르게 드러날 때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지배계급 내부에서, 노골적으로 관철되는 신분제와 권력독점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다. 신라시대의 골품제도(성골·진골·육두품의 한국적 카스트 구조)의 모순을 시작으로, 고려시대에는 사대부와 무인들 간의 생사를 넘어선 충돌이 벌어졌고, 그것이 조선후기에는 사대부 내부에서의 격렬한 붕당정치로 비화되어 벌열가문이 형성되었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이 가파르게 전개된 것의 결과로 나타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충격적이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국가체제/왕조체제'의 붕괴였다는 점은 지금 생각해도 자못 의미심장하다.
오늘의 학벌사회의 폐해를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이 많고, 적어도 자기 자신만큼은 이 학벌시스템에 연착륙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뒤집어 보면 학벌체제란 미래전망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한국사회의 심각한 구조적 모순의 감자뿌리다. 게다가 오늘의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 김상봉의 표현을 원용하자면 '절대자본주의' 또는 '순수자본주의(평론가 도정일은 이를 '시장전체주의'로 표현한 바 있다)'의 악무한적 토네이도 또는 쓰나미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그는 이 절대자본주의야말로 '새로운 항쟁'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절대자본주의는 이것대로 새롭게 등장한 항쟁의 대상이다. 우리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자기실현을 가로막는 새로운 지배자들이고, 새로운 항쟁의 대상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그런데 학자나 지식인들조차 아직도 민주화 또는 87년 체제의 망상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내가 전쟁상태 운운하면 '지금도 그 얘기하는 것이 너무 쌩뚱 맞은 얘기 아닌가. 아니면 너무 과격한 얘기 아닌가.' 이런 식으로 다들 섬뜩해하고 놀란다. 이제는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 다소 기만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 6월 항쟁의 성과로서 우리가 누렸던 경제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그 자유로운 삶이라고 하는 것이 이대로는 오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자본의 노예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는 그 자본에 충실한 노예가 되도록 우리를 끊임없이 세뇌하는 학벌체제 속에서 경제적으로나 또는 정신적으로나 철저히 노예화 되어버렸다 라고 하는 걸 깨닫는 게 먼저다." "코리아 경제권에 북한 들어오면 통일? 안이한 생각" 김상봉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시점은 9월 초순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아직 열리지 않은 때이긴 하지만, 통일에 대한 김상봉의 생각도 나는 알고 싶었다. 그는 최근 들어 광주민중항쟁의 철학적 탐구와 함께, 통일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절실하다는 속내를 내게 내비쳤다. 그는 철학이야말로 '보편학'이며, 통일을 경제적인 관점이나 정치적인 관점에 한정시키지 않고 '총체성'의 관점에서 사유하는 유일한 학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철학이 어떤 방식으로 통일이라고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는가 말해보자. 모든 다른 학문은 부분적인 영역에서 이것이 가장 최적의 상태라고 하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한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그것만 가지고 안 된다. 왜냐면 한 나라가 선다고 하는 것은 모든 다양한 영역에서 최적의 패러다임들이 모여, 다시 조화로운 질서 속에서 총체성을 이루어야만 되기 때문이다. 역시 그 총체성을 사유하는 학문은 철학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총체성은 어쩔 수 없이 이념 속에서, 단순히 사실의 문제뿐만 아니라 가치까지 문제가 된다. 그래서 어떤 경제제도가 통일된 한국사회에서 바람직한 경제제도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단순히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만의 몫일 수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주어진 현실의 문맥에서 다양한 종류의 경제제도와 경제체제 분석을 할 것이고, 거기에서 어떤 제도가 최적인가를 묻겠지만, 역시 주저할 수밖에 없는 건 첫 번째는 가치의 문제이고, 두 번 째는 총체성의 문제다. 그 총체성은 인간 삶의 이념형과 관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은 가치학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통일에 대한 학자들의 냉담함과 무관심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표했다. 동시에 '코리아 경제권' 운운하며 흡수통일의 시각을 은연중에 노출하는 일부 학자들의 태도를 이렇게 비판했다. "예를 들면, 흔히들 뒤통수에선 다 흡수통일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식인가 하니 경제교류 하다가 사이좋아지면 흡수통일 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북한이 붕괴되면 남한 경제로 편입되거나. 아무튼 표현은 달라도 경제를 통한 흡수통일을 기대하는 듯 하다. 이른바 넓은 의미의 코리아 경제권에 북한이 편입됨으로써 어찌어찌 통일이 되겠지 라는 안이한 생각, 그것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 독일도 힘들었다고 한다. 그 이면에서 보면 정말 그 당시 서독의 기민당은 주변 나라들에 대해 신뢰를 쌓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 다음 통일이 급물살을 탈 때, 물 밑에서는 엄청난 외교전이 있었는데, 우리 식으로 말하면 '퍼주기'가 있었다. 서독이 소련이나 주변 나라에 얼마나 많이 퍼줬는지 모른다. 한국처럼 퍼주기 싫어하는 나라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백낙청도 최장집도 비판하는 김상봉 극우파들의 '북한붕괴론' 또는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론'은 일단 논외로 치자. 그런데 김상봉이 비판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우파들의 통일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남북경협을 포함하여 자본에 의한 민간교류의 진전과 한반도 경제권의 촉진과정이 자연스럽게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령 그가 존중하는 백낙청 교수식의 낙관적인 통일에 대한 기대 역시 깊이 있는 성찰과 책임 있는 통일담론일 수는 없다고 분명하게 지적했다. 한편, 이것의 반대편에서 통일담론 자체를 오연하게 경시하는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의 시각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일침을 놓고 있다. "통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철두철미하게 분단된 두 개의 국가에 속한 씨알들이 서로의 이해·대화·소통을 통해서 합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맞다, 우리에게는 이 길밖에는 살 길이 없다'고 해서 통일이 될 때에만 통일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한반도는 영원한 매판 국가로 남게 되는 거다. 남한은 미국의 속국이고, 북한은 양쪽 눈치 보다가 어찌될지 알 수 없지만, 절대로 여기에 이등국민으로 편입되려고 하지는 않을 거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생각하지 않는다. 실명을 거론하진 않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통일을 얘기하면 비난하는데 이해를 할 수가 없다. 통일을 중요시 한다고 해서 비난하는 건 뭔가. 자기가 다른 얘길 하면 되지. 어떤 정치학자 분은 진보진영에서 통일을 너무 중요시 한다고 비난하더라. 황당한 얘기다. '통일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 말고, 저렇게 하자' 말해주면 되는 걸 통일을 중요시한다고 해서 비난 한다. 그런 도착이 있는지 모르겠다. 또, 어떤 분은 다소 안이하게 경제공동체, 여기에 너무 무게를 두고 있다. 물론, 경제공동체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건 그게 우리한테 통일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직 참되게 서로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뜻에 의해서만 통일은 만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통일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치열한 이상주의적인 열정이 실제로 이 나라에서 뿌리 내리고 현실화될 때에만 가능하다.” 북한과 남한이 서로를 '고무찬양'해야 하는 까닭
남한과 북한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남한의 나르시시즘적 '홀로주체성'의 과잉담론이 아닌, 서로의 장점과 장구한 역사적 맥락을 포용하고 신뢰하는 참다운 '서로주체성'이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지금 한국의 지식인들을 포함해서 사람들이 너무 좁게 역사를 보는 경향이 있다. 역사는 길게 보아야 되는데. 그래서 북한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서로 좀 더 잘 알아야 된다. 서로를 배워야 한다. 이게 진정한 의미에서 서로주체성을 형성해 나가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전제다. 알고 배우고 고통을 나누고 그러면서 공동의 과제에 같이 싸워나가고 더불어서 미래를 같이 고민하고 형성해나가는 과정이 그 다음 일이다. 일 단계는 서로를 알고 배우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할 수 있다면 서로 칭찬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보안법이 없어져야 한다. 고무찬양 조항이라고 하는 게 서로에 대해 칭찬하지 말라는 얘기 아닌가…(중략)…그 나라 역시 나름의 역사가 있고, 나름대로 내놓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탁월한 장점들이 있는 나라다. 그게 뭐든지 간에. 남한 역시 역사 속에 내놓을 수 있는 굉장히 훌륭한 점이 많은 거지만, 동시에 부끄러움도 많은 역사를 갖고 있지 않나. 모두 내놓고 서로의 단점은 고쳐나가고, 서로의 장점을 배워나가는 그런 과정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경제협력은 유치한 수준의 교류다. 철학자로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정신적인 교류가 필요한데, 정신적인 교류의 첫걸음은 서로를 알고 배우고 칭찬하는 거다. 그러면서 시작을 해야 한다. 그런 걸 생각하면 통일은 아직 멀었다고 봐야 한다." 서로의 체제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동의가 없는 한,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은 매우 지난한 일임에 분명하다. 동시에 남북한의 통일이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과 파장이 심각하고, 통일을 바라보는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어 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여기에 이른바 남한에서의 '북한인식론'조차 내부적으로 현격한 갈등과 편차와 낙차를 보여주고 있다. 기초적인 통일준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남한과 북한 간의 신뢰구축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며, 서로의 체제에 대한 깊은 존중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그것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남북의 지도자가 두 차례라 만나, 포도주 잔을 높이 쳐들었다고 해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국가보안법'은 남한에서 언제이든 망령처럼 현실을 옥죌 수 있는 마력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민족 간의 가장 내밀한 정신적 교류가 가능해질 수 있을까. 김상봉이 말하는 '서로주체성'의 현실태로서의 통일은 그래서 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대지의 철학, 움직이고 싸우는 자의 철학 끝으로 나는 김상봉 교수에게 철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 학자인 동시에 사회운동가로서 이론과 실천에 대한 평소의 소신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는 '선비'라는 개념과 '함석헌'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면서 긴 인터뷰를 다음과 끝마쳤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에는 지식인의 전통이라는 것이 있다. 그게 선비의 전통이라고 본다. 선비는 배우는 사람인 동시에, 비록 지배계급에 속한 사람이긴 했지만, 그 시대 나름의 틀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가 속한 나라와 사회를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개혁하기 위해서 싸우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선비들에게 ‘생각 한다’라고 하는 건 좋은 의미에서 동시에 ‘싸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게 전통사회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선비가 속한 사대부 계급 자체가 지배계급이기도 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의미에서 이건 이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그걸 제일 잘 보여주는 게 함석헌이다. 그는 일제시대 때부터 수도 없이 감옥을 들락거리면서 철학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한 때는 가장 심오한 우리시대의 철학자요, 사상가였지만, 동시에 가장 치열한 투사이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서양과는 다른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 이어져온 어떤 지식인 또는 선비의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김상봉 교수와의 인터뷰는 전남대 교수연구실에서 3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는데, 인터뷰의 전 내용은 동영상을 보시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철학자와의 대화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나는 절감했다. 그것은 철학이 추구하는 현실과 이념의 문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철학적 개념어들이 오늘 우리가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언어적 질서와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데서 오는 깨달음이었다. 철학담론 안에서 언어는 그 자체가 하나의 물질성을 가진 실체로 떠오른다. 우리가 세속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구어들은 이 철학적 대화 속에서, 자신이 돌아가야 할 거처를 잃고 방황하는 것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한 방황이고, 의미 있는 절망이다. 철학은 이 방황과 절망을 통해서 어떤 이념을 길어 올린다. 김상봉에게 그것은 '만남의 공동체'로서의 광주이고, '서로주체성'이라는 조어 속에 깃든 '씨알들'의 세계전망일 것이다. 철학자는 사유하는 자이자, 움직이는 자이고, 싸우는 자이자, 응답하는 자다. 김상봉의 철학은 이 모든 움직임의 과정 속에서 나오는 '대지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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