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 있는 '이스트 이즈 이스트(East is East)'는 아프가니스탄 두 자매가 운영하는 음식점이다.
포장한 음식을 가져갈 수 있는 창구가 큰길가로 나 있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10개 정도의 식탁이 다닥다닥 놓여있다. 페르시안 카펫풍의 커튼을 들치고 뒤쪽으로 난 통로로 고개를 내밀면 화장실 문이 보이고, 두세 걸음만 더 나가면 주방이 있다. 그 곳이 내 자리다.
"용, 깁 미 버러!"
"왓?"
"버러!"
"…."
이자리아의 발음은 유난히 굴러다닌다. 한창 바쁜 통이라서 뭘 달라는지 얼른 알아듣지 못한다. 나를 이 식당에 소개해준 후배 케이가 바쁘게 접시를 닦으면서도 도와준다.
"형, 버터요!"
"젠장, 그걸 못 알아듣다니…. 그런데 버터가 어디 있나?"
버터를 건네주자 폴란드에서 이민온 이자리아는 날 째려보며 한마디 쏘아붙이려다 "쳇" 하고는 입술을 이죽거리고서 프런트로 돌아갔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곧잘 큰 소리를 친다. 자신이 지배인이라도 되는 양 턱을 15도 정도 들고 다니면서. 사장의 남동생이자 건달인 무스타포의 애인인 것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일곱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한 식당에서 일하네옆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양고기 덩어리를 자르던 지미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위로한다.
"신경 쓸 거 없어. 쟨 원래 저래."
지미. 그는 40대 중반의 중국출신 이민자다. 자신의 말로는 베이징대학 교수였다고 한다. 대체 무슨 사연으로 교수자리까지 때려치고 이민 왔을까, 한번 물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마오쩌둥 노래를 장난스럽게 부르던 그는 냉소적인 얼굴로 웃기만 했다.
그 때 하미가 출근했다. 벌써 저녁 7시가 다 된 모양이다. 하미의 머리 스타일이 레게로 바뀌었다. 꽤 잘 어울린다. 그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물어본다.
"오늘 어땠어들?"
"미치도록 바빴지!"
케이가 대답하고는 이제 살았다는 표정으로 하미와 교대한다.
하미. 그는 이란에서 망명한 킥복싱 선수다. 그는 밴쿠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였는데 메달을 반납하고 캐나다를 선택했다. 그의 망명 신청은 아직 심사 중이라 했다. 하미가 코를 잡아 보이며 내게 말했다.
"로티(고기나 야채를 넣고 말아먹는 얇고 넓은 빵)가 타는 모양인데!"
"어휴 이런, 수지 아줌마는 또 어딜 간 거야?"
수지. 수지 아줌마는 인도출신 이민자로 잔머리의 대가다. 오늘도 교대시간 되기도 전에 도망친 것이다. "용, 저것 좀 날라줄래? 허리가 아파서…"하며 날 부려먹기 일쑤고, "나 오늘 5분만 일찍 퇴근할게, 하미 올 때까지만 봐줘"하고는 20분 전부터 사라지는 것이 그녀의 특기다. 그 사이 설거지가 쌓이고 주문이 밀려들면 그 짧은 20분은 기어코 나를 무아지경(?)으로 만들고야 만다.
이들이 아프가니스탄 식당 '이스트 이즈 이스트'의 주요 등장인물들이다. 그리고도 네댓 명이 더 있다. 이란·인도·중국·폴란드·러시아·아프가니스탄·한국…. 이 작은 공간에 무려 일곱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셈이다.
피부색이 다른 이들이 모여 각기 다른 억양의 영어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 이 식당이야말로 '다양한 이민자들로 모자이크된 나라' 캐나다다운 공간이 아닐까.
첫 3일간은 임금없이 일하라고? 서러운 불법 노동자
"하이, 모두들 안녕!"
마침내 우리들의 주인공 사라가 등장했다. 모두 하던 말을 멈춘다. 그녀가 바로 '이스트 이즈 이스트'의 악명 높은 사장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가족인 이자리아만 빼고 모두에게 경계대상 1호다. 전직 교수 지미는 "무식한 돈벌레"라고 욕을 해댔고, 권투선수 하미는 "정이라곤 없는 쫀쫀한 구두쇠"라며 고개를 흔들었고, 후배 케이는 "다혈질이니 조심하라"고 미리부터 내게 충고를 했다.
"용, 나와 얘기 좀 할까?"
또 오늘은 무슨 일일까. 그녀를 따라 2층 사무실로 올라가며 머리를 굴려보지만, 요 며칠 사이에 특별히 책 잡힐 일이라곤 없었다. 내가 식당에서 일한 지도 어느덧 4주일, 그녀와 나는 첫날부터 지금까지 기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첫 출근 날이었다. 잊지 못할 그녀의 첫 마디.
"3일 동안은 수습기간입니다. 트레이닝이니까 임금은 없어요. 알죠?"
"예?"
"싫으면 할 수 없고. 한번 생각해 봐요."
수습기간에 임금이 없다니! 그건 엄연한 노동법 위반이지만, 내 처지도 그리 당당할 상황이 못 되는지라 울며 겨자 먹기다. 나는 워킹비자가 없는 불법노동자였다.
한동안 그녀는 몰래 주방을 들여다보며 날 감시하기도 하고, 불쑥 들어와서는 지저분하다느니 어떻다느니 하면서 잔소리를 해대기도 했다. 양파껍질을 두껍게 벗긴다며 "어머, 이 아까운 걸!"하고 호들갑을 떨며 나를 손아귀에 쥐려고 했다. 사실 양파 100개씩을 까면서 그녀의 말처럼 맨 바깥쪽 얇은 한 겹만 벗겨내다가는 다른 모든 일들은 종치고 말 거였다.
내가 맡은 일은 결코 적지 않았다. 로티를 굽고, 고기와 야채를 요리하기 좋은 크기로 잘라놓고, 각종 소스를 만들고, 만두를 빚고, 연어를 쪄냈다. 감자튀김이나 수프와 짜이 같은 간단한 요리는 직접 만들기까지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퇴근하기 전에 요리용 큰 솥을 10개쯤 씻고 주방을 청소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난 이 모든 것들을 신속하고 요령있고 깔끔하게 습득해 갔다. 점점 사라의 입이 벌어졌다.
"요~옹, 너무너무 똑똑한 것 같아! 한국에서 뭔 일했어?"
사라가 나긋한 말투로 "요~옹"하며 내 이름을 늘여 부르는 날이 늘어갔다. 심술궂은 얼굴과는 어울리진 않지만…. 또 알고 보니 나와는 동갑이라 농담을 섞어가며 티격태격 지냈다. 2주일이 지나갔다. 내가 벼르던 반격(?)의 날이 왔다. 면담을 신청했다.
"사라, 임금을 올려줘야겠어!"
"뭐? 용,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당신도 인정하듯 내가 모든 일을 잘 해내고 있잖아. 그런데 전임자와 임금 차이가 너무 나더라고. 사라도 알잖아? 똑같이 해달라는 건 아냐. 시간당 1달러 인상, 어때?"
"…."
불시에 일격을 당한 사라는 다음날부터 임금(일당)을 인상했다. 대신 그날 이후, 사라는 내 기세를 잡으려고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걸어왔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일까. 사무실에 들어서자 CCTV 화면으로 프런트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보였다. 그녀가 자리를 권하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요~옹, 그동안 일을 너무 잘해줘서 고마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이제 그만 두라는 말이겠지. 속으로는 뜨끔했지만 내색 않고 그녀를 멀끔히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린다.
"용, 네가 일하는 모습은 너무 인상적이야. 정말이지 감동했어. 사람들도 너 일 잘한다고 칭찬이 자자해. 그래서 내가, 임금을 1달러 더 인상해 주려고. 어때 좋아?"
"왜? 아니, 난 더 이상은 필요치 않는데. 나중에, 그래 나중에, 내가 필요하면 부탁할게."
"아니야 용, 당장 오늘부터 인상해줄게!"
임금을 올려준 지 얼마나 됐다고, 뭔가 좀 이상했다. 구두쇠 사라가 말이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케이에게 물어보았다.
"오후에 사라한테 무슨 일 있었어?"
"아, 참, 얘기한다는 게 잊어버렸네. 사라가 형이 한국에서 무슨 일 했느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노동조합에서 일했다고 했죠."
"그랬더니?"
"형이 왜 이 식당에 들어왔는지 심각하게 캐묻던데요."
"뭐라 답했어?"
"'걱정하지 마라, 용은 그냥 여행자일 뿐이다' 뭐 그랬죠."
"푸하하하!"
"형,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었어요?"
"사라가… 아이고 배야… 사라가… 내 임금 또 올려준단다."
"네?"
오! 귀여운 사라.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욕심덩어리 얼굴 어디에 이런 순진한 구석이 숨어 있었을까.
부시 재취임하던 날 "오늘은 슬픈 날"
다음날 출근하자 주방장 로자리아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찡끗 눈을 깜박이며 축하해주었다. 로자리아는 사라의 여동생이지만 언니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녀는 나를 여러 번 감동시켰다.
12월 31일, 그러니까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저녁에도 나는 양고기 비린 냄새에 파묻혀 일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식당은 평소보다 몇 배나 바빴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숨을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있자니 왠지 나그네 신세가 서글퍼졌다.
'지구 반대편의 땅까지 와서 지금 난 뭐 하고 있는 걸까?'
그 때 로자리아가 와인 병을 흔들어 보이며 불렀다.
"용! 하미! 그딴 것들 내버려두고 이리와. 한 해의 마지막 날인데, 우리끼리라도 축하해야지! 자, 우리들의 쓸쓸한 밤을 위하여!"
나는 하마터면 울 뻔 했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다. 부시가 두 번째로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던 날이었다. 그날 다운타운 곳곳에서는 부시를 규탄하는 전쟁반대 시위가 열렸다. 무대에 선 연사들마다 부시의 부도덕한 전쟁에 분노하며 그의 재취임을 개탄했다.
나 역시 선거 결과가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내와 나는 그동안 여행하면서 부시를 지지한다거나 '그의 전쟁'에 찬성하는 미국인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거니와, 그가 내세운 대량살상무기 제거는 모두 조작된 것임이 이미 드러난 상황이었다. 틀림없이 부시가 낙선할 거라 여겼던 것이다.
그날 아프가니스탄 식당 이스트 이즈 이스트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어쩐 일인지 손님까지 한산했다.
로자리아가 이른 저녁부터 와인을 한 병 사들고 왔다.
"용, 하미, 한 잔 하자고. 오늘은 슬픈 날이잖아."
언젠가 그녀는 "탈레반 때문에 이민을 떠났지만 미국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단숨에 와인 한 잔을 마셔버린 그녀가 문뜩 화가 난 듯 말을 쏟아냈다.
"부시를 다시 찍어준 미국인들 정말 미워! 만약 아프가니스탄에 단 한번만이라도 와본다면 절대 그럴 순 없을 거야!"
부시가 악의 축이라고 지명한, 그래서 어쩌면 다음 전쟁터가 될지도 모를 이란과 한반도에서 온 하미와 나는 말없이 그녀가 따라준 와인을 비웠다. 로자리아가 빈 잔을 쳐다보며 물기 있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내 꿈이 뭔지 아니?"
"글쎄…"
"사라와 난 돈 많이 벌어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갈 거야. 전쟁으로 다 부서져버렸다지만 우리에게도 고향이 있어. 그곳에 부모 잃은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 거야. 그게 나와 사라의 꿈이야."
"…."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났다. 구름 가득 낀 밤하늘에서 예쁜 별 하나를 발견한 것처럼 진한 울림이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마침내 식당을 그만두는 날이었다. 세 달하고도 26일만이다. 로자리아가 내가 좋아하는 짜이의 재료를 잔뜩 챙겨주며 이별인사를 한다.
"짜이 만들 줄 알지? 한 달분은 될 거야. 드디어 바람 같은 나그네는 떠나고 불쌍한 여인은 냄새나는 주방에서 씨름을 해야겠지! 그런데 용, 좀 더 있으면 안 될까? 네가 일을 참 잘했는데."
"이젠 발바닥이 근질거려 안 되겠다. 곧 밴쿠버를 떠날 거야. 캐나다의 겨울이 보고 싶거든."
사라를 만나러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내내 툭탁거렸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참 많이 싸웠는데, 그만 미운 정이 들었나 보다. 삼형제가 맨손으로 이민 와서 이만한 식당을 일궈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언니로서 책임감도 컸으리라.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사라가 마지막 이틀분의 일당을 내밀었다. 받아서 주머니에 챙겨 넣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사라, 그 동안 고마웠어. 돈 많이 벌길 바래. 그리고 너희 자매의 꿈도 이뤄지리라 믿어!"
"그래 고맙다… 그런데 용, 어제 일당은 내가 이미 주지 않았던가?"
"사라!"
"아, 미안. 난 혹시 줬나 해서 그랬지."
끝까지 변함없는 사라. 아마 그들 자매의 꿈도 변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이스트 이즈 이스트'의 다른 친구들의 꿈도 밴쿠버를 조각조각 모자이크해 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양학용 & 김향미 부부는 결혼 10년째이던 해에 길을 떠나 2년 8개월 동안(2003년 10월 16일~2006년 6월 4일) 아시아·유럽·북미·중남미·아프리카·중동·러시아 등 세계 47개국을 여행했다. 기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wetrave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