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자치단체 슬로건 서울특별시와 6개 광역시의 선전문구를 보면 하나같이 영어표기 일색이다.
자치단체 슬로건서울특별시와 6개 광역시의 선전문구를 보면 하나같이 영어표기 일색이다. ⓒ 최육상

Hi SEUOL(하이 서울), Dynamic BUSAN(다이나믹 부산), Fly INCHEON(플라이 인천), It's DAEJEON(잇츠 대전), Your Partner GWANGJU(유어 파트너 광주), Colorful DAEGU(컬러풀 대구), ULSAN for you(울산 포 유) - 전국 특별시·광역시 선전문구들.

지방자치단체 등 관공서는 공공기관으로서 '국어기본법'을 알리고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기관의 '선전문구'(슬로건)를 보면 대부분 영어표기 일색이다. 서울특별시와 6개 광역시 등 자치단체들이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는 선전문구 선정 배경을 보면 대개 '세계도시, 미래도시, 중심도시, 국제도시' 등의 의미를 내세운다.

Hi·Dynamic·Fly·Colorful... 꼭 영어로 해야 '맛'인가?

서울이 내세운 'Hi SEOUL'의 'Hi'는 전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영어 인사말로서 지구촌에 밝고 친근한 서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다양하고 활기찬 서울의 매력을 표현한다. High와 동음으로 대한민국의 수도를 뛰어넘어 지구촌시대의 세계 대도시간 경쟁에서 서울이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부산의 선전문구 'Dynamic Busan'은 개방 진취적인 부산시민의 기질을 잘 나타내고 관광, 경제,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활기차게 역동적으로 발전한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Dynamic의 자유분방한 서체는 약동하는 부산을 상징하고, 중후하고 정돈된 느낌의 부산은 세계 물류 비즈니스 중심도시로서 부산에 대한 정체성을 나타낸다는 설명이다.

인천은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의 개막과 함께 동북아의 허브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 경제자유구역(송도·영종·청라), 인천국제공항, 인천신항개발 등 대규모 사업 추진 등으로 동북아의 중심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천은 국제도시로서 위상에 걸맞게 도시이미지를 새롭게 창출하고 개성 있는 인천을 만들기 위하여 도시 슬로건 'Fly Incheon'를 개발했다.

대전의 'It's Daejeon'은 "가장 살기 좋은 도시가 바로 대전"이라는 감탄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삶이 재미있고 풍요로운 도시(I nteresting), 전통과 다양한 문화의 도시(T radition & Culture), 과학의 도시, 미래의 도시(S cience & Technology)라는 뜻이 그 속에 들어 있다. 

광주와 울산도 마찬가지. 'Your Partner Gwangju'라는 디자인은 영문 Y와 P자를 의인화해 서로 어깨동무(동반자, 친구)하는 모습으로 모든 사람이 함께 하는 민주인권도시, 문화관광도시, 첨단산업도시 광주를 표현하고 있다. 빛과 생명의 정신을 발양해 지역과 국가, 세계를 위한 참삶의 공동체를 일구어 나가는데 기여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다할 것을 표상한다는게 광주의 선전문구다.

산업도시 울산의 'Ulsan for you'라는 선전문구는 '항상 준비된 도시, 울산', '울산은 당신을 위한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한다. 문양색상인 스카이 블루의 푸른색은 세계의 중심 산업도시,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를 간직한 최고 도시 울산의 저력을 나타낸다는 뜻이란다.

관공서 영어표기 동사무소는 주민자치'센터', 경찰서는 치안'센터'. 관공서의 영어 사랑은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관공서 영어표기동사무소는 주민자치'센터', 경찰서는 치안'센터'. 관공서의 영어 사랑은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 최육상

행정구역 내에서 외국어 표기를 의무화 한 자치단체도 있다. 서울시 노원구청은 지난 5월 1일부터 노원구청장 명의의 '옥외광고물 등의 외국어표기 병기 특정구역 지정 및 표시제한 고시'를 적용해 특정관내 업소를 대상으로 옥외광고물 등에 외국어를 함께 쓰도록 하고 있다.

이 고시는 "국제화시대에 부응하여 광고물 수준향상 및 도시환경 이미지를 개선"한다는 목적으로 상세도를 첨부해 외국어를 함께 써야 하는 의무지역과 권장지역을 규정하고 있다. 이 고시는 노원구 주민들 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비판하고 있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적용되고 있다.

주민센터·타운... 행정구역·지도표기도 바뀌네

무분별한 외국어표기는 자치단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민 생활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영어 사용이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9월 1일부터 각 동마다 있는 동사무소를 '주민센터'로 바꾼다며 현재 각 동사무소의 현판을 교체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7월부터 동사무소가 복지·문화·고용·생활체육 등의 주민생활서비스를 주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통합서비스기관으로 전환됨에 따라 취해진 조치라고 밝히고 있다.

서울시 마포구는 한발 더 나갔다. 마포구청은 구정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면서 지난 5월 1일부터 관내 20개 동을 4개 권역으로 구분해 동사무소를 없애는 대신 '타운'을 만들었다.

아현 1·2동과 공덕 1·2동 등은 '메트로타운'으로, 대흥·염리동 등은 '한강타운', 홍대 앞은 '홍대문화타운',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와 월드컵 경기장이 있는 지역은 '월드컵타운'으로 바뀌었다. 주소도 바뀌었다. 예를 들어 '마포구 성산로 557'이던 과거 주소는 '마포구 월드컵타운 성산로 557'이라는 식으로 변했다.

이런 행정들은 도입 당시 누리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누리꾼들은 광고물 외국어 표기는 물론 타운, 주민센터 등의 도입에 대해 관련 기사의 댓글이나 포털사이트의 각종 게시판을 활용해 관공서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www.daum.net) 사이트의 '이화철'이라는 네티즌은 "서울메트로, SH공사, 하이서울페스티발, 메트로폴리스교통분과위원회, 하이서울북스토어, 뉴타운, 한강르네상스프로젝트 등등 끝도 없다"며 도가 지나친 영어사용을 지적했다.

서울 대방동 동사무소에 앞에서 만난 김화순(63)씨는 동사무소 옆에 함께 표기된 주민자치센터가 무슨 뜻인 줄 아느냐는 질문에 "동사무소면 동사무소지, 센터가 무슨 말이냐"며 "그냥 동사무소로 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왜 자꾸 어려운 영어를 쓰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만난 박은혜(25)씨는 서울의 슬로건인 '하이 서울(Hi Seoul)'에 대해서 "세계화를 위해 영어를 쓰는 것은 이해하지만 국내에서조차 영어로 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오히려 '안녕 서울', '반가워 서울' 등 우리말을 쓰는 것이 외국 사람들에게 우리 것을 알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자치단체 한글 선전문구 영어와 외국어를 쓰지 않아도 자치단체 홍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히려 한글이 더욱 친근하고 쉽다.
자치단체 한글 선전문구영어와 외국어를 쓰지 않아도 자치단체 홍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히려 한글이 더욱 친근하고 쉽다. ⓒ 최육상

"관공서조차 국민 언어생활 고려 안해... 영어 남발 심화 우려"

한글문화연대 등 한글 관련 단체에서도 행정자치부의 주민센터 도입에 반대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영어사용을 국민들에게 권장하는 관공서들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글문화연대의 유재경 간사는 "공공기관과 공공단체에서 국민들의 언어생활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영어를 남발하고 있는 것은 국어기본법에 어긋나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유 간사는 또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본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한글문화연대 등은 앞으로 자치단체 등의 잘못된 행정에 대해 감시활동을 더욱 강화하고, 처벌조항이 없는 국어기본법에 강제조항을 넣어서 우리말을 우선 사용하도록 국민들에게 국어기본법을 알려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글날은 1970년 공휴일로 지정된 뒤 1990년 기념일로 바뀌었다가 다시 2006년 공휴일이 아닌 국경일로 제정되기까지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한 이유는 세종대왕의 높은 뜻과 업적을 기리고 한글의 제정을 경축하기 위함이다.

관공서들은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을 줄이고 한글의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의무와 책임이 있다. 외국어를 사용해야 세계화를 꾀할 수 있다는 논리라면, 가장 한국적인 한글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히 먼저라는 국민들의 지적을 새겨듣길 바란다.


#한글날#국어기본법#자치단체#선전문구(슬로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