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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동영 캠프에 의한 대규모 명의도용 사태를 지켜보면서, 그동안 개인적으로 덮어두었던 한 가지 사건이 떠올랐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예비후보의 사조직인 사단법인 '21세기 나라비전연구소'에 의해 내 명의가 도용된 사건이다. 이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명의로 2년치 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료가 국고로 들어갔다. 물론 나는 한 푼의 금전적 이익도 누리지 않았다.  

캠프 관계자들에게 사적인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정치의 구태의연한 관행들이 일소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내 신상에 관계된 이야기를 꺼내고자 한다. 이로 인해 캠프에 계시는 분들에게 마음의 상처가 가긴 하겠지만, 공적인 일을 하는 분들은 때로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겸허하게 책임질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나도 모르는 새 정동영 사조직의 일원이 되다

2004년 8월,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의 사조직에서 조직단장으로 일하는 A라는 분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에 잘 아는 분이었다. "최근 한 언론에서 정동영 장관의 부친이 친일파였다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진위 여부를 좀 조사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 그 분의 말이었다. 내가 역사학을 전공하고 있기에 그런 제안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2004년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여의도 산정빌딩에 있는 정동영 캠프 사무실에서 친일문제에 관한 자료조사를 했다. 사무실 근처에 있는 국회도서관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정동영 예비후보의 부친이 근무한 금융조합에 관한 자료들을 조사했다.

2004년 10월 중순에 그 사무실 일을 마치면서 한 달 월급으로 250만원을 받았다. 그리고 그 후로는 조직단장을 한두 번 만난 일이 있을 뿐, 그 쪽 캠프와는 일절 관계를 갖지 않았다. 그 뒤로는 학교에서 학위논문의 예심 및 본심을 받느라 외부활동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에서 검색해보면 알 수 있듯, 나는 학교공부 외의 시간에는 주로 보고 싶은 책을 읽거나 아니면 기사를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그 뒤 정치적 활동과 관련된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은, 내가 올린 <오마이뉴스> 기사 건수로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뒤인 2006년의 일이다. 건강보험 문제로 인해 엉뚱하게도 정동영 캠프 직원들과 다시 부딪히게 된 것이다.

2005년 6월부터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 보험료를 납부했는데, 2006년 1월에 갑자기 공단으로부터 "보험료 몇 개월치가 과다 징수되었으니 환급신청을 하면 과오납분을 돌려주겠다"는 통지가 날아오더니, 3월부터는 아예 보험료 고지서가 날아오지 않았다. 곧 오겠지 하며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7월이 되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하도 궁금해서 2006년 7월 11일에 건강보험공단 강동지사에 전화를 걸어보았더니, 뜻밖에도 필자가 직장가입자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직장가입기간과 지역가입기간이 겹치는 개월 수만큼의 보험료가 환급된 것이고 또 그런 사유 때문에 보험료가 더 이상 청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정동영 예비후보의 사조직인 21세기 나라비전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취직되어 있었던 것이다. 친일문제 조사는 연구소와는 무관하게 해준 일인데, 그 때 제출한 주민등록등본을 갖고 나를 직원으로 등록시켜 놓았던 것이다.

정치적 연구소는 기피대상... 수치스러운 경력 붙다니

혹 이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내게는 상당히 수치스러운 일이나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에게 정치적 연구소는 기피 대상이다. 그런 곳은 실제로는 연구소도 아닐 뿐만 아니라 정치인의 측근들이 드나들면서 커피나 마시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때에는 중요한 회의도 열리긴 하지만.

건강보험공단 직원의 말에 따르면, 2006년 초에 이 연구소에서 나를 직원으로 가입시키면서 2004년 7월부터 근무한 것으로 소급 적용시켰고, 또 2006년 7월에 퇴직한 것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간에 상당하는 보험료도 모두 지급되었다고 했다. 건강보험공단 외에 고용보험공단·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도 똑같은 답변을 했다.

그러니까 정동영 캠프의 연구소에서 무려 2년씩이나 내 명의를 도용해서 연구원으로 등록시켜 놓고 3대 보험료를 모두 지급했던 것이다.

사회보험에 관해서는 문외한이긴 하지만, 그 2년 동안 내 명의로 월급이 지급되지 않았다면 3대 보험료가 납부될 수 있었을까? 내가 정말로 그 기간 동안 연구소에 근무했다면, 그때 받은 250만원을 기준으로 하면 2년치 월급이 6000만 원이나 된다. 3대 보험료가 지급되었다니, 분명 내 앞으로 월급이 지급되지 않았을까?

캠프 직원들이 내 명의로 3대 보험료를 대신 지급한 것은 결코 나를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친일문제를 조사하던 그 1개월 동안, 나는 캠프를 드나드는 특보들이나 열린우리당 간부들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먼저 와서 인사하지 않으면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물론 예의 없는 일이긴 했지만. 평소와는 달리 그 때는 이상하게 인사가 하기 싫었다.

나를 보고 '좀 건방지다'는 느낌을 가졌을 그 분들이 나를 위해서 보험료를 대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것이, 나는 이미 지역가입자로서 보험료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의가 도용된 사실을 파악한 뒤에 나는 캠프와 관련된 어느 청년으로부터 연구소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상으로 그 곳 담당자를 매우 호되게 공격했다. 지금 당장에 원래대로 바꾸어놓으라며 호통을 친 것이다. 7월 11일과 12일에는 나 때문에 그 곳 업무가 잠시 마비되었을 것이다.

캠프에서 처음에는 "우리가 장학금을 줄 테니 그냥 넘어가면 안 되냐"며 제의해 왔지만, 내가 계속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자 결국에는 "연구원 등록 사실을 삭제해주겠다"는 답변을 했다.

연구소로부터 "사실관계가 정정되었다"면서 받은 팩스를 보니, 근무기간이 원래는 2004년 7월~2006년 6월이었는데 2004년 7월~2006년 2월로 새롭게 변경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도 부당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연구소에 취직한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연구소를 방문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연구소가 있는 여의도 대하빌딩 로비에 한 번 간 일이 있을 뿐이고, 내가 근무한 산정빌딩은, 그 연구소가 있는 대하빌딩으로부터 좀 떨어진 곳이다.

그리고 당시 캠프에서는 나에게 조사 작업을 주문하기 전에 "이 곳에서 일했다는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한 일이 있다. 그래서 나도 그 곳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숨겼다.

나는 약속을 지켰다. 나중에 캠프에서 약속을 어기고 나를 아예 연구소의 공식 직원으로 등록시켜 놓기 전까진 말이다.

일한 것 비밀로 해달라더니... 나는 약속을 지켰는데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3개 보험공단에 정식으로 진정서를 제출했고, 이에 따라 공단 직원들이 불시에 연구소를 조사하는 일까지 있었다. 연구소뿐만 아니라 3개 보험공단 직원들에게도 귀찮을 정도로 전화를 걸어서 빨리 해결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 덕분에 3개 보험공단 직원들이 며칠 간격으로 현장조사를 나가는 바람에 연구소 담당자가 혼쭐이 난 적도 있다.

결국 연구소에서 다음과 같은 최종 제안을 해왔다. "연구소에 전혀 근무하지 않은 것으로 하면 절차상 문제가 커지므로, 2004년 7월 한 달만 근무한 것으로 하면 안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연구소에 근무한 적은 없지만 정동영 캠프로부터 1개월 치 월급 250만원을 받은 적은 있으므로, 그 제안을 수용하고 문제를 마무리하는 데 합의했다.

그래서 현재 공식상으로는 2004년 7월 한 달 동안 필자가 정동영 캠프에 근무했던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이것도 사실이 아니지만, 연구소 관계자들의 입장을 봐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연구소 직원들의 분위기로 볼 때에, 필자가 더 강하게 몰아붙이면 그 분들이 어떤 금전적 문제에 시달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나도 정동영 캠프에 의한 명의도용의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해서 수백 명의 명의가 도용되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일이 다시 떠올랐다.

내가 사적인 경험담을 꺼내놓는 것은 최근 한국사회가 정동영 캠프의 비리를 밝히는 것과 취지는 같을 것이다. 한국정치가 이제는 과거의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수구세력의 구태를 비판하는 개혁진영에서 수구세력과 똑같은 구태를 계속해서 저지른다면, 한국정치는 항상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년 7월에 나 때문에 근 보름 이상 "왜 내 명의를 도용했느냐"는 호된 공격에 시달린 적이 있는 정동영 캠프에서 또다시 유사한 일을 저질렀다는 걸 듣고서, 이렇게 작심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


태그:#정동영, #명의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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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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