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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운동장 당선작 유동적 형태가 독특하다고 홍보하는 '시작작품'으로 동대문운동장의 삶이 담길까.
동대문운동장 당선작유동적 형태가 독특하다고 홍보하는 '시작작품'으로 동대문운동장의 삶이 담길까. ⓒ 서울특별시

'신데렐라 맨'처럼 등장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명품이 아주 잘 어울려 보인다. 훤칠한 키에 핸섬한 풍모에 이미 명품만 걸친 듯하고, 어떤 명품을 걸치건 최고의 모델이 될 듯하다.

그래선지, 오세훈 시장은 유독 '명품 발언'이 많다. '서울 도심을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미래형 세계적 명품 도시로 재창조, 서울을 첨단 명품 도시로, 하이서울페스티발을 명품 축제로, 서울시청을 명품 건물로, 명품 왕십리 뉴타운, 용산역세권 개발을 명품 수변도시로' 등 그야말로 명품 타령이다.

'명품'이라는 말은 유행어이긴 하다. 노무현 대통령도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가 '명품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얘기했던 적이 있고,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광교 신도시를 명품 신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의 명품 발언은 도가 지나치다.

서울시장으로서 오세훈은 제발 좀 명품 좀 벗어버리면 좋겠다. 한 도시의 시장, 그것도 대한민국의 리더 도시인 서울의 시장이 '명품, 명품'하는 것은 격에도 맞지 않고 자칫 경박한 시류를 부채질할 뿐이다.

명품 타령에 숨은 거짓과 가식 

'명품'이란 말이 과연 건강한 말인가? '짝퉁 명품'도 마다하지 않는 명품 중독증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정도를 지나쳤다. 최근 스캔들을 뿌리는 누구처럼 명품만 걸치고 명품만 선물하면서 자신도 명품 축에 든다고 포장하다가 그것이 모두 거짓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난 우리 세태 아닌가. 명품 타령은 '가식이 통하는 우리 사회, 껍데기에 유혹되는 우리 사회'의 부박한 심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명품의 원래 뜻은 세계시장에서 살아남는 브랜드 상품을 말한다. 하지만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브랜드를 수없이 확보한 서구권에서는 정작 '명품'이라는 말 자체가 없다. 예컨대, 영어에는 '명품'은 'luxury goods'(사치품) 정도로 번역될 뿐이다.(네이버 사전의 예문이 재미있다. Japanese like luxury goods. 일본 사람의 명품 중독증을 비웃는 예문인데, 한국 사람의 명품 중독증도 그에 버금간다.) 

사정이 이러하니, 지도자라면 오히려 명품 경계령이라도 내려야 할 판인데, 서울시장이 나서서 명품 중독증을 부추기니 뭔가 잘못될 징후다. 그나마 명품은 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사고파는 고가 사치상품일 뿐이다. 하지만 도시와 건축은 고가 사치품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이고,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시민의 공공성을 담는 공간이며, 쉽게 사고팔고 버리는 상품이 아니라 한번 만들면 아주 오래 가는 공공자산이다. 그러니 도시나 건축에 명품이라는 말을 자주 붙이는 것은 영 품격 떨어지는 일이다.

동대문운동장 당선작의 값비싼 명품 한 장

최근 동대문운동장 국제공모 당선작은 이런 명품 중독증에 대한 우려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야말로 '비싸고 실속 없는 명품'으로 낙착되고 말았다. 

'동대문 패션'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부상한 동대문 패션 상권의 지속적인 발전과 마케팅을 위해서 디자인센터 기능을 동대문운동장 터에 앵커를 삼는 것은 좋은 목표다. 이름이 '월드 디자인 플라자'라는 그리 세련되지 못한 영어 이름이긴 하지만 새로운 디자인 인프라 기능을 조성하는 목표에 반대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이런 목표 하에 '초청 국제공모'를 한다고 해서 나는 모처럼 '괜찮은 일'이라 생각했다. 초청 공모란 실력이 입증된 작가들을 지명하여 실비를 지급하며 안을 모집하는 방식이므로, 주최 측에서 프로그램을 잘 짜고 철저하게 준비하면 제대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이점이 커서 최근 선진국의 국제공모는 많은 경우 초청 공모로 이루어진다. 동대문운동장의 경우에 국외 4인, 국내 4인으로 지명하여 나는 열심히 기대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허망하다.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는 '명품 건축가에 의한 명품 설계'라고 잔뜩 홍보를 하고 언론들도 따라서 박수치는 분위기이지만, 과연 실속이 있나? '물결무늬가 동대문운동장을 덮었다, 조경과 건축이 환상적으로 만났다, 독특하고 환상적인 형태'라는 둥의 피상적인 찬탄과, 안 자체보다도 스타건축가를 더 조명하는 분위기도 극성이다. 이라크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스타 건축가, 게다가 여성 건축가라며, 명품 옷을 화려하게 두른 자하 하디드의 사진까지 실으며 드디어 우리도 세계적 건축가가 설계한 명품 건축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경박한 분위기가 과연 정상인가. 어떤 문제가 있을까?
   
첫째는 '값비싼 그림 한 장'을 뽑았다는 사실이다. '그림의 시각적 효과' 때문에 뽑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단 당선작은 눈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돈은 얼마나 들까? 벌써 서울시가 잡은 예산 2300억원보다 훨씬 더 많은 3500억원이 들 것이란다.(<내일신문> 2007. 9. 13)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행정타운 당선작 동대문운동장 당선작에 보이는 유동적 형태는 이미 2007년 초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심행정타운에 1등 당선되었던 바 있다. 한국 건축가가 1등이어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가?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행정타운 당선작동대문운동장 당선작에 보이는 유동적 형태는 이미 2007년 초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심행정타운에 1등 당선되었던 바 있다. 한국 건축가가 1등이어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가? ⓒ MPPAT

둘째, 당선작은 별로 독창적인 형태도 아니라는 씁쓸한 사실이다. 이런 형태는 최근 세계 공모에서 흔히 등장하는 형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미 비슷한 형태가 올해 초에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심행정타운'에서 당선되었던 바 있다. 행복도시 경우도 국제공모(초청이 아니라 공개 방식)였는데, 아마 당선자가 한국 건축가여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언론에서 별로 띄우지 않았다. 여하튼 동대문운동장 당선작이 독창적인 형태라 호들갑을 떨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다시 쫓겨나는 동대문운동장 노점상과 상인들

셋째, 당선작은 '시각 작품'일 뿐 '동대문운동장의 삶'이 담겨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씁쓸한 정도를 넘어 처량하게 느껴지는 점이다. 

우리 모두 기억한다. 동대문운동장에 얽힌 수많은 사연들을. 전임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조성사업으로 쫓겨났던 노점상 900여 가게가 이제 그나마 풍물시장으로 안정되었는데, 이들은 다시 오세훈 시장에 의하여 쫓겨날 운명이다. 이명박 전 시장이 동대문운동장에 '세계적 풍물시장'을 만들어주겠다던 약속이 무산되는 것이다. 서울시는 신설동 숭의여중 터에 새로 풍물시장을 만들어 이전한다고 하지만 쫓겨나는 건 어차피 쫓겨나는 것이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서울시와 계약을 맺고 스포츠용품 상점을 하는 상인들과 주변의 300여 노점상도 쫓겨날 수밖에 없다. 명품은 아니더라도 동대문 상권과 동대문운동장의 스포츠 전통에 기대어 나름대로 개성 있는 스포츠용품 상권을 만들었던 상인들은 앞이 캄캄할 것이다. 

쫓겨나는 건 사람들만이 아니다. 근대건축으로서의 문화재적 가치가 주목받고 있는 동대문운동장 스타디움이 완전 철거될 것이다. 스탠드를 보전키로 했던 약속도 무산되고 야구장의 골격을 보전하여 활용하자는 제안도 무시되고 있다. 이른바 '명품을 만들기 위한 싹쓸이' 개발이다. 

싹쓸이 명품 말고 다른 대안은 없나?

그런데, 도대체 이 모든 쟁점들, 노점상과 상인들과 문화재적 가치를 가진 스타디움 스탠드 보전, 새로운 디자인센터, 새로운 공공 공간, 시민의 숨통을 트여줄 공원 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대안은 없나? 아우르려는 고민이라도 해 봤나?

당선 건축가는 '환유의 풍경(Motonomic Landscape)´이라는 추상적 이름을 붙이며 '액체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건축물과 공원의 형태를 통해 공간적 유연성을 제공하고 한국적 전통과 끊임없이 변모하는 디자인의 미래를 연속적인 건물 내·외부를 통해 표현'하려고 했다지만, 이번 당선작에서 실망스런 점은 도대체 동대문운동장의 역동적인 도시 현실을 담으려는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싹쓸이 재개발로 아무리 세계건축가의 명품을 지으면 뭐하나, 도시의 삶에 대한 통찰이 엿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콘텐츠 없는 화려한 껍데기가 무에 그리 중요한가?

오세훈 서울시장 오세훈 시장은 동대문운동장을 명품 랜드마크로 만든다며 설명한다. 명품건축, 명품공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대문운동장의 삶과 역사 아닐까.
오세훈 서울시장오세훈 시장은 동대문운동장을 명품 랜드마크로 만든다며 설명한다. 명품건축, 명품공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대문운동장의 삶과 역사 아닐까. ⓒ 오마이뉴스 남소연
사실, 이것은 건축가의 문제라기보다는 발주자인 서울시의 문제다. 발주자가 강하게 요구하면 건축가는 그런 고민들을 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다. 특히 초청 공모의 경우에는 더욱 강하게 요구할 수 있다. 문제는 서울시가 그리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동대문운동장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했던 바 있다. "제 임기 중에 몇 개의 랜드마크 건물이 착공할 텐데 월드디자인 플라자가 서울의 대표 랜드마크가 될 강력한 후보가 될 것." 또 이렇게도 얘기했다. "동대문운동장 재개발을 통해 사회문화적 중심축을 창조함으로써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윤택함과 역동성을 재창조하는 것."(<뉴스메이커>, 2007. 9. 13)

문제는 오세훈 시장이 '랜드마크 명품'에 너무 경도되어 있다는 것이다. 훨씬 더 중요한 발언인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윤택함과 역동성을 재창조'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꼭 싹쓸이 재개발에 구애받을 이유가 없다. 랜드마크란 눈에 띄는 형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 도시의 윤택함과 역동성을 더 승화 발전시킬 때 가능한 것이다.

사실, 동대문운동장 터는 이번 당선작의 단순한 형태 이상의 무한한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일단 터의 크기가 충분히 크다. 이 밀집한 서울시에 6만5천여㎡ 규모의 큰 땅이라면 무엇이라도 포함할 수 있다. 서울시가 의도하는 월드 디자인 플라자는 물론이고, 노점상을 위한 풍물시장은 물론이고, 스포츠용품 상인들을 수용할 공간도 마련 가능하고, 스탠드를 보전하면서도 아주 그럴 듯한 공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 사이 사이에 휴식공원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여유도 안고 있다.

오세훈 시장이 그토록 새로운 명품과 랜드마크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동대문운동장은 훨씬 더 의미 있는 공간으로서 동대문 지역의 역동성과 문화적 윤택함이 새로 태어나는 작품이 되련만, 왜 발상의 전환을 하지 못할까?

시그니처 건축가의 비싼 건축이 우리에게 필요한가 

이왕 나온 김에, 세계 스타 건축가 선호 현상에 대해 한마디 붙여보자.

건축계에서는 자하 하디드 같은 세계 스타 건축가들 부류를 '시그니처 건축가(signature architect)'라 칭한다. 직역하면 '서명 건축가' 또는 '사인 건축가'다. 자기 이름이 박힌 건축물을 세계 곳곳에 사인하듯 파는 건축가라는 뜻이다. 글로벌 시장화하고 글로벌 자본에 의한 호화 개발이 거세지면서 이들 스타 건축가들도 같이 뜨는 셈인데, 말하자면 이들을 '세계자본주의의 시종'들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나는 시그니처 건축가들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으련다. 그것도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하지만 공공 부문의 사안이 되면 얘기가 다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들 시그니처 건축가들이 짓는 건축물들은 훨씬 더 비싸게 친다. 설계비는 물론이고 시공비도 몇 배씩 더 든다. 시그니처 건축가가 지은 성공작으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건축가 프랭크 게리)을 들면서 우리도 이런 건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렇게 비싼 건축물들은 대개 민간 건축물이라는 사실이다. 비슷한 규모의 건물보다 5배 이상이 들었다는 구겐하임 미술관도 빌바오 시의 지원을 받긴 했지만 민간 재단이 만든 민간 건축물이다.  

우리 역시 민간에서 나서서 시그니처 건축가를 활용하여 비싼 건축물을 짓는 것을 뭐라 할 이유는 없다. 예컨대, 삼성이 지은 '리움 미술관'은 세계 스타건축가 3인의 작품을 상당히 비싸게 지었고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두바이에서 일어나는 온갖 개발들에 시그니처 건축가들이 고용되어 그들의 이름을 개발업자들에게 빌려주며 고가 분양에 힘을 실어주고 있기도 하다.  

동대문운동장 앞 지하쇼핑센터 이 지하상가에는 총 80개의 점포가 있다. 점포 곳곳에는 철거를 강행하는 서울시에 항의하는 펼침막과 대자보 등이 붙어있다.
동대문운동장 앞 지하쇼핑센터이 지하상가에는 총 80개의 점포가 있다. 점포 곳곳에는 철거를 강행하는 서울시에 항의하는 펼침막과 대자보 등이 붙어있다. ⓒ 추광규

하지만 국민과 시민의 세금으로 그 시그니처 건축가들의 그 비싼 건축을 사려고 할 때는 아주 신중해야 한다. 그만한 가치를 가질 만한지 면밀하게 따져야 한다. 적어도 이번 동대문운동작 당선작은 그만한 돈을 들여야 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동대문운동장 터의 경우, 대중적인 서울시민 어필과 동대문운동장 시장권의 특성을 살려 건축가의 명품 시그니처보다는 이 장소의 역사성과 문화성과 시민성을 살리는 지혜로운 조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상황으로 동대문운동장의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다. 서울시는 철거하고 추진하겠다고 기염을 토하지만, 동대문야구장의 대체 구장을 지어주겠다는 구의정수장 확보도 불투명하고 스타디움 스탠드 철거를 밀어붙일 것인지도 불투명하고, 동대문운동장의 스포츠 상인들과 풍물시장의 노점상들의 반발도 만만찮다. 서울시는 명품 만든다고 밀어붙이지만 말고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명품에 유혹되면 자칫 돈을 물 쓰듯 하고 싶어진다. 명품 건축, 명품 공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시의 삶과 장소의 역사적 가치다. 이쯤에서 오세훈 시장은 명품을 벗어야 하지 않을까?


#동대문운동장#오세훈#서울시#명품#시그니처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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