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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아, 변양균씨 비리 의혹 보도와 관련해서 조선일보가 허위·왜곡 보도를 했다며 조계종 총무원이 '조선일보 구독 거부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 '조선일보 구독을 거부합니다'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신정아, 변양균씨 비리 의혹 보도와 관련해서 조선일보가 허위·왜곡 보도를 했다며 조계종 총무원이 '조선일보 구독 거부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 '조선일보 구독을 거부합니다'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 권우성

"지금으로서는 특별하게 할 말이 없다."

 

조계종단이 <조선일보>에 대한 전면적인 구독 거부운동을 펴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9일, <조선일보>의 반응은 극히 신중했다. 여러 곳을 돌고 돌다가 어렵사리 연결된 이종원 경영기획실장은 "할 말이 없다"는 말로 <조선일보>의 입장을 대신했다. 그만큼 이번 사안에 대한 대응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불교계 달래기 나선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그동안 불교계와 정면 대결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상당한 성의를 보였다. 10월 2일자 <조선일보> 1면에는 희한한 기사가 하나 실렸다.

 

"문화재청이 2005~2007년 사이 월정사에 국고 47억 원을 지원(조선일보 9월 21일자 A1면)한 것은 신정아씨의 동국대 교수 임용과는 관련이 없이 사찰의 문화재 보수·정비·복원 차원에서 2004년부터 적법 절차를 거쳐 예산에 편성되어 2005년부터 집행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확인됐다"는 기사였다.

 

이 기사에는 "한나라당은 1일 '월정사 국고 지원 문제를 신정아씨의 교수 임용과 연관 지어 보고 있지 않으며, 그것과 관련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 기사는 이밖에도 문화재청이 밝힌 예산 지원 용도, 그리고 월정사에 대한 문화재청의 예산 지원은 문제가 없어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검찰 측의 해명도 상세하게 보도했다. 

 

이는 <조선일보>의 9월 21일자 1면 머리기사 내용을 전면 부인하는 내용이었다. 정정보도문이라는 팻말이 없어서 그렇지 사실상 9월 21일자 기사에서 제기했던 의혹을 거둬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9월 21일자 1면 머리기사에서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이 신씨 교수 임용과 월정사 예산 지원 과정에 변양균(58) 전 청와대 정책실장 외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L씨가 개입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조사하고 있다"며 이른바 '월정사 권력 특혜 의혹'을 제기했었다. 여기에서 L씨는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던 이광재 의원(강원도 평창)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10월 4일자 2면 머리기사로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한 조계종 차원의 강력 대응 분위기를 상세하게 보도하기도 했다. 기사는 "전국의 2300여 조계종 사찰과 1만3천여 스님들을 대표하는 교구본사 주지회의가 5일 열리며, 여기에서 '신정아·변양균 게이트'의 수사와 보도가 동국대와 일부 스님들의 수준을 넘어 불교계 전체의 의혹으로 번지고 있는 것에 대해 범불교계 차원의 대응책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템플스테이나 문화재 보수·정비·복원 비용 등 적법한 국고 지원 까지 문제 삼아 불교계 전체를 비리 집단인 양 매도하고 있는 언론 보도와 검찰 수사에 대한 불교계의 격앙된 분위기와 그 흐름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당시 불교계의 격앙된 분위기를 <조선일보>처럼 2면 머리기사로 비중 있게 다룬 언론은 없었다. 다만 그 타깃이 <조선일보>라는 '중요한 사실'을 빠트린 것을 제외한다면 불교계의 억울한 심사를 이처럼 잘 대변한 기사도 없었다. 어쨌든 <조선일보>로서는 격앙된 불교계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이런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5일 조계종 총무원에서 열린  26개 교구 본사 주지회의는 <조선일보> 구독 거부 운동을 결의했다. 신정아-변양균 게이트 사건을 빌미로 불교계 전체를 비방하고 왜곡 보도한 진원지로 <조선일보>를 지목하고 사실상 <조선일보>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불교계가 부당한 비방과 왜곡 보도를 이유로 특정 신문사를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거부운동을 펴기로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조계종의 이번 <조선일보> 거부 선언은 불교계로서는 아주 이례적일 정도로 조직적이고 그 강도가 세다는 점에서도 주목되고 있다. 조계종 산하 2300여개 소속 사찰과 신도 개인들도 구독을 거부하기로 하고 그 결과를 총무원에 알리도록 한 것은 물론 태고종이나 천태종 등 27개 종단이 참여한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도 동참을 요구한 것 등은 불교계로서는 무척 조직적이며 치밀한 대응이다.

 

무엇보다 조계종이 <조선일보> 거부 운동을 선언한 것과 함께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조계종 총무원 부·실장급 간부들이 전원 사퇴하는 배수진을 친 데에서도 이번 사안이 결코 간단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은 8일 홈페이지에 '조선일보 구독거부운동 현수막 예시문'을 게시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은 8일 홈페이지에 '조선일보 구독거부운동 현수막 예시문'을 게시했다. ⓒ 윤성효

<조선>의 뒤늦은 '성의'는 '사후약방문'

 

불교계는 왜 <조선일보>에 이렇게 격앙했을까? 더욱이 <조선일보>로서는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며 사태 수습에 나섰는데도 불교계는 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걸까?

 

그 정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조계종 내부의 복잡한 사연도 한몫을 하고 있어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불교계 내부의 공분이 내부의 사연보다는 훨씬 더 컸다는 점이다.

 

"경상도 지역, 특히 대구 경북 지역이 불심이 깊은 지역이라는 점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지역들이 어떤 지역들인가. 조선일보를 가장 많이 보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불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교구 주지회의에서 조선일보 구독 거부를 결정한 것은 그만큼 공분이 컸다는 이야기다."

 

이번 일과 관련해 언론 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조계사 사회국 이상근씨의 말이다. <조선일보>가 그래도 성의를 보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 이전에 이미 상처가 너무 깊었고, <조선일보> 앞으로 몰려가 항의 시위를 하는 것까지 조직이 됐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런 '실력행사'가 과거 여타 종교 단체의 언론사 앞 시위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이 될 것이라는 내부의 지적 때문에 이를 중단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번 결정이 신중하게, 그리고 조계종 내부의 공분을 모아 이뤄졌다는 말이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일부 언론과 검찰의 음해 수사·보도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10월 4일자 기사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불교계를 음해하려는 조직적 배후' 혹은 '불교계 음해를 위한 커넥션'에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도 했다. 이른바 일부 '정치스님'들이 재료를 제공하고, 여기에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이 적극 가세했다는 시나리오다.

 

물론 불교계 또한 신정아씨의 허위 학력사건으로 그 일단이 불거진 '동국대 사태' 등에 대해서는 맞을 매를 맞고 있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불교계를 신정아-변양균 사건을 계기로 일부 언론과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동네북처럼 두들겨 댔다고 보고 있다. 템플스테이와 월정사에 대한 문화재청 등의 지원을 정치적, 혹은 권력형 특혜의혹으로 보도한 기사들이 스님들의 공분에 불을 질렀다.

 

"일부 정치스님-조선일보-한나라당 커넥션으로 비쳐"

 

그렇더라도 왜 <조선일보>가 그 과녁이 됐을까. 월정사 사정 등에 밝은 한 불교계 인사는 "불교계에서는 처음부터 일부 정치스님과 조선일보, 그리고 한나라당의 커넥션이 있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신정아씨 문제를 계기로 표출된 동국대 문제의 배경에는 종단 내부의 골 깊은 이해 다툼과 갈등이 깔려 있고, 그것이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이해와 맞아 떨어지면서 불교계 전반에 대한 마녀사냥식 음해로 번졌다는 이야기다. 

 

<조선일보>는 신정아씨 허위 학력 사건 등에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비호 의혹을 첫 보도했다. 그 자체만으로는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불교계로서는 내심 불만이 있더라도 뭐라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엉뚱하게 월정사 문제 등으로 '오버'하면서 불교계의 공분을 샀다. 특히 이들 기사의 출처가 '한나라당 의원'들로 적시되면서 이른바 불교계를 음해하려 한다는 '음모설'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특정 종교에 관련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과거 발언과 이번 사태 와중에 한 것으로 전해진 말도 스님들을 자극했다.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입니까. 대구 경북지역의 불세를 생각할 때, 또 이들 지역의 불자들이 조선일보를 대거 구독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 지역의 정치적 성향을 생각할 때 교구 주지스님들의 이번 결정은 결코 간단치가 않습니다. 앞으로 들어설 총무원의 새 집행부가 어떻게 할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교구 본사 주지스님들의 결의를 가볍게 여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조계사 이상근씨의 말이다. 조계사의 또 다른 인사도 "다른 종단에까지 공동보조를 취해 줄 것을 요청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저변에는 여러 가지로 이번 사태에 대한 불교계의 공분과 함께 공통의 위기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불교계 내부 움직임에 정통한 또 다른 인사는 "앞으로 실천승가회와 재가 불가 쪽의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 교계 내부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고려해 어지간해선 잘 움직이지 않는 실천승가회와 재가불자들 쪽의 움직임이 이번 사태에 대한 앞으로의 향방을 결정지을 것이라는 전망이기도 하다. 대구·경북 지역 불자들의 여론 향배 역시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주목되는 것 가운데 또 하나는 <조선일보>의 대응이다. <조선일보>로서는 어떻게든 조속한 수습을 희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로서는 회복하기 힘든 또 하나의 '상처'를 입게 됐다. 가장 중요한 근거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불교계로부터 공식적으로 '배척'당한 타격은 결코 작지 않다.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로부터 '불신'당한 직후에 터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 파장은 더해 보인다. 공교롭게도 불신과 배척의 주된 지역이 대구·경북이라는 점도 <조선일보>로서는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10일자 신문에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서 침묵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조선일보#조계종#한나라당#월정사#신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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