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순경에 안동 하회마을과 순천 낙안읍성을 다녀온 적이 있다. 600여년 전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조선시대 전통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매년 10월이면 지역축제 구경을 겸해 다녀오는 곳이지만 갈 때마다 느끼는 고즈넉한 전통가옥의 정취는 십수 년이 흐른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현재 보존되고 있는 6개의 전통 민속마을 가운데 유일하게 민가와 관가가 함께 남아있는 낙안읍성과 함께, 풍산 류씨의 씨족마을인 하회마을은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주거공간을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곳이다. 특히 하회마을은 충효당과 양진당을 비롯한 양반가 한옥과 초가집들이 조화를 이룬 곳으로 풍수지리학상 길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렇듯 고적답사라는 이름으로 즐겨 찾는 전통 민속마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은 단지 풍수지리학이나 고색창연한 건축물만이 아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건축재료나 가옥의 평면, 전체적인 배치구조 등을 통해 당시 사회생활상도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안채와 사랑채의 역할과 그 변화과정을 통해 가족 구성원의 시대상을, 건축재료나 가옥의 변화를 통해선 당시 사회·경제상황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만일 건축물의 외양에서 느껴지는 고건축의 매력과 더불어 그 내부로 시각의 잣대를 들이댈 수만 있다면, 우리는 더욱 풍성한 전통건축의 참맛을 느낄 수가 있다. 전통건축의 참 맛을 느끼려면 단순한 답사로는 곤란 <우리가 살아온 집, 우리가 살아갈 집>은 조선후기를 중심으로 변화하는 주거공간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겉으로만 알고 있는 전통건축이나 주거공간에 대한 시야의 폭을 넓게 해 준다. 고건축 답사나 지방여행 중에 맛보게 되는 전통건축에 대한 표피적인 느낌이 아니라, 문헌들을 통해 전통가옥이 당시 시대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변화해 왔는지를 세밀하게 분석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통가옥의 배치 가운데 하나는 안채와 사랑채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이 두 공간의 기능과 역할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이러한 사랑채와 안채의 구분이 조선시대 성적 불평등의 기제로 작용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사실 사랑채는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기 위한 장치였다기 보다는 주택 안에 존재했던 공적 영역이었다. "19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몰려든 근로자들의 집에는 스몰 팔러(small parlor, 서로 격식을 갖추어 나누는 대화)라는 응접실 개념의 공간이 만들어지고, 같은 시기 프랑스의 노동자주택에서도 쁘띠 살롱(petit salon, 작은 살롱)이 유행했다." 저자는 스몰 팔러와 쁘띠 살롱, 조선 후기 부농계층의 사랑채나 요즘 아파트 평면에 유행처럼 등장하고 있는 서재도 실제 용도와는 별개로 일종의 '소비문화의 상징코드'로 분석했다. 우리 민족은 아름답고 독자적인 주거문화를 이룩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이 또한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화 양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관점이다. 조선시대의 사랑방이 개화기의 응접실을 거쳐 요즘의 아파트 서재로 변화하는 과정은 사회와 도시가 변화하면서 주거공간의 기능과 역할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또한 아파트는 20세기에 새로 나타난 주거 유형이 아니라 고구려 계통의 집으로 알려진 강원도와 함경도의 전통 주거형태인 겹집과 조선 후기에 증가하기 시작한 겹집, ㅁ자형 집이 발전한 형태라는 분석이다. 조선 후기, 주거공간의 변화를 보는 다른 시각과 '보편성'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대부분의 한옥은 18세기 이후에 지어진 것들로 대들보나 기둥·서까래·문지방 등에 굽은 나무를 사용한 예가 많다. 당시 지방 종가나 부농 주거에서는 굽은 나무가 자주 사용되었다. 이러한 전통건축물에 대해 우리가 흔히 들어온 것은 자연스러움과 소박한 미학이라는 시각이었다. 반면에 저자는 이러한 시각을 당시 사회·경제적인 시대상이라는 거울을 통해 이같은 표피적인 시각이 후세대의 단순한 감상적인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당시에는 집을 지을 때 굽은 나무를 사용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에 금기 사항이었다. "굽은 나무가 사용된 전통 주거를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소박한 아름다움이라고 해석하기보다는 조선 후기 전반적인 생활수준 향상에 의한 가옥의 증·개축, 그리고 그에 따른 목재 수급의 어려움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이러한 목재수급의 어려움은 가옥의 구조에까지 변화를 미친다. 긴 서까래가 필요한 삼량집보다는 짧은 서까래로 지을 수 있는 오량집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현재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는 대부분의 한옥이 18세기 이후에 지어진 것이라면 이러한 당시 시대상을 함께 유추해 보는 다른 시각이 필요한 대목이다. <우리가 살아온 집, 우리가 살아갈 집>은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고건축과 전통가옥에 대한 일상적인 정보와 함께 ‘우리가 살아온 집’과 건축에 대해 새로운 시도로 접근했다. 많은 책들이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해 독창성을 말하고 있다면, 이 책은 반대로 세계문화 속에서 발견되는 보편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통 가옥에서 보이는 사랑채와 안채, 정조의 화성 신도시 건설, 사설 숙박업의 효시인 객주와 여각 등을 당시 유럽사회의 도시, 건축과 비교해 봄으로써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화 양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우리 전통가옥의 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씨족마을의 탄생배경과 풍수지리학의 폐해, 개화기에 나타난 첫 상품주택의 효시 등 저자의 풍부한 건축사학적 분석과 다양한 문헌과 자료들은 독자들에게 흥미를 배가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10월은 지자체 축제의 계절이자, 가을여행의 적기. 전통 민속마을이나 전통 가옥 답사에 나서는 여행객이나 ‘우리가 살아온 집’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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