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2일) 오후, 여진불교미술관을 다녀왔다. 북대전 나들목 근처인 대전 유성구 탑립동에 있는 여진불교미술관은 2005년 10월 14일에 개관했다. 차일피일 방문을 미루다가 이제야 찾아간 것이다. 묵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구즉 묵마을을 지나 낮은 산 아래 좌정한 미술관을 찾아갔다. 가장 먼저 손님을 맞이하는 건 정문 좌우 문 기둥 위에 앉은 '천진동자상'이다. 천진난만한 미소가 마음에 쌓인 티끌들을 씻어내리는 듯하다. 조금 더 들어가자 야외 전시장이 있다. 야외 전시장엔 또 다른 천진동자상들과 다보탑과 석가탑이, 아사달과 아사녀상이 있다. 새뜩하게 느껴질 뿐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세월의 이끼를 머금으면 좀 나아질 것이다. 미술관 입구에 선 아기의 형상을 한 관욕불이 한 손을 번쩍 쳐들고 손님을 맞이한다.
미술관 본관 1층은 1실과 2실로 나뉘어 있다. 1실 한 가운데는 몸에 3000분의 부처를 새긴 웅대한 삼천불석가여래가 앉아 계신다. 이만큼 큰 불상을 조성하기도 어려울 텐데 몸에 또 삼천불을 새겨넣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 밖에도 1실에는 책을 읽는 경책관음, 금동불 조성과정, 부처님의 족상(足像) 등이 전시돼 있다.
2실로 발길을 돌리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천수관음상이다. 눈으로 온갖 고통으로 신음하는 중생들의 소리를 보고 천 개의 손으로 그 상처를 어루만지시는 대자대비한 부처님이시다. 평화와 안락을 관장하는 관음보살의 포즈가 마치 '평화란 이런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남순동자상을 비롯한 여러 동자상들이다. 남순동자는 관음보살의 왼쪽에 서서 관세음보살님의 설법을 듣는다. 관세음보살께서는 한 마디도 설하는 바가 없고 남순동자는 한 마디도 듣는 바 없지만 관세음보살의 설법을 듣는 것이다. 동자는 동아(童兒), 동진(童眞), 동남(童男)이라고도 하는데 보살이라는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20세 미만의 스님이 되고자 하는 어린아이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동자상을 조성하는 이유는 동자의 해맑은 미소와 순수함이 부처의 마음과 같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천진삼존불이 무척 귀엽다. 어린아이는 조금 오동통해야 귀여운 맛이 더 있다. 3실과 4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간다. 실내가 꽤 어지럽다. 14일부터 시작되는 '개관 2주년 기념 특별전-한국 불교미술 그 첫 번째 이야기' 전시회를 위해 디스플레이 중이라고 이진형 관장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2층 전시실을 빠져나오면 곧바로 산허리를 빙돌아 개설된 산책로와 이어진다. 산책로의 초입에는 장승들이 줄지어 서 있다. 요즘엔 어딜가거나 장승이 많다. 좀처럼 반가운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냥 공간을 채운다는 느낌 외엔 들지 않는 거다. 통증없는 창조란 얼마나 무가치하고 무감각한 행위인가. 산책로 오른쪽 언덕받이엔 하얀 구절초가 무리지어 피어 있다. 이 땅의 가을을 빛내주려고 친히 나투신(나타내다의 고어) 백의관음인가 보다. 조금 걸어가니 초전법륜과 오비구상이 있다. 오비구는 부처님께 생긴 첫 번째 제자들이다. 처음에 부처님을 본 오비구는 '고행을 그만두고 떠난 수행자'라고 비웃으며 냉대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막상 부처님이 가까이 다가오자 태도가 돌변한다. 자신도 모르게 앉을 자리를 만들고, 발을 씻겨 주고, 가사와 발우를 받아준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들에게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와 여덟 가지의 올바른 수행법을 설했다. 다섯 비구는 부처님의 설법을 알아듣고 아라한과를 이루어 성자가 됐다. 첫번 째 제자가 생겼을 때 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음은 얼마나 벅찼을까. 돌을 다루는 사람이 그 순간의 환희심을 형상화하려면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한다. 작품이란 게 결국 작가가 겪은 경험의 소산이라는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만드는 사람의 상상력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관객에게도 얼마쯤은 상상력이 요구된다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옮긴다.
낮은 산허리에는 반야용선을 형상화한 불전이 있다. 반야(般若)란 지혜를 의미하며 용선이란 생사의 고해를 건너, 고통이 없는 피안으로 건너게 해주는 배를 말한다. 깨달음을 얻고 나서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가는 것이다. 반야용선인 극락전에는 아미타불을 모셨다. 그리고 용선 오른쪽에는 원력 보살인 지장보살, 왼쪽에는 극락으로 인도하는 인도왕보살이 서 있다. 안에 모신 아미타불의 모습이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한다. 세상의 어떠한 금색도 불신의 황금색에는 비할 바가 없다는 경전의 말씀을 실감나게 한다.
주마간산격으로 관람을 마치고 산 아래로 내려오면 수장고, 형문화재 전수 교육실 등이 기다리고 있다. '여진(如眞)'은 이진형 여진불교미술관 관장의 법명이다. 대전시 무형문화재 제6호 불상 조각장인 이진형 관장은 20여 년 간 불상 조성작업을 해오신 분이라고 한다. 여기 전시된 작품들은 거의 이 관장의 작품이라 한다. 사설미술관으로서 이만큼 준비하고 꾸미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여진불교미술관은 아직 미진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없지 않다. 그러나 10년간의 계획을 세우고 불교미술관을 좀 더 체계적으로 꾸며 나갈 생각이라니 미술관의 앞날에 대해 기대를 갖고 지켜보리라. 천진동자상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나서 미술관을 나온다. 저 미소를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14일부터 열리는 '개관 2주년 기념 특별전-한국 불교미술 그 첫 번째 이야기' 전시회에 왔다 가야겠다. 미술관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5시까지다. 문의전화 (042)934-8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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