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귀신의 엉뚱한 물음에 김학령은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 말도 답해 줄 수 없었다. 귀신은 김학령을 흘겨보더니 계속 말했다. “귀신이 이승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 산 사람을 통해서만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데 대다수 사람들은 귀신을 보지도 못하니까 너 같은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떠돌아다니거나 그 자리에 있는 거지.” “그럼 내가 뭘 해주기를 바라는 거냐?” 귀신은 김학령을 가만히 노려보더니 윽박질렀다. “이놈! 내가 모습은 이래도 네 놈이 태어나기 전부터 귀신으로 있었던 몸이니라. 말을 공손히 하지 못할까!” 김학령은 호통소리에 놀라 존대를 하려다가 문득 예전에 마을 노인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귀신을 보면 말이여. 기가 죽으면 안돼. 호통을 치란 말이여.’ 김학령은 그 말을 떠올리며 배에 힘을 주고 눈을 감은 채 힘껏 소리쳤다. “다, 닥쳐라! 어찌 귀신 주제에 감히 산 사람을 농, 농......” 김학령은 다음 말을 힘껏 내뱉으려 했지만 혀가 굳은 채 더 이상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귀신은 김학령의 고함에 처음에는 멈칫거리다가 김학령이 계속 더듬거리자 미친 듯이 높은 소리로 웃어 제쳤다. “깔깔깔!” 그 웃음소리에 김학령은 등골이 오싹해져 더 이상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귀신은 얼굴을 김학령의 바로 앞에 바싹 가져다 대었다. “내가 나타난 이유는 말이지. 너 같이 비실비실 한 놈의 양기라도 뽑아먹으려고 나타난 건 아니야. 그러니 지레 겁 좀 먹지마. 알겠지?” 김학령은 귀신의 말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너 재 너머 우금치에서 왔지? 거기서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었지?” 김학령은 고개만 끄덕거려 보였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원통하게 죽었는지 그 원혼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내가 여기서 조용하게 살 수가 없게 되었어. 그러니까 네가 그 원귀들을 좀 달래줘야겠다.” 아무리 귀신의 부탁이었지만 김학령은 앞뒤 가리지도 않고 이를 덥석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김학령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봐!” 귀신이 무섭게 노려보자 김학령의 말은 공손하게 바뀌었다. “......십시오. 그 원혼이라는 게 원을 풀어야 하는 건데 그 원이 뭔지나 아시오? 왜놈들 몰아내고 세상 한번 바꿔보자는 건데.” “멍청한 놈.” 귀신은 단박에 김학령의 말을 잘라 먹었다. “그건 그 사람들이 죽어간 이유지 지금 품고 있는 원한이 아니야. 그런 원은 산사람들이 풀어야지! 산 사람들 일을 두고서는 죽은 사람들이 뭘 어찌 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다만 한을 품고 죽었기에 그 기운이 풀어지지 않고 뭉쳐 원혼이 되었으니 이는 달래어 풀어야 하는 거야!” 김학령은 귀신의 일장훈계를 듣고 기분이 조금 상하기 시작했다. “그럼 그, 그쪽은 무슨 한이 있어 귀신이 된 거요?” “네놈 따위가 내 한을 듣는다고 풀 수도 없을 테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나 잘 듣고 다른 원귀들이 몰려오는 거나 달래!” 김학령은 여전히 겁을 집어 먹고 있었지만 다소 적응이 된 이제는 귀신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아 한사람 원한도 못 푸는 사람에게 수천수만의 원귀들을 달래라고 하는 게 말이나 되오? 어디 한번 사연이나 들어 봅시다.” 귀신은 음습한 기운을 내뿜으며 한참동안 김학령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만 보았다. 김학령이 그런 눈초리를 외면하며 딴전만 피우자 귀신은 결국 자신의 사연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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