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는 정동영 후보로 확정됐습니다. 예상했던 바입니다. 정동영 후보의 대선가도는 사실상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경선 지킴이'를 자처할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5년을 준비했습니다. 이 '5년'을 한나라당에서 갑자기 탈당해 합류해온 '손학규', '친노'와 '이해찬 세대' 등의 약점을 지닌 이해찬 후보가 이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기도 합니다. 게다가, 그는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2번이나 역임하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사실상 여당의 '큰손'이기도 했습니다. '조직경선'과 관련된 숱한 의혹과 폭로가 이어졌지만, 여기서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해봐야 사실 믿을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현실입니다. 이해찬 캠프 측의 '정 캠프 조직경선 의혹' 폭로는 정동영 후보에게 오히려 도움이 된 측면도 있습니다. "정동영만 했겠느냐, 당신(이해찬)도 했지 않았겠느냐"는 인식이 생각보다 많았던거죠. 물론 이해찬 예비후보 캠프 측이나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겠지만, '대통합민주신당', 좁게는 '이해찬 그룹'을 넘어서면 믿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건 우리 사회 전반의 정치인 불신의 여파입니다. 특정정당이나 특정정치인에게 이해관계가 있거나 열성적인 지지를 보내는 사람이 아닌 한, 보통 사람이 보기엔 "정치인은 다 그놈이 그놈"입니다. 이 현상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50%를 넘나드는 고공비행을 지속하는 현상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부패로 따지면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니, 그나마 더 화끈하게 일할 것 같은 사람을 밀어주자"는 생각들이 넓게 퍼져 있는거죠. 앞으로 문국현 후보든, 정동영 후보든, 이인제 후보든, 이명박 후보에 대한 공세를 더 강화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저런 '정치인 불신'의 여파 속에서 "이명박은 부패했다"는 것 하나만 주시한다면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동영 후보도 잘 아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피도 눈물도 없는 시장만능주의를 원하시느냐? 저는 한나라당식 정글 자본주의를 거부한다. 여러분은 20%만 잘 살고 80%는 버려지는 2대8 사회를 원하시느냐? 저는 돈 있고, 땅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약육강식 경제, 이명박식 경제를 거부한다. 여러분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공사 따고 땅을 파는 낡은 경제를 원하시느냐?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는 '왜곡된 자본주의'를 신으로 떠받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답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부족합니다. 정동영 후보가 헤쳐나가야 할 길, 이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동영에게는 '개성공단'밖에 보이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이명박 프레임'의 핵심인 '경제'에 대한 선명성은 이미 문국현 후보에게 빼앗겼습니다.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 측이 내놓은 슬로건이 바로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였다죠. 12월 19일로 예정된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대선의 핵심은 '경제'입니다. 이명박 후보가 고공행진을 벌이는 이유 중 하나죠. 그런 면에서 8월 23일에 공식적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비교적 늦게 시작한 문국현 후보임에도, 그는 이미 '사람 중심 진짜 경제'라는 슬로건을 내걸면서, 그리고 '이명박의 경제'를 범여권의 '경제 프레임'은 이미 선점해버린 입장입니다. '경제전문가' 이미지에서도, 정동영 후보는 '이미지'를 내걸 수 있는 위치가 아닙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명박 후보는 '현대건설 회장'과 '서울시장 경력', '양도소득세 폐지' 등의 공약을 내걸면서 고공비행을 벌이고 있는 것이고, 문국현 후보는 유한킴벌리 CEO 경력과 잭 웰치나 푸틴과 같은 세계적인 명사들과 호흡하며 사업을 벌였다는 경력이 있습니다. 결국, 이미지 싸움에서도 불리한 입장이라는거죠. 게다가, 문국현 후보는 '핀란드식 사회적 대타협'과 '기능적 유연성'을 토대로 한 구체적인 '경제 솔루션'도 마련된 입장입니다. 정동영 후보가 그간 내걸었던 주요키워드는 '개성공단'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대북사업'의 총체적인 권한은 실질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쥐고 있고, 평양을 다녀온 노무현 대통령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통일부 장관으로서 실무를 책임지면서 김정일을 만났다는 전적도 있지만 '김대중'과 '노무현' 없이 정동영 후보가 '개성공단'을 내걸 수 있는 위치가 되겠느냐는 의문도 생기는 것입니다. 사실, 이건 정동영 후보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대통합민주신당에서 '독자적인 업적'을 쌓을만 했다는 이미지를 풍기는 후보는 경기도지사 경력의 손학규 예비후보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 역시 '김대중의 안내'로 평양을 다녀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틀'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기는 어려운 입장이었죠. 이명박 후보는 아예 '反노무현 기류'의 이득을 사실상 독식했으며, 문국현 후보는 나름대로 한발짝 떨어진 관점에서 나름의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동영 후보가 '김대중'과 '노무현'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개성공단'을 내건 사이에, 미국·일본·러시아와 남북한을 묶겠다는 '환동해경제협력벨트'라는 '업그레이드'를 발표했습니다. 이렇듯, 이번 선거가 경제 선거·정책 선거라면 정동영 후보는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후보 수락 연설문에서도, '이명박'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이명박'을 뛰어넘겠다는 구체성을 드러내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이제부터는 구체성을 띈 경제공약을 발표하겠지만, 때는 이미 늦은 감도 있습니다. 정동영, '친노'를 껴안을 수 있을까 정동영 후보는 경선과정에서 혼란을 거듭했던 대통합민주신당의 내분을 막기 위해서라도 '친노'를 껴안아야만 합니다. 물론, 손학규·이해찬 양자는 결과에 승복함으로써 일단 봉합한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아래'에서의 기류는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특히, 이해찬 예비후보를 지지했던 친노계열 누리꾼들이 '정동영 후보 확정'에 무시못할 분노의 낌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해찬 캠프 측이 폭로했던 정동영 캠프 측의 다양한 '떼기 의혹'을 기정사실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최근 여론조사의 결과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지난 11일, CBS와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의 주간 여론조사 결과(10월 9일과 10일, 전국 19세이상 남녀 850명-통화시도 15,624명-을 대상으로 전화-Auto Calling System-로 조사했고, 최대허용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 3.4%p)입니다. 이명박 50.5% 정동영 16.8% 손학규 6.6% 문국현 6.2% 이해찬 4.0% 권영길 2.0% 이인제 0.8% 여기서 현실적으로, 정동영 후보가 흡수할 수 있는 지지율은 16.8+6.6+4.0, 즉 27.4%입니다. 문국현 후보의 6.2%는 대부분 부동표입니다. 뚜렷한 정당기반이 없는 문 후보임에도 그의 '가능성'에 '올인'한 지지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27.4%가 온전히 유지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손학규·이해찬 양자는 결과에 승복했을지 몰라도, 아래에서의 반발이 극심하기 때문입니다. 이 '반발표'는 상당부분 문국현 후보에게 이동할 가능성도 관측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합신당 경선결과'의 이득은 '정동영'이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문국현'과 나눠가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정동영 후보 측도 문국현 후보에 대한 경계를 아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동영 캠프 측의 민병두 전략기획위원장이 "아직은 문국현 후보의 정체성이나 정책이나 비전에 대해 확실히 알 수가 없고, 정치적 존재감도 불분명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던데, 이건 어디까지나 통합신당 내의 내부단속용 발언이죠. 하지만 문제는 믿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 50.5%입니다. 50~55%를 꾸준히 넘나들고 있습니다만, 이 지지율의 문제점은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을 모두 흡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6월,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C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한 여론조사(6월 12~13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컴퓨터를 이용해 전화로 조사-ARS 방식-했고, 최대허용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 3.1%p)를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세 후보의 지지율은 총합 74.8%, '손학규'의 지지율을 빼도 68.6%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후보는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확정되면서 10~13%의 지지율을 흡수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근거 있습니다. 친박근혜 계열 사이트나 인터넷 언론을 조금만 돌아다녀도 알 수 있습니다. "이명박과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며, 심지어 "문국현을 지지하자"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이명박'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통합신당 경선과정에서 숱하게 벌어진 '정동영 캠프의 의혹'을, 일부 손학규·이해찬 지지자들은 확신하고 있는 기류가 강합니다. 그리고, 이 '확신'에는 정동영 후보의 최근 10년간 행적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동영의 치명적 약점, '마이너스 정치' 그는 '참여정부 공과론'을 표방하면서 '비노' 입장을 표방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친노'의 '마이너스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좋았을지는 몰라도, 정동영 후보는 애초부터 이런 입장을 표방해서는 안되는 사람입니다. 여당의 당의장을 2번이나 역임했고, '통일부 장관'을 놓고 김근태 의원과 벌인 신경전에서도 성공했습니다. '개성공단'이라는 그의 장점도 여기서 비롯된거죠. 그러니까 그의 '선택'은 충분히 껴안을 수 있었던 '친노'를 시작부터 포기해버리면서 원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지난 3월의 출판기념회에서 권노갑 전 의원과 웃음을 나누는 장면을 연출했지만, 권노갑 전 의원의 저주에 찬 음성이 여전히 귓가에 들려옵니다. "내 입이 열리면 정동영은 (도덕적으로) 죽는다"고 했었죠. 즉, "내게서 정치자금을 탈 때와는 달리 나를 배신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정동영 후보는 이 발언을 강하게 부인했다지만, 대중은 이미 퍼진 소문에 대한 정치인의 해명은 잘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던 '통일부 장관'이라는 감투를 안겨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입장이 모호했던 점, 그리고 당의장을 2번이나 역임했음에도 열린우리당을 깨는데 앞장섰다는 이력은, '정치적 도의'나 '의리'를 눈여겨보는 우리 유권자의 정서와는 '상극'에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이해찬 예비후보를 지지했던 '친노' 성향의 지지자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정동영 후보를 앞장서서 비판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답안이 '정동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국현'도 있습니다. 대권행보에 나서기 전에, '이인제'와 '김민석'이 왜 대중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는지를 분명하게 짚고 넘어갔어야 했습니다. 정동영 후보는 그들처럼 '웃음거리'는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크게 후회할 가능성도 있는 '저주의 원성'은 남겨놓은 셈입니다. 두달여 밖에 안되는 시점에서, 이런 이미지 즉 '마이너스 이미지'는 그다지 도움되지 않을 것입니다. 선거는 셈의 대결입니다. '끌어안을 수 있는 대상'은 모두 끌어안아도 모자라는 것이 선거죠. 정동영의 '뚝심', 어디까지 갈 것인가 개인적으로, 정동영 후보의 '경선 승리'를 예감했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손학규·이해찬 양자가 경선 파행을 주도하며 토론에 불참했을 때, 눈물을 흘려가며 이해찬 후보와의 인연을 회상하던 모습을 보여줬을 때입니다. 적어도, 통합신당에 연을 뒀거나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자들에게는 파동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 눈물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정동영 후보 본인만이 알겠지만, '장면'만으로도 효과가 컸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알고 보면 이런 매력과 이런 뚝심도 있습니다. 5년간의 치밀한 준비가 과연 결실을 보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을 무조건 긍정하긴 어렵습니다. '범여권'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승부를 보려면 경제정책이 중요할텐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슬로건 자체도 문국현 후보가 선점당한데다가, 그의 경제공약 자체도 '뚜렷함'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니다. 남은 두달, 이명박 후보와 상대할 최후의 링에 올라선 후보는 3명(특히 2명)으로 정리됐습니다. '대 이명박 전선'에서는 맥을 함께 하면서도 지략 대결과 선명성 대결을 벌인 '범여권 선거판', 앞으로도 주시해야 할 이유가 있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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