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칼바람을 맞으며 한 사람이 땅에 묻히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며칠 전 꼭 보자며 통화도 했던 사람. 그 사람이 땅 속에 묻히는 광경은 믿기 힘들 만큼 비현실적이었다. 그래서인지 흔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며칠 후 나는 오랜만에 성당에 들렸다. 기도라도 해야지 눈물 대신. 하지만 눈을 감자 그저 나는 짧게 하나님을 외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말이 때로는 마음을 담아내기에 버거운 도구라는 것을 처음 느끼는 순간이었다. 하긴 기도와 위로의 말이 넘쳐나던 장례식장에서, 옆집 할매의 걸죽한 욕 한 마디가 기도문보다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아름다운 어휘가 곧 아름다운 마음을 담고 있진 않나보다. 그날 집에 돌아가 나는, 그저 맘속에서 들리는 단어만으로 시 한편을 썼다. 글을 쓸 때면 늘 쓰고 붙이던 습관을 지우고 오로지 마음 속에 울리는 단어만으로 시를 채웠다.
한 친구가 이 글을 본 후 전화를 했다.
"어휘들이 왜 그래? 너무 평범하고 진부하다." "나 원래 글 못써." "근데 누가 죽은 거니? 너 정말 슬펐던 것같아." "그렇게 느꼈니? 그랬으면 되었어." 소설책이든 시집이든 책가방에 책 한 권씩은 끼고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내가 빚어내는 언어들이 무엇보다 아름답길 바랐다. 저녁 노을빛이 던지는 아스라한 느낌, 가슴을 에어내는 현악기 소리를 언어로 빚어내길 바랐다. 그 꿈을 함께 꾸던 친구 하나는 문예창작과에 지원했다.
나는 역사학을 전공한 다음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다. 턱 없이 부족한 재능이지만 가끔씩 끄적이던 내 시와 소설에서 나름 아름다운 어휘를 구사해보려고 노력했다. 김춘수 시인의 잘 꾸며진 인공적인 느낌이 좋았다.
어느 날이었다. 친구를 기다리더 들렸던 서점에서 책들을 들춰보다가, 박노해의 시를 읽었다. 내 눈이 머무는 시구가 있었다. ‘사장이 내 하늘이다’ 순간 가슴에 무엇인가가 꽂힌 느낌이었다.
'사장이 내 하느님이다' 이 몇 단어 안에 녹여있는 삶의 애환과 모순이 내 가슴을 직타하고 있었다. 구구절절 삶의 어려움과 고단함을 노래한 어떤 글보다 힘이 있었던 그 구절, 시인의 삶에 담겨 있는 진실의 힘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지난해 5월, 이미 젊다고 할 수 없는 35세의 나이에 글을 써보리라 생각했다. 그저 무언가 내 가슴에서 울리고 있는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서 였다. 첫 글은 자신의 등 뒤에 진 짐이 너무나 버거워서, 자신을 외계인이라 생각하는 여자에 대한 글을 썼다.
자기가 쓴 글을 읽으면서 철철 눈물을 흘렸던 창피한 기억이 담긴 글이었지만, 다시 봐도 나는 이 글이 참 사랑스럽다. 잘 써서가 아니다. 글을 예쁘게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을 덜고 처음으로 써본 글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만든 이 여자의 상처에 진심으로 아파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여자에게 등의 짐을 덜어줄 멋진 남자친구도 선물했다. 누군가 이 글을 읽는 이의 짐도 덜어주길 희망하면서. 나는 내가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른다. 턱 없이 부족한 재능 탓이다. 기사를 쓸지, 책을 쓸지, 그도 아니면 그저 개인 수첩에 끄적거릴 글을 쓰고 말지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어떤 글을 쓰던 진심이 담긴 글을 쓰고 싶다. 문장과 어휘가 기억되는 글이 아니라 어휘 너머의 진심이 전달되는 글을 쓰고 싶다. 이왕이면 그 진심이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장례식장에서 욕이던 단말마의 비명이던 남은 이의 슬픔을 달래주던 그 언어처럼,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위로가 되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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